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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의 시대의 도래

2020-02-11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의 시대의 도래

 “오리지널리티의 가치에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다시 생산하는 산업”

– 창조산업: 개인의 창의력과 기술 및 재능을 근원으로 하는 산업이나, 그 잠제성을 가진 산업

– 총체적 새로운 창조산업 에코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

– ART 마켓팅? 후원인지 마켓팅인지를 방향성이 중요

 

< 밀레니엄과 창조산업 >

지난 10년 많은 글로벌 기업과 산업에서 더욱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단어는 창조산업이다. 하지만, 사실 이 창조산업이라는 단어를 정부적차원에서 처음으로 정의를 시작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한때의 제국인 영국이 새로운 4차혁명을 시작하는 진입구에서 영국의 문화관광부인 DCMS은 2000년도 ‘개인의 창의력과 기술 및 재능을 근원으로 하는 산업’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즉 개인의 지적 소유권(IP)을 통해 고용 및 부를 창출할 수 분야뿐 아니라 가능성(Possibilities)도 포함되어 있는 산업이라는 내용이다. 어떤 아이디어나 사상보다는 경제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임을 정의 하였다. 더불어, 정부의 역할은 정부가 직접적 경제적 생산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창조적인 경제적인 구조(Framework)를 구축하는 산업 및 기업의 경제적 생산 효과 및 가치를 조성하는 것이다. 창의와 혁신 양성을 통해 사회는 문화적 다양성과 경제적 성장을 증진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시도를 진행한 15년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영국의 전설적 크리스 스미스 (Chris Smith )장관은 창조산업분야를 광고, 영화&비디오, 건축, 미술관&박물관, 공연예술, 패션, 출판, 공예, 소프트웨어 디자인, TV 라디오, 컴퓨터, 게임같이 정리하며, 이를 운용할 중요한 다이어그램을 소개하였다. (도표1) 이 다이어그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 중심에 창의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각 분야의 오리지널들의 생 것/날 것은 어떻게 더욱 2단계 3단계 ‘컨텐츠 화’ 시키며, 그 컨텐츠를 ‘서비스’하여, 이를 통한 새로운 경험을 창출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창조산업의 에코 시스템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창조산업의 핵심 창의적 지점의 오리지널 지점에 ‘아트’를 지목하면서, 매우 추상적일 수 있는 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유일성의 오리지널성 및 그 창의적 사고를 가장 중요한 시작점으로 지칭하였다. 당시 매우 놀라왔던 점은 장관 자신이 쿨 브리테니아 (Cool Britannia)라는 문화정책 보고서를 매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였다. 런던 지하철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종종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영국 국기가 그려진 가벼운 소설 책 같은 책이 그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2000년, 필자도 미술 경영 석사 졸업반에 있을 때, 크리스 장관은 그런 런던대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직접 특강을 통해 이 새로운 정책을 필력을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창조산업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기도 하고, 과연 그 규모나 발전 현황을 현장에서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실례로 영국은 2017-2018년 기준으로 1년간 영국 GDP의 30%(130-147조원)정도가 창조산업에서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예산의 400조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매우 놀랍고 가시적인 숫자임은 확실하다. 이 GDP 30%는 스포츠 13%, 미디어 8%, 시각문화 9%의 분포를 가진다. 물론, 혹자는 축구가 종교같은 영국같은 나라이기에, 이러한 분야가 더욱 커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르나, 시각문화 부분에 대한 한국의 창조산업 가치가 약GDP의 1.5%가 정도 차지하는 규모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창조산업분야에서 경제적으로 가치를 키워나가고 있는 실정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영국의 경우를 조금 더 살펴보면, 2011년 이후 영국에서만 창조산업분야의 일자리는 30%, 약 2백만개가 증가했고, 그리고, 현재도 10개의 일자리 중 1개 이상이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에 있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영국이 자랑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자 GDP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financial service industry에 있는 것 보다 70만명의 더 많은 직업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creative industry의 종사자는 3백만명이라고 나왔고, 이는 매년 5%정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이 분야의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일들에 87%가 AI로 인한 자동화의 시대가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직업 군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특히나 한국과 같은 제조 및 자연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creative industry가 미래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도표1) 창조산업분야는 광고, 영화&비디오, 건축, 미술관&박물관, 공연예술, 패션, 출판, 공예, 스프트웨어 디자인, TV 라디오, 컴퓨터, 게임 (Advertisement, Film and video, Architecture, Museum & Gallery, Art & Design, Performing art, Fashion Designer, Publication, Craft, software design, TV and radio, Computer and video games)
(출처: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Arts (NESTA) Report)

<시각예술 경영의 시대 도래>

이제 예술경영이라는 분야를 살펴보자. 이 창조산업이라는 맥락에서 예술 경영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즉, 아티스트라는 한 개인의 창의력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내는 가장 핵심부에 있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러한 다양한 오리지널들의 새로운 컨텐츠화가 매우 중요한 IP를 이룰 수 있는 창조산업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부분은 넓은 의미의 예술경영이 아닌, 시각예술에 더욱 좁혀진 분야에 대한 논의이다. 예술경영은 기본적으로 대중 마켓을 가지고 있는 공연예술경영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 10여년간 매우 큰 발전을 보인 뮤지컬 시장이나, K-POP매니지먼트, 한류와 함께 커지는 시장이 있기에, 더욱 예술 경영은 공연예술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반면, 시각예술경영의 분야는, 그 산업의 핵심인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경영이 여전히 공공영역의 지원이나 비영리 재단 운영안이 대체하고 있는 입장이고, 특히 미술이나 디자인 등은 어느 특정한 시장의 논리로 대응되는 시장으로 간과 되고 있었다. 해외의 대규모 컨벤션 산업과 같은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도 마이스(MICE) 산업으로의 발전도 상당히 더디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예술 경영의 분야가 새롭게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아트 라는 속성이 더욱 커팅에지cutting edge에 있어야 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대중화되기를 ‘기꺼이’ 꺼렸던 속성들이 새로운 소설미디어와 테크놀로지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즉, 제트 제너레이션 S(Screen)제너레이션 이라 부르는 젊은 세대의 관심이 이 아트와 디자인 산업에 집중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살펴볼 시각예술 경영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신세대와 교감하고 새로운 미래 고객들을 잡기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써 포지션 할 수 있는 시간에 이르렀다. 아마도 지금까지 진행이 더디었던 시각예술 분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인싸이트Insight가 필요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소개할 분야는 크게는 4개의 분야이다. 첫째는 우리가 가장 쉬이 아트경영하면 생각할 수 있는 아트 콜레보레이션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아트 마케팅이며, 그러한 아트 협업이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스폰서쉽의 형태로 발전한  기업의 아트스폰서쉽 사업, 세째로 밀레니엄과 더불어 사상최대의 기록을 보이는 글로벌 미술시장에 대한 흐름, 마지막으로 부동산 개발 및 지역 재개발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자리잡는 공공미술로서의 랜드마크 아트 및 아트 뮤지엄콘텐츠 산업으로의 확장이 그것이다.

 

<아트 마켓팅>

아트 마켓팅이라 할때 가장 처음으로 사용되는 선례는 아마도 2000년도 루비통이 긴자에 그들의 최대의 플레그쉽 매장을 일본 작가인 타카시 무라카미와 진행한 프로잭트 일 것이다. 사실 1980년대 앤디워홀이 BMW와 함께 한 것도 있고, 기업과 아티스트 브랜딩을 통한 협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매우 글로벌적으로 기업의 전략적 프리미어 아트 가방인 루비통 런치는 가장 큰 선례가 되었다.

당시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은 2002년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 2003년에 대중에 공개된 다카시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 라인을 통해 루이비통은 또 한번 큰 성공을 거두며 아트와 패션이 조화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혔고,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고급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

사진1)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비통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이후에도 루이비통을 일본작가인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이어나갔다. 루이비통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에 메인 후원사로 나섰고, 루이비통-쿠사마 야요이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회고전의 오픈과 함께 공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60년대부터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쿠사마 야요이는 그녀가 경험하는 환영을 끊임없이 반복되는 점, 물결, 괴상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고, 정신병을 앓았던 이력만큼이나 큰 예술적 영향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개인적으로도 쿠사마 야요이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삶과 세계에서 가능성을 보았다고 밝혔다.

사진2) 루이비통과 야요이 쿠사마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여기서 주목할 점은, 프랑스의 100년이 넘은 역사의 브랜드가 왜 일본작가와 협업을 하였을 까. 왠만한 럭셔리 소비자들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도 있다. 1978년 아시아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하였고, 지금은 일본이 루이비통의 국제마켓 점유율 6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일본 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그 당시 예술계의 흐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출의 극대화를 노린 루이비통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완전한 프리미어 마켓팅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또한, 루이비통은 무려 4배의 가격이 넘는 무라카미 루이비통 가방을 글로벌 적으로 유통시켰다. 그 희소성과 상징성 때문에 무라카미 다카시의 가방은 경매에서 거래되는 가방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2014년에 두번째로 진행한 야요이 쿠사마와의 협업 당시에도 루이비통은 글로벌화된 중점 국제 플레그쉽 스토어를 완벽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물론 쿠사마 작품 또한 매우 고가의 작품이기에 그녀의 패턴이 들어간 가방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브랜딩의 프리미어 럭셔리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아트 마케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루이비통 이후 지금도 수 많은 기업들이 아트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루이비통의 성공사례에서 배울 점은 아트를 마케팅에 매우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글로벌 마케팅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트 마케팅은 안하면 안하지 막상 하게 되면 그 가치를 최고로 만끽 할 수 있는 만큼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함을 강력히 필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이 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하는 모든 활동을 아트마케팅이라 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예로 소개할 만한 것이 롱샴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콜라보레이션이다. 트레이시 에민은 1980년대 영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일군의 젊은 작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중 한 명이며, 이 시기 현대미술의 중심을 뉴욕에서 영국으로 옮겨놓은 중요한 작가이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할 개인적인 이야기, 예컨대 계속된 자갈 기도와 강간, 낙태 등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과감하게 드러내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녀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으로는 1995년 공개한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1963-1995)인데, 제목 그대로 지금껏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낸 102명의 이름을 텐트에 새긴 작품이다. 그 이후로도 테이트 브리튼에서 선보인 ‘나의 침대(My Bed)’라는 작품에서 지저분한 침대와 헝클어진 이불, 아무렇게나 놓여진 보드카병, 담배갑, 재떨이 등 도발적인 요소들을 선보이며 1999년 터너 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예술계의 악동으로 알려져있던 그녀는 2004년과 2005년 롱샴과 협업하여 그녀의 작품을 가방으로 선보였다. 롱샴의 가장 대표적인 컬렉션인 플리아주 가방(le pliage bag)에 그녀 자신이 어린시절 사용했던 담요, 원피스, 커튼, 쿠션 등을 덧붙이고 ‘always me’, ‘international woman’, ‘you said you loved me’, ‘alone’ 등의 단어를 새겨놓았다. 그녀가 삶과 사랑을 통해 느꼈던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이 작품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있다.

사진3) 롱샴을 위해 만든 트레이시 에민의 가방

롱샴과 트레이시 에민의 콜라보레이션은 위의 루이비통의 사례와 극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트레이시 에민은 외설적인 성적 비유와 파격적인 작업들로 사회에 논란을 주었던 작가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러한 점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로 생각된다. 그러나, 롱샴은 그녀를 선택했고 이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인 매출의 증대보다도 기존 롱샴의 이미지를 뒤엎고 예술적인 이슈를 만드는 길을 택했다. 이를 통해 작가를 지지하고 예술계에 담론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공헌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례로 볼 수 있다.

 

<아트 스폰서쉽 사업>

위의 사례에서 살펴본 아트 협업이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스폰서쉽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 바로 아트 스폰서쉽 사업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중세 이후 현대까지 예술 발전의 밑바탕에는 항상 기업 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메세나(Mecenat)’로 불리는 기업 후원 전통의 근간은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비롯한 예술 대가들을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하지만 메세나라는 용어 자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60년대 데이비드 록펠러 체이스맨해튼은행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중 일부를 문화예술 분야에 할당하자’고 건의한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되면서 메세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다양한 기업들이 예술활동 후원자로 적극 참여하면서 기업과 예술은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미술 분야만 해도 미술관 건립과 운영, 전시, 행사, 작가 후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업의 후원은 빠지지 않은 요소가 되었다.

테이트 모던은 2000년 개관부터 매년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런던 예술계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특히 가로 23m, 깊이 155m, 높이 35m에 달하는 거대한 보이드공간인 터바인홀Turbine Hall은 거대한 설치작품을 보일 수 있는 곳으로 테이트 모던 내에서도 중요한 전시장이다. 미술관을 건립할 때부터 테이트모던은 기업의 후원을 기획하였으며, 원래 2012년까지 유니레버 사에게 약 60억원(4.4milion GBP)규모의 지원을 이끌어 내었다.

유니레버의 지원을 통해 이 공간은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마음껏 비전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옛 발전소 시절 전기발전기가 놓여있던 공간인 터바인홀(Turbine Hall)에서 진행되는 <유니레버 시리즈: 터바인 제네레이션 The Unilever Series Turbine Generation> 전시에는 이제까지 총 24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2000년 터바인홀의 특별전은 루이스 부르주아Pouise Bourgeois의 거대한 탑 작품인 ‘나는 한다, 되돌린다, 재생한다(I Do, I Undo, I Redo)’를 선보였고, 그 이후 아니쉬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카스텐 횔러 등의 작가들이 터바인홀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본래 미술관이 지어진 초기에는 유니레버 사가 5년간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었으나 전시가 인기를 끌면서 2012년까지 연장되었다.

유니레버는 테이트모던과의 협력에 힘입어, 사람들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게끔 하고자 하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유니레버가 테이트 모던에 제안한 수십 억 규모의 스폰서쉽은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드문 사례였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스폰서쉽을 가능하게 했던건 21세기 메디치가 되겠다는 유니레버의 비전도 있겠지만, 이러한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더 큰 광고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거라는 확신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유니레버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목격하고 있다. 당시 BBC 에 1분동안 광고를 내보내는 비용이 18억(1milion GBP)정도였던 반면에, 테이트 모던에서 한 번 대규모 전시을 열 때마다 그 내용은 BBC메인 뉴스에서 아주 크게 다뤄졌다. 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미디어에서 앞다투어 다루는 전시가 되었으니 광고비 측면만 봐도 유니레버는 큰 이익을 본 셈이다. 또한 터바인홀 지원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인식 제고, 소비자 개발효과 등 스폰서십 비용의 150%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직원교육이나 VIP고객 유치 등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기업은 후원을 통해 이미지제고와 사회에 기여한다. 대체로 부유층 고객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금융과 명품 기업이 예술 후원에 많이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선 현대자동차가 가장 적극적으로 예술후원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영국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11년 장기 후원 계약을 체결하여 65억원(5백만 파운드)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도 10년간 후원하고 있다. 또한 2015년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10년 후원 파트너십도 맺었다.

 

<글로벌 미술시장>

21세기 시각예술 경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글로벌 미술시장의 성장이다. 그 중에서도 대규모 아트페어의 탄생은 전 세계 컬렉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미술 산업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아트바젤은 1970년 바젤의 갤러리스트 에른스트 바이엘러, 트루디 브루크너, 발츠 힐트에 의해 처음 조직되었고, 개최 첫 해에는 10개국 90개 갤러리 및 30개 예술 출판사가 참여했다. 첫 해부터 16,000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하였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94년부터는 스위스의 다국적 투자 은행 UBS가 페어의 리드 파트너를 맡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마이애미 비치에서, 2013년부터 홍콩에서도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2년 설립된 아트바젤 마이애미는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2013년 설립된 아트바젤 홍콩은 최근 홍콩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는데 일조했다. 10년 전 당시 바젤 아트페어의 디렉터인 사무엘 켈러(Samuel Keller)가 매우 야심 차게 홍콩 로칼아트페어를 인수(2008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이 도래했다. 켈러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예술은 자본이 풍부한 곳에서 발전한다”고.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공공연히 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행사가 되었고, 작년에는 32개국에서 아주 어렵게 선별되어 온 247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미술계의 큰 축제였다.

유럽의 갤러리들이 상업적인 편의를 위해 시작한 Art Basel은 어느새 단기간 진행되는 행사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시장이 되었다. 아트바젤의 등장은 제도권 전시와 공공 미술이 중심이었던 주류 미술 패러다임에 새로운 무게추가 생긴 것을 의미했다.

작품 가격도 놀랍다. 2019년 아트바젤 홍콩의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국제 중견 작가들의 작품가는 1억원을 훌쩍 넘었고,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은 오프닝 3시간 만에 370억원에 거래되는 등 그야말로 5일 만에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약 8만 명이 방문하는 이 행사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의 아트바젤을 위한 준비기간만 봐도 세 개의 도시에서 열리는 해당 행사가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해도 몇 천명이 된다. 페어 개막 전에 작품 수 만점을 옮기는 운송업체부터, 운송 후 작품을 페어장 안으로 옮기는 배달업체, 작품을 실제로 부스 벽에 거는 핸들링 업체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다. 페어 기간동안에는 몇 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을 수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숙소들이 모두 매진되며, 이에 따라 주변 상권은 자연스럽게 활기를 띈다. 더불어 페어기간동안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및 파티가 열리기 마련이므로, 도시 내 호텔 및 다양한 공간에서는 흥미로운 이벤트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방문객 및 거주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매해 아트바젤 기간이 도래하면, 그 장소 주변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신진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다양한 장르의 새틀라이트(satellite) 페어들이 생겨나고, 그 주변 상권조차 살아나는 현상을 보면 아트바젤이 단순 문화예술 행사의 범주는 뛰어넘은, 도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행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술경영인의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집중해야 할 점은 UBS가 이 행사를 스폰서함으로써 얻어낸 기업 이미지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스위스 글로벌 금융기업 UBS는 아트바젤의 핵심 후원사로서 아트바젤 기간 내내 전시장 곳곳에 로고를 노출하며, 대담회나 VIP라운지 등의 부대행사 및 시설을 통해 아트바젤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아트바젤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의 경우도 독일계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대표 후원사로 올라가 있다.

이렇게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우선, 기업의 브랜드 품격을 높일 수 있고, 두 번째로 고가의 상품인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술품 구매층과 은행의 VIP고객층읜 ‘고액 자산가’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예술계의 고객들이 후원은행의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UBS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구겐하임 UBS 맵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남미지역 작가들을 후원하는데, 이 프로젝트를 UBS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식 인터뷰에서 UBS는 구겐하임과의 프로젝트를 계기고 해당 지역의 부유층 고객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프리즈를 후원한 도이체방크 또한 이 사업을 통해 ‘독일 은행’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전세계 고객들을 유치하는 ‘글로벌 뱅크’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 랜드마크 공공미술 및 아트 뮤지엄콘텐츠 산업>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영국 존 윌렛(John Willet)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밝힌 공공미술의 정의는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거나 전시되는 조형물”로, 당시에는 공공미술의 개념이 ‘개방된 장소에 위치한 하나의 완성되고 고정된 조형물’에 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대중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정치가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는데, 그 예로 나치 독일,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역사적 영웅이나 국가 원수의 동상, 승리 기념비 등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정치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또한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던 미국에서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벽화나 포스터와 같은 공공미술을 장려하였는데, 환경 개선을 통해 국민 복지를 향상하고, 실업 인구를 일터로 복귀시키는 목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이용되었다. 뉴딜정책 내 미술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은 약 10년동안 10만여 점의 그림과 1만 8천여 점의 조각 작품을 만드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시 공공미술의 담론 자체가 ‘미술품의 양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공공미술의 담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미술 중 하나인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006년 5월 15일 완공 후 대중에게 공개된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대규모 설치작품은 지금까지 시카고의 랜드마크로서 ‘투어리스트 마그넷(tourist magnet)’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4)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25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81억원 정도를 들여 설치한 이 작품은 높이 12.8미터, 너비 20미터 규모의 거대한 콩 모양의 작품은 철판 168개를 이어붙여 만들었고, 무게는 110톤, 제작 기간만 2년이 넘는 대형 작품이다. 수 많은 엔지니어들이 그라인더와 샌딩기계를 이용하여 철판 용접 자국을 지워내고, 작업 과정에서 생긴 크고작은 스크래치를 없애가면서 연마하여 ‘액체 수은’을 연상시키는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시켰다. 이 때문에 당초 600만 달러로 책정되었던 작품의 제작비는 2,3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설치된 이후에도 하루에 두 차례씩 직원들이 표면을 닦아내고 있으며, 1년에 두 번 작품 전체를 150리터의 세척제로 청소하고 있고, 그 비용만 5만 달러에 달한다.

유려한 곡선의 표면 전체가 마치 거울과 같이 주변을 비추고 있어, 작품을 멀리서 보면 시카고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거대한 빌딩 숲 안에 갇혀 사람의 육안으로는 한번에 볼 수 없었던 고층건물과 움직이는 구름까지 거대한 장면을 축소하여 보여준다. 시카고의 ‘스카이 스크레이퍼Skyscraper’가 갖는 수직적이고 위용있는 형태와 대비되는 수평적이고 굴곡진 <클라우드 게이트>는 평소에 지나쳤던 도시의 익숙한 광경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품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의 범위는 점점 축소되고 결국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순간부터는 작품 속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을 변화시키고 객체가 뒤바뀌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의미로 볼 때 이 작품은 시선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1981년 뉴욕 페더럴 광장에 들어서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리처드 세라의 <Tilted Arc>와 비교해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철판이 휘어져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작품은 시민들의 움직임과 휴식을 방해한다는 비판과 철거를 위한 청원운동을 거듭하다 결국 1989년 해체되었다. 거센 논란과 악평을 받았던 세라의 작품과, 이제는 시카고에 없어서는 안될 랜드마크가 된 카푸어의 작품의 비교를 통해 대중이 원하는 공공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부피와 질량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막아서고 있는 <Cloud Gate> 이지만, 주변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수직과 수평, 직선과 곡선, 주체와 객체, 하늘과 땅, 소통과 단절 등의 상반된 요소들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관람객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위의 사례와 같이 공공미술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관광산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 주도로 그 지역의 이미지 제고와 시설 개발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문화사업화를 이루는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의 일환으로 공공미술이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도시선전주의(City Boosterism)과 CI(City Identity)등에서 근본을 찾을 수 있는 장소마케팅은 쇠퇴한 공업도시들이 이미지 재구축 및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영국 소도시 게이츠헤드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영국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20만명 규모의 게이츠헤드는 탄광 산업으로 19세기 산업혁명 시절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마가렛 대처 정부의 광산폐쇄정책으로 석탄 산업이 붕괴하면서 도시 또한 동력을 잃게 된다. 이에 영국 시의회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재생을 꾀했는데, 그 첫번째 주자로 선택된 작가는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였다. 1994년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터너상을 수상한 조각가인 곰리는 4년에 걸쳐 게이츠헤드에 높이 20m, 너비 54m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조각상을 만들었다. <북방의 천사>로 명명된 이 작품은 거대한 사람이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8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4억 정도의 자금으로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의 정체성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이끄는 문화도시로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5) 안토니 곰리 <북방의 천사>

빌바오가 구겐하임을 통해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부상한 이후 아부다비에는 루브르가, 작년 11월에는 상하이에 퐁피두 센터가 유치되었다. 이렇듯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박물관 유치가 전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시 기획자들도 상업적 블록버스터 전시로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일례로 일본 오다이바의 팀랩 보더리스 전시는  한 해 5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1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투자한 100억의 비용을 모두 환원했다. 이제는 미술이 산업 전역에서 가치를 만들고 돈을 버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영인들도 미술을 예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각 산업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