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Project

9817711
: 동북아시아 지역사와 시대정신

5 Sep - 5 Oct 2015
시안 미술관 (Xi’ an Art Museum)
China

작가 Artist

  • 김구림, 성능경, HUANG Rui
  • XU Yong, 천경우, 홍지윤
  • 박제성, SHEN Guang, HE Dan
  • HOU Zhuowu, TIAN Li
  • WANG Fenghua, 권순학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의 담론을 논할 때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제시되는데 ‘분쟁역사를 배경으로 한 민중미술’과 ‘서구문화에 중축을 둔 현대미술 발전의 고찰’이 그 것이다. 서구 중심 현대미술 담론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아시아 현대미술이 전통의 계승, 담론 간의 충돌 혹은 흡수의 과정 속에서 독자적인 담론을 탄생시켰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들 근대 이 후 미술에서 서양미학과 분리된 동양적 미를 찾고자 할 때 민중미술사에 그 근간을 두는데 19세기 후반 청일전쟁부터 시작된 동북아시아의 침략전쟁과 혁명에서 비롯한 저항의식과 민중미술은 150여년간 지속된 골 깊은 갈등으로 근접국가간의 저항적이며 부정적 의식을 표출한 동아시아 미술의 특수성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러한 특색은 서구미학에 기인한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고찰이라는 또 다른 흐름과 상충되는 아이러니를 가지게 되어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가치와 근원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주장에 더 많은 근거를 요구하게 된다.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과 함께 논의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사 연구는 동아시아 국가간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통합적 관점에 의한 지역사의 상대적 기술과 공유를 통한 동아시아 국가간 화합을 위한 과제이다. 최근 글로벌 네트워크로 물류, 자본, 문화, 노동력의 이동이 용이해진 시장의 세계화에 반해 아시아의 연합이라는 숙제는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의 여파로 유럽연합의 출범이 자극제로 작용되지 못한 채 역사적 갈등으로 동아시아를 특수화시키고 있다. 이어지는 영토분쟁과 여전히 드러나는 제국주의의 욕망, 한반도의 남북분단, 열강들의 패권다툼, 자국중심주의적 역사인식과 이로 인한 연쇄적인 갈등은 회복되지 않는 후유증과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본 <9817711展>은 동북아시아 현대미술 담론과 더불어 아시아 현대미술의 폭넓은 연구를 위해 지역사를 근거로 한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흐름과 그 맥락을 같이하여 아시아 현대미술의 유입과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동북아시아 현대미술 담론을 국가 중심에 두지 않고 권역 내 현대미술 이슈와 사회적 배경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본 전시에서 소개하는 한국과 중국의 현대 미술이 지역사적 특성을 기반으로 하여 어떠한 동류를 형성하고 있는지, 또한 그 경계에 있는 조선족 미술의 경우에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동아시아 미술사 연구의 전신이 될 동아시아 지역사 연구를 통해 국가정체성과 지역정체성 공존을 모색하여 아시아 현대미술의 담론 고찰에 앞서 동아시아 지역정체성과 동질성 회복을 본 전시의 당면과제로 제시한다.

  •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의 지형도

역사적으로 아시아는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유사성, 연관성에 따라 동아시아, 이슬람과 아랍의 서아시아, 인도의 남아시아, 유목세계의 내륙아시아로 나뉘었다. 근대이전 동북아시아 관계는 중국중심의 조공 책봉 체제로 위계화되어 있었고 유럽문화의 영향을 받은 미술양식이 주변국가로 확산되어 조선 또한 쇄국정책에도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양화법이 전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해 기독교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이 유럽세력이 동북으로 북상하여 아편전쟁을 통해 동북아 국가들까지 식민지로 확대되었고 역외 식민세력에 의한 제국화는 기존 아시아 국가들의 상호관계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 후 일본의 한국병합으로 역내 식민세력의 제국화가 이어지며 이에 저항하는 반제의 동아시아로 양분화되었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제국화로 인한 위계가 붕괴되고 한반도를 경계로 서구 열강들의 패권다툼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한 냉전체제가 현대 동아시아 지정학적 지형도를 형성하였다. 동아시아의 냉전시대는 서구의 현대미술이 동아시아 미술사의 판도를 바꿔버린 시기로 지역갈등으로 인한 자국중심주의적 사상과 저항의식이 상충되며 미술 담론은 국가 내부에 머물게 되고 서구 중심 미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로서 서양의 것은 새롭고 발달된 것, 동양의 전통적인 것은 고루하고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잡게 됨으로써, 문화 또한 그 상대성을 잃고 서양의 스타일과 미적 기준이 올바르고 훌륭한 것인 양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양 미술사와 비평론을 중심으로 근현대 미술의 흐름이 재편되고, 작가들 또한 아시아에서는 가장 서구 개방이 빨랐던 일본으로, 또 미국과 유럽으로 떠나 그들의 미술을 좇는 경향이 동아시아 미술의 양태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완화되며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여 정의를 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동양철학에 입각한 미학론 생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사유단위로 설정하여 현대미술사를 서술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를 위해 동북아시아 현대사를 조명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자국중심주의적 사고의 대립’과 상반된 활발한 문화상호작용을 살펴본다.

최근 통합적 관점의 동아시아 현대미술사 서술의 근간을 동아시아 지역사로 두고 국가간의 연관성과 미술경향의 흐름을 소개하는 많은 전시와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가운데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관계를 근간으로 한국, 일본, 대만의 60년대 전위미술의 발단과 유기적 흐름을 설명한 아카이브 전시 ‘거대한 초승달, 1960년대 예술과 동요 – 일본, 한국, 대만(Great Crescent, Art and Agitation in the 1960s – Japan, South Korea, Taiwan)가 일본 모리미술관(2015.4.25-7.5)과 홍콩 파라싸이트(Para Site/2013.11.22-2014.2.9)에서 전시되었다. 본 전시는 냉전시기 양분화된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 세력의 영향을 받은 국가로서 한국, 일본, 대만을 소개하고 60년대 전위미술 경향과 흐름을 분석하여 사회적 배경에서 그 발단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아시아 현대미술은 지정학적 기반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유기적 흐름을 가지며, 서구중심의 해석과 독자적 견해가 공존한 조망을 하고 있다.

<9817711展> 역시 냉전시대 이 후 동북아시아 현대미술 흐름과 사회적 배경에 중심을 두고 ‘전쟁과 해방, 이데올로기’의 근대사를 공유한 동북아시아 지역 중 중국대륙과 한반도로 그 권역을 정의하고 현대 아시아의 이념적 갈등의 격전지인 한반도를 기점으로 중국내륙까지 북상하여 지역관점으로 현대사와 문화교류전개, 현대미술 담론형성 과정을 관찰하고자 한다. 한반도와 중국내륙 영토의 합인 9,817,711m²에서 본 전시 제목을 선정한 배경에는 산술적 의미로서의 권역 정의를 통해 서구중심 혹은 자국중심의 아시아 현대미술 해석을 지양하기 위함이다. 적대적 구도와 우호적 관계가 공존하며 이념적 단일성 뒤에 외면된 다문화 사회로서의 동북아시아를 살펴보면 한반도 분단과 한•중 수교, 교류의 거점인 조선족 사회를 통해 문화예술지형도를 형성했고, 권역내 현대미술 경향 속에서 많은 유사점과 그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데올로기적 정치현상과 동반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이 대표적이다.

동북아시아에 서구 현대미술 이론과 개념은 냉전시대 전후로 급작스러운 개방개혁을 거치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입되었으며 그 경로와 확산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전시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억압된 한국사회 속 전위미술 태동을 시작으로 문화혁명 이후 기성예술의 부정과 검열의 거부로 나타난 중국 전위미술운동과 지정학적 관계 속에서 교류, 확산된 오늘날의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이다. 이 가운데 북한과 권역내 국가의 다자간 갈등관계에 대한 타자로서의 입장과 견해를 보여주며 객관성에 근거한 북한 문화 해석방법에 대한 고민한다. 또한 동질성 회복의 촉진제로서의 조선족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고 현대 동북아시아 미술사의 독자적 담론과 계승부분에 대한 근거를 현대 동북아시아 이슈를 바탕으로 비취 보며 그 시사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억압과 개혁, 한국 전위미술의 태동

일제침략사를 지역사적 배경의 시작점으로 두었을 때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사적 전개를 보인다. 침략과 해방, 내부갈등과 혁명, 서구 열강들의 패권다툼으로 인한 갈등이 그것이다. 일본 화단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미술로 대변되는 193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후반 한국 화단은 엥포르멜이 주도했고 국제적 경향과 함께 70년대와 80년대는 포스트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이 나타났다. 이우환, 박서보 등을 중심으로 단색화의 이론이 화단을 주도했던 1970년 한국 현대미술 계보를 모더니즘 관점에서 바라본 기존의 해석에서 그 중심을 사회적 현상과 더 가깝게 호흡한 비주류 미술로 옮겨 해프닝으로 대변되는 행위미술이 나타난 1960년대 한국 전위미술의 탄생 배경과 전개과정을 살펴본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는 군부가 집권하고 있었던 시기로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 도시재건을 위한 조직적인 계몽운동과 군사정권의 탄압 아래 1960년대 한국 전위미술의 태동은 ‘한국청년작가연합회’ 주최의 <청년작가연립전>의 개최와 함께 했다. 이 전시회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화단을 지배해 온 앵포르멜에 반발하여 오브제, 설치, 해프닝 등 실험적 경향에 주력하였다. <청년작가연립전>은 1967년 1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열렸으며 한국 최초 행위미술로 기록되는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 발표되었다. 해프닝, 이벤트로 대변되는 초창기 전위미술은 정치적으로 억압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언더그라운드적 성격의 반문화 운동으로 기성문화와 사회에 대한 문화비판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현대미술 운동은 1970년대 <사이비 문화 장례식>과 같은 ‘제4집단’의 반문화적 시위와 함께 <신문읽기>, <장소의 논리>와 같은 ‘S.T.’, ‘AG’가 주도했던 개념적 행위예술 이벤트가 등장하며 80년대 민중미술로 이어졌다.

이렇듯 초창기 한국 전위미술은 그룹 중심으로 활동 전개를 보였고 ‘한국청년작가연합회’,  ‘제4집단’, ‘S.T.’, ‘AG’, 신체제’가 대표적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각 그룹들은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각각의 특성을 가졌는데 공통적으로 실험적 시도를 중시하였고 미술계 외 사회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성미술에 대해 비판적 태도와 전위적 성격을 보였다. ‘제4집단’, ‘S.T.’, ‘AG’가 출범했던 1970년대 사회상황은 길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할 정도로 유신정권의 감시와 극단적인 검열로 경직되어 있었다. 장르의 벽을 넘나드는 새로운 미술과 자유로운 실험의 국외 미술계 상황과 대조적이었던 한국 미술계는 군사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적 현실과 동떨어진 괴리감을 보였다.

이 가운데 실험미술을 주도했던 김구림, 성능경, 이건용, 이승택 등을 중심으로 전위그룹, 현대미술학회가 결성되었고 김구림의 선도로 결성된 ‘제4집단’은 사회문제에 가장 극적인 대항과 직설적 비난, 풍자를 보이며 사회상 관통한 예술철학을 펼쳤다. ‘제4집단’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인 <사이비 문화 장례식>은 1970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사직공원에서 진행된 일종의 예술시위로 기성예술을 상징하는 물건을 태극기가 덮인 관에 넣고 ‘문화예술의 장례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한 후 관을 들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결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의 저지로 행진은 중단되고 김구림은 연행되어 심문을 받았다. 김구림의 증언에 따르면 ‘제4집단’의 운영자금을 북한에서 지원받은 것이 아니냐며 정부로부터 강한 압박과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제4집단’은 해체선언을 하였다.

이건용, 성능경, 김복영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현대미술학회 ‘S.T.’는 ‘개념적 이벤트’를 등장시키며 집단적 전위행위에서 이론을 중심으로 한 개념적 행위미술로 전위미술의 판도를 바꿨다. 1971년 국립공보관에서 창립전을 가지고 1974년 성능경의 <신문: 1974년 6월 1일 이후>를 시작으로 이벤트의 포문을 열었다. <신문: 1974년 6월 1일 이후>는 1974년 6월 21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제3회 <ST>전에 출품된 성능경의 작품으로 신문기사를 읽고, 읽은 부분을 면도칼로 도려내고 벽에 붙이는 행위로 언론 검열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사회상황 속에서 현대미술의 맥락을 찾은 한국 전위미술은 60년대의 해프닝이 우발적 충동에 의한 저항 의지로 행위를 전개해 나간 반면, 70년대의 이벤트는 보다 논리적이며 이론연구에 의해 전개되었고, 80년부터는 미술 외 분야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총체적 성격을 띠며 현재의 전위미술은 다양한 층위의 사회현상부터 사적 담론까지 담아내고 있다.

최근 한국 내에서 당시의 전위미술을 재조명하는 많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시대와 사회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더불어 아시아 전위미술의 역사적 배경과 국가간의 유기적 관계를 주목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격동의 아시아 60년대 전위미술이 한국화단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차세대 미술인들이 어떻게 계승해나가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 혁명과 검열, 중국의 미술운동

중국현대미술은 외부적 형식의 새로움이 확산되거나 충분한 실험을 거친 자체적 발전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event’과 같은 일시적 사회문화현상으로서 그 생명력을 지속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현재 중국 현대미술의 시간성, 즉 ‘동시대성 contemporary’은 그러한 비연속적인 중요한 사건들의 연속선상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가오밍루’는 1978년 이후의 중국의 현대미술을 ‘비非 예술’이 아니라 ‘반 反예술’에 속한다는 점에 입각하여 분석한다. 1978년 개혁개방과 동시에 급격하게 형성된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조류는 기존의 중국미술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에 행해졌던 미술의 형태를 부정 또는 반대하는 모습을 취하였다. 이는 이후의 중국미술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는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후문화혁명 시기(1977-1984)를 시작으로, 85 미술운동 시기, 1990년대,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오늘날의 시점까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후문화혁명 시기는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후 85미술운동으로 불리는 중국추상미술운동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1984년까지를 말한다. 따라서 이 시기는 문화혁명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학으로부터 벗어나 서구 모더니즘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화풍상의 전환기로 볼 수 있다. 문화혁명이 막을 내리고 개혁개방과 함께 사회문화 전반에 자유와 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미술계 역시 다양한 서구 미술을 소개하는 활동을 펼쳤다. 당시 분위기 속에서 조직된 단체가 ‘싱싱화회’였다. 이들은 1979년 첫 전시를 통해 파격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1980년대 후반을 주도했던 다양한 미술의 조류들을 선구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후 ‘85신조미술운동’의 문을 열었다. 이들의 전시가 공권력의 개입으로 폐쇄되고 무산되었던 일련의 과정은 중국 아방가르드미술의 시작을 알린 하나의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후 일어난 ‘85신미술운동’은 두 번의 정치 운동인 반-정신오염운동과 반-자산계급자유화운동 사이에서 나타난 예술운동이다.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든 85신미술운동은 여러 압력 속에도 오로지 사상적 신념과 낭만주의적 열정으로 전위 미술활동을 전개했고 이는 전국에 걸쳐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순수한 이상 지향과 함께 중국 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적 역량을 형성하고 중국 현대미술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중요한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과 동시에 천안문 사건이라는 참극으로 방향을 잃은 중국의 혁신 세력들은 깊은 분노와 공허감에 빠져들게 된다. 격동의 역사를 거친 1990년대 초 중국 전위미술계의 심리는 매우 모순적이었다. 개혁운동의 실패에 대한 분노와 미련,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에 대한 자조 섞인 허무 심리가 교차하며 그들은 비판의 의미를 불신했으며 반 이상주의적 심리와 해체주의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이들은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 85신미술운동과 천안문사태 등을 통해 반복적인 가치의 수립과 와해를 겪으며 성장한,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젊은 세대였다. 그들은 1980년대 말 개혁개방의 부작용, 신계몽주의와 85신미술운동의 실패, 천안문 사건의 비극적 결말 이후 90년대로 이어지는 중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과 사람들의 모순된 심리를 폭로하며 ‘신생대’, ‘정치적 팝 아트’, ‘냉소적 사실주의’. ‘아파트먼트 아트’와 같이 다극화된 행태의 예술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 85세대 역시 충동적 저항 방식에서 벗어나 현실적, 실질적 차원의 생존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체 상태에 놓였던 반관방 예술계는, 시장화 개혁이 시작되자 시장 시스템을 이용한 반관방 미술의 사회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제도적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개최된 <후89: 중국신예술전>은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으며 이후 7년간 7개국 16개 도시를 순회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이로써 ‘후89미술’은 반(反) 80년대 경향의 새로운 미술현상으로 정의되어 그 안에서 ‘완세현실주의’, ‘정치적 팝 아트’등으로 나뉘어 명명되었다. 이후에도 후 89미술은 세계 주요 비엔날레에 초청되며 시장에서의 흥행으로도 이어져 중국 현대 미술시장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렇게 획득한 국제적 명성과 실력으로 후89미술은 관방미술 체제의 오랜 독선과 권위적 태도를 허물고 중국 미술이 보다 다원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의 중국 현대미술은 상해 비엔날레, 광주 트리엔날레, 북경 비엔날레와 같은 각종 관방 전람회 안에서 국제화, 다양화 되어 국제 미술과 소통하고 있다.

  • 통제와 폐쇄, 북한의 사회주의 미술

북한의 현대미술 연구에서 ‘주체미술과 우상화’를 제외한 담론이 발표된 예가 있을까? 권역 내 주변국가의 체제 비판적 동시대 미술과 비교했을 때 북한의 현대미술은 정치선전에 중점을 둔 사회주의 미술의 극단을 달리며 상이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한미술의 모태가 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북한의 우상화 정책과 주체미술은 정치적 사상에 따라 시기적으로 분류되는 미술상황은 정치적 시각에 의해 왜곡되고 상실되어온 북한현대미술의 단면을 제시한다.

일제 해방 후 북한은 소련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기초로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공산주의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 가는 과정에서 김일성을 유일사상으로 ‘주체적 문예이론’을 만들어 예술가들에게 철저하게 주입시켰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북한의 현대미술은 대중성과 선동성을 드러내는 매체로 기능하게 된다. 미술가의 순수한 미적 가치 혹은 철학적 견해가 아닌 인민 대중의 정치, 사상적인 교화 수단 또는 당 정책의 효율적인 전파 수단으로 활용된다. 김일성 유일체제에 대한 찬양으로 문화정책을 이끌어가는 우상화 경향은 해방 후 ‘혁명미술의 전통’으로 계승되어 70년대 이후에는 주체미술의 논리와 체계로 자리잡았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김일성의 초상화 제작은 단 몇 개월 만에 9만점을 제작하였고 1946년에는 25만점이나 생산하며 새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정책 속에 북한의 미술은 사실주의 기법에 기반한 조선화와 조각, 판화가 발달하였으며 특히 판화는 제작의 편의와 확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 받는 미술 장르이다. 북한 현대판화의 뿌리를 중국 ‘창작판화운동’에서 보인 목판화의 영향과 남한에서 월북한 미술가들의 월북 이전 작품에서 찾아 볼 수도 있는데 배운성이 대표적이다. 배운성은 판화의 선구자로서 해방전 독일에서 유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여백을 살린 간결하고 섬세한 그의 기법이 북한 현대판화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 속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으나 외부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북한의 미술은 우리가 인정하는 예술성과 다양성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북한의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의 변화상을 숙지하고 그것을 바탕을 예술작품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조정이 필요하다.

  • 교류의 매개, 조선족 현대미술의 현주소

본 연구에서 설정한 권역 내 국가들 사이에서 조선족은 문화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교류의 매개이며 통합의 열쇠를 쥔 특수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족 미술이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어떠한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보기 앞서 조선족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본다.

중국의 조선족(현재 약 200만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 조선의 재난민들이 중국 경내에 들어와 개간하며 점차 집결하기 시작, 본격적인 거주에 이르게 된 월경민족이다. 그렇기에 중국 내 소수민족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조선의 역사를 공유한 한반도인들과도 다른 정체성을 보인다.

한민족의 뿌리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의 정체성을 이중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정판용의 ‘시집 온 며느리론’ 속 묘사처럼, 중국 조선족은 한국을 친정으로 두고 중국에 시집 온 며느리인 셈이다. 며느리로 중국에 살고 있지만 친정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품고 살아간다는 말로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이 대변된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 사회의 변화 가운데 뚜렷한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인구의 이동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중국 조선족은 지연, 인연, 언어 등의 우위를 이용해 국내 및 해외까지 진출하게 된다. 중국의 동북 삼성, 특히 연변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의 집단주거 형태는 중국 여러 곳과 한국으로의 분산이 뒤따르게 되었으며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재한 중국 조선족 동포는 52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중국 내의 관내 인구분산은 60만명정도로 추산된다. 월경인으로서 조선족은 그 어떤 민족보다 유목민적 근성이 강한 디아스포라라 할 수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계를 가로 지른, 상호문화적 지평에서 양자를 융합하는 문화적 역동성은 글로벌 시대에 조선족의 정체성 형성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제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 간 민족과 국가 사이의 정체성 담론에 머물러만 있을 수 없으며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월경인’으로의 조선족의 초국성(transnational)은 탈민족주의와 탈식민지주의를 시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글로벌시대에 특질이자 장점이 된다.

이러한 조선족의 특수한 문화적, 역사적 환경은 조선족 미술사에서도 그 특징이 보인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문화소수자적 입장과 정체성에 대한 과잉된 집착이 그것이다. 조선족 1세대 현대미술가 한락연, 석희만 외 몇몇의 조선족 미술가들의 국제적 활동을 계기로 조선족 미술이 외부에 알려지고 조선족 현대미술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 중 해방직후 북한의 유일한 미술학교인 조선해주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미술인도 있다. 조선족 미술은 또한 중국 미술계에 속해 있으며 사회주의 미술체계의 영향을 받으며 러시아식 미술교육을 받았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방법론으로 수용하며 전통을 계승하려는 시도로 민족미술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한국 이주 열풍으로 한•중 문화교류와 북한 미술과의 가교역할로서 조선족 미술이 주목되기도 하며 많은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중국미술 붐으로 외부에 집중되어 있던 조선족 미술인들의 관심이 중국 내부로 돌아가 최근 조선족 미술인들은 중국미술계에 더 깊숙이 편입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어 발음으로 영어표기를 했던 이름을 중국어 병음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조선족 작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선족 화단과 미술 경향의 변천은 동북아시아 미술사와 패권의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중적 정체성을 가진 조선족 현대미술의 흐름은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 9,817,711 km², 동북아시아 지역사와 시대정신

현재 한국과 중국내의 자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초창기 전위미술이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 조명되면서 자국의 현대미술을 주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하여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의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자국 현대미술에 대해 관심은 아시아로 확대되어 주변국과 유기적 흐름을 함께한 사례를 통해 아시아 지역사를 관통한 현대미술 경향의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역사, 미술분야 외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이해의 중심에 한반도 분단이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시아가 경험해 온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상흔이자,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냉전으로부터 이어지는 삼엄한 지정학적 경계 위에 예술적 교류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시장의 확대가 아닌 교류를 통한 긴장완화와 상호이해에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본 전시는 전쟁역사로 인한 국가간 갈등과 현대미술 정체성의 고민을 가진 동아시아 상황을 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예술적 언어로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북아시아 관계를 주제로 한 외교이슈, 군사안보관계, 역사, 문학, 현대미술 등 모든 사회, 문화적 이슈를 망라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지역사에 근거를 두어 완성된 하나의 원류로서 동북아시아 현대미술사를 발전 시키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참고문헌

윤진섭, 『행위예술의 이론과 현장』, 진경, 2013년

김미경,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 경계를 넘는 예술가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9년

김승연, 엄정호, 『북한의 현대판화 연구: 195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한국기조조형학회, 2004

목수현, 『경계에 선 정체성-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중국 조선족 미술』,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2

림무웅, 『중국 조선민족 미술사』, 시각과 언어, 1993

김영필,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만주아리랑』, 소명출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