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종주국 영국이 ‘멘털 캐피털’에 꽂힌 이유

영국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NEF)이 지난 2008년 낸 보고서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정부 의뢰로 NEF가 수년간 연구에 몰두한 끝에 내놓은 이 보고서는 영국의 미래 신성장 동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결론은 ‘정신적 웰빙(Mental Wellbeing)’ 강화를 통해 ‘멘털 캐피털(Mental Capital ·정신적 자본)’을 축적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21세기 영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NEF는 보고서에서 다섯 가지 행동 강령을 제시했다. 주변과 소통하기(Connect), 적극적으로 활동하기(Be Active), 호기심 갖기(Take Notice), 계속해서 배우기(Keep Learning), 베풀기(Give) 등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다섯 가지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신적 웰빙 상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분 좋게 느끼기(feeling good)로 이는 행복함, 만족감, 즐거움, 호기심, 관심 등으로 표출된다. 둘째는 잘 행동하기(functioning well)로 긍정적 관계 형성, 자기 관리, 목적의식 등으로 나타난다.

영국 정부는 이후 대대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전국 지자체가 중심이 돼 지역 주민들이 만나고 참여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특히 정신 건강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노인·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임과 동아리, 스포츠·문화 활동을 활성화했다. 또 문화·예술 단체와 기관들이 시민들의 정신 건강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했다. 예를 들어 테이트 미술관은 3년 전부터 ‘비주얼 아트’라는 단체와 협력해 예술가들이 직접 지역 청소년, 어린이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15가지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특히 심혈을 기울인 전략은 문화·예술을 통해 정신적 웰빙을 한 단계 올려놓겠다는 것이었다. 영국 보건부는 2010년 웰빙 보고서에서 “개인 및 단체의 문화·예술 활동은 긍정적 사고와 목적의식을 심어준다”고 명시했고, 앨런 존슨 전 보건부 장관은 문화·예술 활동이야말로 국민의 정신적 웰빙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 존재라고 말했다.

영국이 ‘정신적 웰빙’과 ‘멘털 캐피털’ 전략을 추진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영국 사회 곳곳에선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의료와 건강보험 쪽에선 뚜렷한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영국 의회가 지난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적 질병·장애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다양하게 문화·예술을 접하게 한 결과, 이들이 병원을 찾은 횟수는 37%, 입원 횟수는 27% 줄었다. 환자 한 명당 병원비는 연평균 216파운드(약 33만원) 절약됐다. 병원비가 무료인 영국 의료 체계를 감안할 때,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예산을 절약한 것이다.

영국의 수준 높은 정신적 웰빙 추구는 국민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는 자신들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창조적(creative)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영국인들이 정신적 웰빙을 ‘멘털 캐피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이런 것 때문이다. 정신적 웰빙은 미래 자산이자 자본인 셈이다. 문화적 수준이 높은 국민이 창조성이 높은 원리인 셈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술 등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때, 산업혁명 발상지인 영국이 정신적 웰빙에 눈을 돌리는 움직임은 결코 예사롭게 봐 넘길 일이 아니다. 영국이 이런 전략을 세운 배경과 비용·효과를 따져보고 전망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의 시대의 도래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의 시대의 도래

 “오리지널리티의 가치에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다시 생산하는 산업”

– 창조산업: 개인의 창의력과 기술 및 재능을 근원으로 하는 산업이나, 그 잠제성을 가진 산업

– 총체적 새로운 창조산업 에코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

– ART 마켓팅? 후원인지 마켓팅인지를 방향성이 중요

 

< 밀레니엄과 창조산업 >

지난 10년 많은 글로벌 기업과 산업에서 더욱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단어는 창조산업이다. 하지만, 사실 이 창조산업이라는 단어를 정부적차원에서 처음으로 정의를 시작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한때의 제국인 영국이 새로운 4차혁명을 시작하는 진입구에서 영국의 문화관광부인 DCMS은 2000년도 ‘개인의 창의력과 기술 및 재능을 근원으로 하는 산업’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즉 개인의 지적 소유권(IP)을 통해 고용 및 부를 창출할 수 분야뿐 아니라 가능성(Possibilities)도 포함되어 있는 산업이라는 내용이다. 어떤 아이디어나 사상보다는 경제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임을 정의 하였다. 더불어, 정부의 역할은 정부가 직접적 경제적 생산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창조적인 경제적인 구조(Framework)를 구축하는 산업 및 기업의 경제적 생산 효과 및 가치를 조성하는 것이다. 창의와 혁신 양성을 통해 사회는 문화적 다양성과 경제적 성장을 증진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시도를 진행한 15년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영국의 전설적 크리스 스미스 (Chris Smith )장관은 창조산업분야를 광고, 영화&비디오, 건축, 미술관&박물관, 공연예술, 패션, 출판, 공예, 소프트웨어 디자인, TV 라디오, 컴퓨터, 게임같이 정리하며, 이를 운용할 중요한 다이어그램을 소개하였다. (도표1) 이 다이어그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 중심에 창의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각 분야의 오리지널들의 생 것/날 것은 어떻게 더욱 2단계 3단계 ‘컨텐츠 화’ 시키며, 그 컨텐츠를 ‘서비스’하여, 이를 통한 새로운 경험을 창출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창조산업의 에코 시스템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창조산업의 핵심 창의적 지점의 오리지널 지점에 ‘아트’를 지목하면서, 매우 추상적일 수 있는 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유일성의 오리지널성 및 그 창의적 사고를 가장 중요한 시작점으로 지칭하였다. 당시 매우 놀라왔던 점은 장관 자신이 쿨 브리테니아 (Cool Britannia)라는 문화정책 보고서를 매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였다. 런던 지하철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종종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영국 국기가 그려진 가벼운 소설 책 같은 책이 그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2000년, 필자도 미술 경영 석사 졸업반에 있을 때, 크리스 장관은 그런 런던대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직접 특강을 통해 이 새로운 정책을 필력을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창조산업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기도 하고, 과연 그 규모나 발전 현황을 현장에서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실례로 영국은 2017-2018년 기준으로 1년간 영국 GDP의 30%(130-147조원)정도가 창조산업에서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예산의 400조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매우 놀랍고 가시적인 숫자임은 확실하다. 이 GDP 30%는 스포츠 13%, 미디어 8%, 시각문화 9%의 분포를 가진다. 물론, 혹자는 축구가 종교같은 영국같은 나라이기에, 이러한 분야가 더욱 커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르나, 시각문화 부분에 대한 한국의 창조산업 가치가 약GDP의 1.5%가 정도 차지하는 규모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창조산업분야에서 경제적으로 가치를 키워나가고 있는 실정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영국의 경우를 조금 더 살펴보면, 2011년 이후 영국에서만 창조산업분야의 일자리는 30%, 약 2백만개가 증가했고, 그리고, 현재도 10개의 일자리 중 1개 이상이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에 있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영국이 자랑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자 GDP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financial service industry에 있는 것 보다 70만명의 더 많은 직업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creative industry의 종사자는 3백만명이라고 나왔고, 이는 매년 5%정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이 분야의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일들에 87%가 AI로 인한 자동화의 시대가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직업 군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특히나 한국과 같은 제조 및 자연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creative industry가 미래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도표1) 창조산업분야는 광고, 영화&비디오, 건축, 미술관&박물관, 공연예술, 패션, 출판, 공예, 스프트웨어 디자인, TV 라디오, 컴퓨터, 게임 (Advertisement, Film and video, Architecture, Museum & Gallery, Art & Design, Performing art, Fashion Designer, Publication, Craft, software design, TV and radio, Computer and video games)
(출처: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Arts (NESTA) Report)

<시각예술 경영의 시대 도래>

이제 예술경영이라는 분야를 살펴보자. 이 창조산업이라는 맥락에서 예술 경영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즉, 아티스트라는 한 개인의 창의력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내는 가장 핵심부에 있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러한 다양한 오리지널들의 새로운 컨텐츠화가 매우 중요한 IP를 이룰 수 있는 창조산업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부분은 넓은 의미의 예술경영이 아닌, 시각예술에 더욱 좁혀진 분야에 대한 논의이다. 예술경영은 기본적으로 대중 마켓을 가지고 있는 공연예술경영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 10여년간 매우 큰 발전을 보인 뮤지컬 시장이나, K-POP매니지먼트, 한류와 함께 커지는 시장이 있기에, 더욱 예술 경영은 공연예술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반면, 시각예술경영의 분야는, 그 산업의 핵심인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경영이 여전히 공공영역의 지원이나 비영리 재단 운영안이 대체하고 있는 입장이고, 특히 미술이나 디자인 등은 어느 특정한 시장의 논리로 대응되는 시장으로 간과 되고 있었다. 해외의 대규모 컨벤션 산업과 같은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도 마이스(MICE) 산업으로의 발전도 상당히 더디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예술 경영의 분야가 새롭게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아트 라는 속성이 더욱 커팅에지cutting edge에 있어야 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대중화되기를 ‘기꺼이’ 꺼렸던 속성들이 새로운 소설미디어와 테크놀로지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즉, 제트 제너레이션 S(Screen)제너레이션 이라 부르는 젊은 세대의 관심이 이 아트와 디자인 산업에 집중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살펴볼 시각예술 경영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신세대와 교감하고 새로운 미래 고객들을 잡기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써 포지션 할 수 있는 시간에 이르렀다. 아마도 지금까지 진행이 더디었던 시각예술 분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인싸이트Insight가 필요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소개할 분야는 크게는 4개의 분야이다. 첫째는 우리가 가장 쉬이 아트경영하면 생각할 수 있는 아트 콜레보레이션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아트 마케팅이며, 그러한 아트 협업이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스폰서쉽의 형태로 발전한  기업의 아트스폰서쉽 사업, 세째로 밀레니엄과 더불어 사상최대의 기록을 보이는 글로벌 미술시장에 대한 흐름, 마지막으로 부동산 개발 및 지역 재개발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자리잡는 공공미술로서의 랜드마크 아트 및 아트 뮤지엄콘텐츠 산업으로의 확장이 그것이다.

 

<아트 마켓팅>

아트 마켓팅이라 할때 가장 처음으로 사용되는 선례는 아마도 2000년도 루비통이 긴자에 그들의 최대의 플레그쉽 매장을 일본 작가인 타카시 무라카미와 진행한 프로잭트 일 것이다. 사실 1980년대 앤디워홀이 BMW와 함께 한 것도 있고, 기업과 아티스트 브랜딩을 통한 협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매우 글로벌적으로 기업의 전략적 프리미어 아트 가방인 루비통 런치는 가장 큰 선례가 되었다.

당시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은 2002년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 2003년에 대중에 공개된 다카시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 라인을 통해 루이비통은 또 한번 큰 성공을 거두며 아트와 패션이 조화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혔고,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고급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

사진1)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비통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이후에도 루이비통을 일본작가인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이어나갔다. 루이비통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에 메인 후원사로 나섰고, 루이비통-쿠사마 야요이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회고전의 오픈과 함께 공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60년대부터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쿠사마 야요이는 그녀가 경험하는 환영을 끊임없이 반복되는 점, 물결, 괴상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고, 정신병을 앓았던 이력만큼이나 큰 예술적 영향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개인적으로도 쿠사마 야요이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삶과 세계에서 가능성을 보았다고 밝혔다.

사진2) 루이비통과 야요이 쿠사마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여기서 주목할 점은, 프랑스의 100년이 넘은 역사의 브랜드가 왜 일본작가와 협업을 하였을 까. 왠만한 럭셔리 소비자들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도 있다. 1978년 아시아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하였고, 지금은 일본이 루이비통의 국제마켓 점유율 6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일본 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그 당시 예술계의 흐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출의 극대화를 노린 루이비통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완전한 프리미어 마켓팅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또한, 루이비통은 무려 4배의 가격이 넘는 무라카미 루이비통 가방을 글로벌 적으로 유통시켰다. 그 희소성과 상징성 때문에 무라카미 다카시의 가방은 경매에서 거래되는 가방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2014년에 두번째로 진행한 야요이 쿠사마와의 협업 당시에도 루이비통은 글로벌화된 중점 국제 플레그쉽 스토어를 완벽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물론 쿠사마 작품 또한 매우 고가의 작품이기에 그녀의 패턴이 들어간 가방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브랜딩의 프리미어 럭셔리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아트 마케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루이비통 이후 지금도 수 많은 기업들이 아트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루이비통의 성공사례에서 배울 점은 아트를 마케팅에 매우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글로벌 마케팅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트 마케팅은 안하면 안하지 막상 하게 되면 그 가치를 최고로 만끽 할 수 있는 만큼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함을 강력히 필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이 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하는 모든 활동을 아트마케팅이라 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예로 소개할 만한 것이 롱샴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콜라보레이션이다. 트레이시 에민은 1980년대 영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일군의 젊은 작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중 한 명이며, 이 시기 현대미술의 중심을 뉴욕에서 영국으로 옮겨놓은 중요한 작가이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할 개인적인 이야기, 예컨대 계속된 자갈 기도와 강간, 낙태 등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과감하게 드러내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녀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으로는 1995년 공개한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1963-1995)인데, 제목 그대로 지금껏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낸 102명의 이름을 텐트에 새긴 작품이다. 그 이후로도 테이트 브리튼에서 선보인 ‘나의 침대(My Bed)’라는 작품에서 지저분한 침대와 헝클어진 이불, 아무렇게나 놓여진 보드카병, 담배갑, 재떨이 등 도발적인 요소들을 선보이며 1999년 터너 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예술계의 악동으로 알려져있던 그녀는 2004년과 2005년 롱샴과 협업하여 그녀의 작품을 가방으로 선보였다. 롱샴의 가장 대표적인 컬렉션인 플리아주 가방(le pliage bag)에 그녀 자신이 어린시절 사용했던 담요, 원피스, 커튼, 쿠션 등을 덧붙이고 ‘always me’, ‘international woman’, ‘you said you loved me’, ‘alone’ 등의 단어를 새겨놓았다. 그녀가 삶과 사랑을 통해 느꼈던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이 작품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있다.

사진3) 롱샴을 위해 만든 트레이시 에민의 가방

롱샴과 트레이시 에민의 콜라보레이션은 위의 루이비통의 사례와 극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트레이시 에민은 외설적인 성적 비유와 파격적인 작업들로 사회에 논란을 주었던 작가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러한 점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로 생각된다. 그러나, 롱샴은 그녀를 선택했고 이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인 매출의 증대보다도 기존 롱샴의 이미지를 뒤엎고 예술적인 이슈를 만드는 길을 택했다. 이를 통해 작가를 지지하고 예술계에 담론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공헌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례로 볼 수 있다.

 

<아트 스폰서쉽 사업>

위의 사례에서 살펴본 아트 협업이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스폰서쉽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 바로 아트 스폰서쉽 사업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중세 이후 현대까지 예술 발전의 밑바탕에는 항상 기업 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메세나(Mecenat)’로 불리는 기업 후원 전통의 근간은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비롯한 예술 대가들을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하지만 메세나라는 용어 자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60년대 데이비드 록펠러 체이스맨해튼은행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중 일부를 문화예술 분야에 할당하자’고 건의한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되면서 메세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다양한 기업들이 예술활동 후원자로 적극 참여하면서 기업과 예술은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미술 분야만 해도 미술관 건립과 운영, 전시, 행사, 작가 후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업의 후원은 빠지지 않은 요소가 되었다.

테이트 모던은 2000년 개관부터 매년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런던 예술계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특히 가로 23m, 깊이 155m, 높이 35m에 달하는 거대한 보이드공간인 터바인홀Turbine Hall은 거대한 설치작품을 보일 수 있는 곳으로 테이트 모던 내에서도 중요한 전시장이다. 미술관을 건립할 때부터 테이트모던은 기업의 후원을 기획하였으며, 원래 2012년까지 유니레버 사에게 약 60억원(4.4milion GBP)규모의 지원을 이끌어 내었다.

유니레버의 지원을 통해 이 공간은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마음껏 비전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옛 발전소 시절 전기발전기가 놓여있던 공간인 터바인홀(Turbine Hall)에서 진행되는 <유니레버 시리즈: 터바인 제네레이션 The Unilever Series Turbine Generation> 전시에는 이제까지 총 24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2000년 터바인홀의 특별전은 루이스 부르주아Pouise Bourgeois의 거대한 탑 작품인 ‘나는 한다, 되돌린다, 재생한다(I Do, I Undo, I Redo)’를 선보였고, 그 이후 아니쉬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카스텐 횔러 등의 작가들이 터바인홀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본래 미술관이 지어진 초기에는 유니레버 사가 5년간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었으나 전시가 인기를 끌면서 2012년까지 연장되었다.

유니레버는 테이트모던과의 협력에 힘입어, 사람들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게끔 하고자 하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유니레버가 테이트 모던에 제안한 수십 억 규모의 스폰서쉽은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드문 사례였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스폰서쉽을 가능하게 했던건 21세기 메디치가 되겠다는 유니레버의 비전도 있겠지만, 이러한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더 큰 광고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거라는 확신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유니레버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목격하고 있다. 당시 BBC 에 1분동안 광고를 내보내는 비용이 18억(1milion GBP)정도였던 반면에, 테이트 모던에서 한 번 대규모 전시을 열 때마다 그 내용은 BBC메인 뉴스에서 아주 크게 다뤄졌다. 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미디어에서 앞다투어 다루는 전시가 되었으니 광고비 측면만 봐도 유니레버는 큰 이익을 본 셈이다. 또한 터바인홀 지원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인식 제고, 소비자 개발효과 등 스폰서십 비용의 150%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직원교육이나 VIP고객 유치 등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기업은 후원을 통해 이미지제고와 사회에 기여한다. 대체로 부유층 고객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금융과 명품 기업이 예술 후원에 많이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선 현대자동차가 가장 적극적으로 예술후원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영국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11년 장기 후원 계약을 체결하여 65억원(5백만 파운드)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도 10년간 후원하고 있다. 또한 2015년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10년 후원 파트너십도 맺었다.

 

<글로벌 미술시장>

21세기 시각예술 경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글로벌 미술시장의 성장이다. 그 중에서도 대규모 아트페어의 탄생은 전 세계 컬렉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미술 산업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아트바젤은 1970년 바젤의 갤러리스트 에른스트 바이엘러, 트루디 브루크너, 발츠 힐트에 의해 처음 조직되었고, 개최 첫 해에는 10개국 90개 갤러리 및 30개 예술 출판사가 참여했다. 첫 해부터 16,000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하였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94년부터는 스위스의 다국적 투자 은행 UBS가 페어의 리드 파트너를 맡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마이애미 비치에서, 2013년부터 홍콩에서도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2년 설립된 아트바젤 마이애미는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2013년 설립된 아트바젤 홍콩은 최근 홍콩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는데 일조했다. 10년 전 당시 바젤 아트페어의 디렉터인 사무엘 켈러(Samuel Keller)가 매우 야심 차게 홍콩 로칼아트페어를 인수(2008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이 도래했다. 켈러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예술은 자본이 풍부한 곳에서 발전한다”고.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공공연히 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행사가 되었고, 작년에는 32개국에서 아주 어렵게 선별되어 온 247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미술계의 큰 축제였다.

유럽의 갤러리들이 상업적인 편의를 위해 시작한 Art Basel은 어느새 단기간 진행되는 행사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시장이 되었다. 아트바젤의 등장은 제도권 전시와 공공 미술이 중심이었던 주류 미술 패러다임에 새로운 무게추가 생긴 것을 의미했다.

작품 가격도 놀랍다. 2019년 아트바젤 홍콩의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국제 중견 작가들의 작품가는 1억원을 훌쩍 넘었고,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은 오프닝 3시간 만에 370억원에 거래되는 등 그야말로 5일 만에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약 8만 명이 방문하는 이 행사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의 아트바젤을 위한 준비기간만 봐도 세 개의 도시에서 열리는 해당 행사가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해도 몇 천명이 된다. 페어 개막 전에 작품 수 만점을 옮기는 운송업체부터, 운송 후 작품을 페어장 안으로 옮기는 배달업체, 작품을 실제로 부스 벽에 거는 핸들링 업체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다. 페어 기간동안에는 몇 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을 수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숙소들이 모두 매진되며, 이에 따라 주변 상권은 자연스럽게 활기를 띈다. 더불어 페어기간동안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및 파티가 열리기 마련이므로, 도시 내 호텔 및 다양한 공간에서는 흥미로운 이벤트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방문객 및 거주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매해 아트바젤 기간이 도래하면, 그 장소 주변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신진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다양한 장르의 새틀라이트(satellite) 페어들이 생겨나고, 그 주변 상권조차 살아나는 현상을 보면 아트바젤이 단순 문화예술 행사의 범주는 뛰어넘은, 도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행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술경영인의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집중해야 할 점은 UBS가 이 행사를 스폰서함으로써 얻어낸 기업 이미지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스위스 글로벌 금융기업 UBS는 아트바젤의 핵심 후원사로서 아트바젤 기간 내내 전시장 곳곳에 로고를 노출하며, 대담회나 VIP라운지 등의 부대행사 및 시설을 통해 아트바젤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아트바젤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의 경우도 독일계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대표 후원사로 올라가 있다.

이렇게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우선, 기업의 브랜드 품격을 높일 수 있고, 두 번째로 고가의 상품인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술품 구매층과 은행의 VIP고객층읜 ‘고액 자산가’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예술계의 고객들이 후원은행의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UBS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구겐하임 UBS 맵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남미지역 작가들을 후원하는데, 이 프로젝트를 UBS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식 인터뷰에서 UBS는 구겐하임과의 프로젝트를 계기고 해당 지역의 부유층 고객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프리즈를 후원한 도이체방크 또한 이 사업을 통해 ‘독일 은행’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전세계 고객들을 유치하는 ‘글로벌 뱅크’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 랜드마크 공공미술 및 아트 뮤지엄콘텐츠 산업>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영국 존 윌렛(John Willet)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밝힌 공공미술의 정의는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거나 전시되는 조형물”로, 당시에는 공공미술의 개념이 ‘개방된 장소에 위치한 하나의 완성되고 고정된 조형물’에 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대중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정치가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는데, 그 예로 나치 독일,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역사적 영웅이나 국가 원수의 동상, 승리 기념비 등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정치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또한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던 미국에서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벽화나 포스터와 같은 공공미술을 장려하였는데, 환경 개선을 통해 국민 복지를 향상하고, 실업 인구를 일터로 복귀시키는 목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이용되었다. 뉴딜정책 내 미술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은 약 10년동안 10만여 점의 그림과 1만 8천여 점의 조각 작품을 만드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시 공공미술의 담론 자체가 ‘미술품의 양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공공미술의 담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미술 중 하나인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006년 5월 15일 완공 후 대중에게 공개된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대규모 설치작품은 지금까지 시카고의 랜드마크로서 ‘투어리스트 마그넷(tourist magnet)’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4)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25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81억원 정도를 들여 설치한 이 작품은 높이 12.8미터, 너비 20미터 규모의 거대한 콩 모양의 작품은 철판 168개를 이어붙여 만들었고, 무게는 110톤, 제작 기간만 2년이 넘는 대형 작품이다. 수 많은 엔지니어들이 그라인더와 샌딩기계를 이용하여 철판 용접 자국을 지워내고, 작업 과정에서 생긴 크고작은 스크래치를 없애가면서 연마하여 ‘액체 수은’을 연상시키는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시켰다. 이 때문에 당초 600만 달러로 책정되었던 작품의 제작비는 2,3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설치된 이후에도 하루에 두 차례씩 직원들이 표면을 닦아내고 있으며, 1년에 두 번 작품 전체를 150리터의 세척제로 청소하고 있고, 그 비용만 5만 달러에 달한다.

유려한 곡선의 표면 전체가 마치 거울과 같이 주변을 비추고 있어, 작품을 멀리서 보면 시카고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거대한 빌딩 숲 안에 갇혀 사람의 육안으로는 한번에 볼 수 없었던 고층건물과 움직이는 구름까지 거대한 장면을 축소하여 보여준다. 시카고의 ‘스카이 스크레이퍼Skyscraper’가 갖는 수직적이고 위용있는 형태와 대비되는 수평적이고 굴곡진 <클라우드 게이트>는 평소에 지나쳤던 도시의 익숙한 광경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품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의 범위는 점점 축소되고 결국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순간부터는 작품 속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을 변화시키고 객체가 뒤바뀌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의미로 볼 때 이 작품은 시선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1981년 뉴욕 페더럴 광장에 들어서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리처드 세라의 <Tilted Arc>와 비교해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철판이 휘어져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작품은 시민들의 움직임과 휴식을 방해한다는 비판과 철거를 위한 청원운동을 거듭하다 결국 1989년 해체되었다. 거센 논란과 악평을 받았던 세라의 작품과, 이제는 시카고에 없어서는 안될 랜드마크가 된 카푸어의 작품의 비교를 통해 대중이 원하는 공공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부피와 질량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막아서고 있는 <Cloud Gate> 이지만, 주변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수직과 수평, 직선과 곡선, 주체와 객체, 하늘과 땅, 소통과 단절 등의 상반된 요소들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관람객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위의 사례와 같이 공공미술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관광산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 주도로 그 지역의 이미지 제고와 시설 개발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문화사업화를 이루는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의 일환으로 공공미술이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도시선전주의(City Boosterism)과 CI(City Identity)등에서 근본을 찾을 수 있는 장소마케팅은 쇠퇴한 공업도시들이 이미지 재구축 및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영국 소도시 게이츠헤드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영국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20만명 규모의 게이츠헤드는 탄광 산업으로 19세기 산업혁명 시절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마가렛 대처 정부의 광산폐쇄정책으로 석탄 산업이 붕괴하면서 도시 또한 동력을 잃게 된다. 이에 영국 시의회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재생을 꾀했는데, 그 첫번째 주자로 선택된 작가는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였다. 1994년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터너상을 수상한 조각가인 곰리는 4년에 걸쳐 게이츠헤드에 높이 20m, 너비 54m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조각상을 만들었다. <북방의 천사>로 명명된 이 작품은 거대한 사람이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8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4억 정도의 자금으로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의 정체성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이끄는 문화도시로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5) 안토니 곰리 <북방의 천사>

빌바오가 구겐하임을 통해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부상한 이후 아부다비에는 루브르가, 작년 11월에는 상하이에 퐁피두 센터가 유치되었다. 이렇듯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박물관 유치가 전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시 기획자들도 상업적 블록버스터 전시로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일례로 일본 오다이바의 팀랩 보더리스 전시는  한 해 5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1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투자한 100억의 비용을 모두 환원했다. 이제는 미술이 산업 전역에서 가치를 만들고 돈을 버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영인들도 미술을 예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각 산업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지윤의 art TALK(20)]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 로열아카데미에 서다

[이지윤의 ART TALK(20)]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 로열아카데미에 서다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명성 있는 국제적인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영국 작가들에게 로열아카데미가 주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올해는 70세가 된 거장 안토니 곰리가 이 영광을 안았다.

안토니 곰리는 1994년 터너상을 수상했고, 1999년 사우스뱅크 프라이즈, 2007년 베른하르트 힐리거 조각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대영제국 장교(Officer British Empire)가 되었고, 2014년 신년 명예훈장 기사 작위를 받았다.
또 영국 왕립건축가협회 명예교수, 케임브리지대 명예박사를 받았으며 2003년부터 로열아카데미 회원(RA)이 됐다.

영국 미술작가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는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테이트 모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곳이 로열아카데미일 것이다. 로열아카데미는 영국 최초의 왕립예술원으로 250년 역사를 자랑한다. 미술과, 건축과로만 구성된 로열아카데미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관학파 미술이 시작돼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영국 로열아카데미에는 대학원만 있다. 대개 영국 대학의 대학원 과정이 1년이며 길어도 2년인 데 비해 로열아카데미 대학원 수업은 3년간 진행된다. 수업료는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된다. 영국 작가들에게 로열아카데미는 유구한 전통의 계승이라는 의미를 넘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큰 영예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 20여 년간 유명한 영국의 젊은 작가들은 골드스미스나 슬레이드 같은 미술대학 출신이 많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성공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로열아카데미(RA)’라는 존칭을 부여받기도 한다.

몸과 우주에 대한 일생의 실험

Antony Gormley, Clearing VII, 2019. Approximately 8 km of 12.7㎜ square section 16 swg aluminium tube,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David Parry / ©Royal Academy of Arts

로열아카데미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안넨베르크 궁정(Annenberg Courtyard)에서부터 곰리의 첫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이언 베이비(Iron Baby, 1999)’다. 이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실물 크기와 형태를 주철로 만든 작품으로, 궁정 규모에 비하면 매우 작은 크기다. 완전히 웅크린 아기 조각상은 인간의 약함과 생명의 활력을 동시에 드러내는 듯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조각은, 보잘것없이 나약한 ‘몸’에서 시작해 작가의 초지일관적 주제인 인간의 몸, 더 나아가 공간으로서의 몸과 우주에 대한 실험으로 발전하는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나이 일흔에 여는 대규모 전시임을 감안하면 회고전 성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곰리의 이번 전시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13개 개별 전시 공간이 주어진 것부터 마치 작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실제로 곰리는 이번에 매우 다양한 신작을 선보였다. 즉, 기본적으로 주어진 보자르 스타일(Beaux-Arts, 아카데믹한 고전주의)의 전시 공간들을 일종의 ‘실험장’으로 보고 이곳에 새로운 감각과 스케일, 빛과 어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를 과감히 도입한 것이다. 덕분에 이번 전시는 곰리의 중요한 구작들과 최근 작품들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옛것과 새것이 한데 모인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가 이번 곰리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Antony Gormley, Cave, 2019. Approximately 27 tonnes of weathering steel, 14.11×11.37×7.34m.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David Parry / ©Royal 1 Academy of Arts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곰리의 초기작들은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이 시기 그의 관심은 대지미술(랜드아트)과 퍼포먼스, 미니멀리즘과의 연관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땅, 바다와 공기(Land, Sea and Air, 1977~1979)’와 ‘땅의 과실(Fruits of the Earth, 1978~1979)’이라는 이름의 작업들은 자연과 인간이 만든 물체들을 납으로 하나씩 감싼 작품이다. 사물을 납으로 감싸며 경험한 공간은 1980년대 들어 그의 가장 중요한 보디캐스팅 작업이 나오도록 유도한 중요한 기초가 됐다.


Antony Gormley, Mother’s Pride V, 2019. Bread and wax, 306×209.5×2㎝.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David Parry / ©Royal Academy of Arts

‘살점(Flesh, 1990)’ 같은 1990년대 콘크리트 시리즈도 있다. 작품 내부에 인체 형태를 가진 공간을 담고 있는데, 이 공간은 블록의 표면을 깨는 손이나 발 또는 머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즉, 이후 등장할 주요한 대형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의 음각·양각을 이용한 기법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 돕는 미술관의 노력

Antony Gormley, Body and Fruit, 1991/93. Cast iron and air, 233×265×226㎝(Body), 110.7×129.5×122.5㎝(Fruit).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David Parry / ©Royal Academy of Arts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초기 작업들과 더불어 이번 전시의 핵심은 방문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한 작품들이다. 로열아카데미만의 독특한 갤러리에 맞도록 재구성해 방문객들이 각 공간을 항해할 때 자신의 몸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한 콘셉트가 무척 돋보인다.

특히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I, 2008)’이라는 작업은 24개 주철 형상이 모든 벽과 바닥, 천장에 설치돼 있다. 이들을 하나의 조각으로 만들어 놀라운 설치미술을 보여준다. 무거운 주철 조각들을 어떻게 사방팔방에 붙여놓을 수 있었을까부터 관객의 호기심과 놀라움을 이끌어낸다. 다양한 무게중심을 이용한 조각들의 군집 설치작품이다.

Antony Gormley, Lost Horizon I, 2008. 24 cast iron bodyforms, each 189×53×29㎝.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PinchukArtCentre, Kiev, Ukraine
©the Artist. Photo: David Parry / ©Royal Academy of Arts

‘잃어버린 지평선’ 전시장의 바로 옆 중앙홀에서는 곰리의 초기 작품 ‘확장(expansion)’ 중 ‘몸과 과일(Body and Fruit, both from 1991~1993)’을 만날 수 있다. 몸의 형태를 확장해 폭탄과 과일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는 속 빈 조각이 달려 있는 방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엄청난 무게의 조각상을 전시하기 위한 로열아카데미의 노력이다. 작품의 무게는 3톤이 넘는다. 로열아카데미는 이를 천장에 매달기 위해 전시 기간 내내 외부에 대형 기중기를 설치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해외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 가능하면 작가들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돕는다는 점이다. 전시 자체도 놀랍지만, 이러한 놀라운 전시를 가능하게 만든 기관의 협업과 노력도 경이롭다.

작품 ‘호스트’ 영국서 첫 전시

Antony Gormley, Host, 2019. Buckinghamshire clay (51°44’ 52.5” N 0°38’ 42.6” W) and Atlantic seawater,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Oak Taylor-Smith

2008년 작업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대규모 신작도 있다. ‘클리어링(Clearing VII, 2019)’과 ‘매트릭스(Matrix lll, 2019)’다. 클리어링은 바닥에서 천장, 벽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코일형 알루미늄 튜브가 한 방을 가득 채운 듯한 ‘공간 드로잉’ 작업이다. 작가의 손으로 어떤 형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에 800m 코일형 알루미늄 튜브로 공간을 채우면서 작품이 스스로를 만들도록 한 작업이다. 곰리는 평생 새로운 주형을 만들어 조각상을 제작한 거장이다. 원숙한 노년에 접어든 이 거장이 이제 자신의 재료들이 물질적 탄성을 통해 움직이며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를 펼친 건 아닐까.

‘매트릭스’ 작업도 매우 놀라운 신작이다. 전시장 메인 홀에 수많은 직사각형 철망이 마치 구름 같은 구조채로 만들어져 매달려 있다. 유럽 침실의 평균 크기에 해당하는 공간들이 하나하나의 직사각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균일한 공간은 우리가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환경의 유령처럼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삶의 공간들이 이토록 조화가 어려운 미로와도 같음을 은유했다는 뜻이다.

몸의 내부 공간에 대한 탐구는 ‘케이브(Cave, 2019)’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거대한 직사각형 구조물들이 마치 ‘세포’들로 짜맞춰진 인체 공간처럼 연계되어 있다. 관람객이 직접 내부를 탐방하며 감상하도록 제작됐다. 곰리는 그저 바라보는 작품을 감상하던 이전 작가들의 태도와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관객이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작품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Antony Gormley, Matrix III, 2019. Approximately 6 tonnes of 6㎜ mild steel reinforcing mesh, 7.1×9.3×15.15m.
Installation view, ‘Antony Gormley’,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1st September to 3rd December 2019
©the Artist. Photo: ©Oak Taylor-Smith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작품은 ‘호스트(Host, 2019)’다. 갤러리 바닥부터 23㎝ 높이의 전체 공간을 바닷물과 진흙으로 채워 마치 수만 개의 미생물 생명체가 출현할 것 같은 방을 만들었다. 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업과는 매우 이질적인 작품으로, 원초적인 물질 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스스로 탄생하는 환경을 제안한 것이다. 선뜻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작품임에도 오히려 관객들은 담담하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이 공간에서 운행하는 바람과 진흙 냄새를 몸으로 느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사실 이 작업을 1997년부터 구상했고, 지금까지 단 세 번만 전시됐다. 영국에서도 이번이 첫 전시다.

여러 조각품과 함께 곰리의 다양한 드로잉 종이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의의다. 대부분 원유, 흙, 피같이 독특한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다소 샤머니즘적인 냄새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림과 조각을 병행해 일상적인 활동으로 지속해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곰리가 원초적 물성과 재료에 관심을 기울여온 배경을 이해한다면 호스트 같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안토니 곰리는 인체와 우주의 관계를 탐구하는 조각, 설치작업과 공공미술로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작가다. 1960년대부터 ‘자연과 우주에서 인간은 어디 서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며 자신과 타인의 육체를 끊임없이 관여시킴으로써 조각에 의해 개방된 잠재력을 발전시켜왔다. 곰리는 예술의 공간을 새로운 행동, 생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전시는 인체 내부의 어두운 공간 자체뿐만 아니라 몸이 주변과 갖는 상관관계, 즉 공간으로서의 몸과 우주 속의 몸에 대한 곰리의 관심과 실험을 요약하고 있다.

[이지윤의 art TALK(19)] Art Renaissance in West Bund Shanghai

[이지윤의 ART TALK(19)] Art Renaissance in West Bund Shanghai 
아시아 미술의 꽃이 되다 ‘상하이 웨스트번드’ 르네상스

문화와 경제, 정치를 막론하고 이미 세계는 급격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사회가 이끌었던 미술시장에서 아시아의 약진이 일어난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년간 눈에 띄게 회자되는 아시아의 미술 도시가 있다. 바로 상하이다.

롱뮤지엄 웨스트 번드(Long Museum West Bund) 전경 ⓒThe Long Museum

상하이는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구에 의한 개항 경험을 간직한 도시다. 이를 계기로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인들에 의한 근대화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근래 상하이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미술시장과 문화산업의 새로운 흐름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개발된 웨스트번드 지역에는 수많은 뮤지엄과 국제 규모의 상업 화랑이 즐비하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운영하는 중국 미술 경제의 생태계 표본을 만드는 곳이 바로 상하이다. 서구에 밀려 문화의 변방으로 전락했던 중국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미술부흥운동을 이끌게 됐을까. 마치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하는 상하이의 문화도시 혁명을 상하이 웨스트번드 프로젝트를 통해 들여다본다.

퐁피두센터 상하이, 중국 미술 부흥의 상징

Mark Bradford 설치 전경 ⓒThe Long Museum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빨리 서구 현대미술계와 교류를 시작한 곳이다. 지난 1993년 광주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비엔날레를 개최한 이후, 상하이는 1996년 두 번째로 비엔날레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12번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중국은 많은 스타 미술 작가를 배출해냈다. 2008년 이후로는 국제 미술시장의 30%를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 중국 미술의 약진에 상하이 미술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규모 공장을 개조해 비엔날레관으로 변신시킨 상하이 파워스테이션 뮤지엄이나 록 번드 아트 뮤지엄 등에선 이미 내로라하는 전 세계 스타 작가들이 몰려들어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상하이 중심 상권인 번드 지역에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줄지어 문을 열고 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현대미술계가 세계 미술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와 유즈 뮤지엄 등 대규모 사립미술관이 자리 잡은 웨스트번드 지역은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같은 서구 언론도 주목하는 핫플레이스다. 이 구역은 WBCC(West Bund Cultural Corridor, 웨스트번드 문화거리)의 일환으로 상하이 정부가 깊이 관여해 문화특구로 개발되고 있다.

오는 11월을 기점으로 상하이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할 것 같다. 웨스트번드 지역에 퐁피두센터 분관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수많은 도시 중 서구사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퐁피두의 미술컬렉션 분관이 들어서는 것은 상하이가 최초다. 이는 상하이가 단순한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넘어 문화 리더십까지 확보한 아시아 첫 도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유명 미술관의 아시아 분관 개관에 호들갑을 떤다며 문화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던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 수집품(컬렉션)의 역사가 매우 짧은 아시아 아트 뮤지엄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퍼블릭 미술관이 미래 신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상하이 웨스트번드 개발그룹이 파리 퐁피두센터와 협업하여 유치한 이 뮤지엄은 영국 건축가인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디자인을 맡은 웨스트번드 미술관 내에 자리할 예정이다.

쉬후이구의 수장인 팡 시종(Fang Shizhong)은 인터뷰에서 퐁피두센터에서 대여한 작품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중국 동시대 미술을 함께 조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실 상하이의 퐁피두센터 유치는 이미 지난 2007년에 한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당시 2010년 개장을 목표로 루완 지구에 전초기지를 설립하려는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나, 프랑스 문화부의 섣부른 발표가 중국 정부의 동요를 일으켰고, 결국 계획이 무산됐다.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웨스트번드 프로젝트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오는 전시에는 파리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피카소와 마르셀 뒤샹 등 1906~1977년 사이 작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웨스트번드 문화거리(WBCC: West Bund Cultural Corridor) 프로젝트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Long Museum West Bund) ⓒThe Long Museum

퐁피두센터 유치로 빛을 발하게 된 웨스트번드 문화거리는 상하이시 정부가 역점을 둔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다. 웨스트번드 지역은 역사적으로 교통·물류·생산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상하이 세계 엑스포 개막과 동시에 ‘황푸강 종합개발계획’을 시행하면서 2010년 들어 대부분의 공장과 지방공항을 폐쇄했다. 웨스트번드 프로젝트는 이렇게 폐허가 되다시피 한 산업지대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시작됐다. 이제까지 접근조차 어려웠던 공간을 지역 주민들이 다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하이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변신시킨 것이다.

상하이시 정부는 물론이고 중국 대부분의 지방자치구에선 관 주도의 문화정책이 일반적이다. 민간의 영역이 훨씬 큰 서구와 대비돼 매우 흥미롭다. 중국은 2009년 국무회의에서 문화를 ‘전략 산업’ 수준으로 격상하면서 2011~2015년간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문화산업을 중국 국내총생산의 최소 5%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기둥 산업’으로 키울 것이 제안된 것이다(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2010).

이 같은 결정은 지금까지 고수해온 중국의 문화정책을 생각했을 때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한때 문화혁명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에 천착했던 중국이 문화산업으로 GDP의 5%를 창출하겠다는 개혁적 사고로 전환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상하이시는 중국 정부의 5개년 계획에 따라 쉬후이 지구(Xuhui district)에 이어 웨스트번드 문화거리 조성에 나섰다. 도시 브랜딩과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전략 중 하나도 ‘예술과 문화를 통한 개척’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하이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여느 도시개발 사례와 다른 점은 부동산 개발업자가 아니라 메가 컬렉터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했다는 점이다.

2012년 상하이 푸동을 시작으로 2014년 웨스트번드, 이후 충칭관과 후베이 우한관 개관까지, 상하이는 앞으로 뮤지엄 20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롱 뮤지엄(Long Museum)은 중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현대미술 컬렉터의 스케일과 비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중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상하이 대부호 류이첸과 왕웨이 부부가 설립한 롱 뮤지엄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큐모가 큰 사립 미술관이다. 이들은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를 개관하기 전에 다년간 모은 광대한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큰 공간을 찾고 있었다. 이때 쉬후이 지역의 지도자들은 지난 20세기에 바지선에서 석탄을 싣고 내리던 부두를 끼고 있는 웨스트번드 강변을 직접 제안했다. 이렇게 관청의 적극적인 주도와 프라이빗 컬렉터의 참여로 만들어진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는 3만3000㎡ 면적에 최대 1만6000㎡에 이르는 전시 공간을 갖추게 됐다. 류이첸 부부는 2년간 1억 달러 이상을 들여 모은 현대미술품을 선보였다.

민관이 함께 만드는 미술 생태계

상하이 포토페어 Utopia전에 참가한 백승우 사진작가의 아티스트토크 전경 ⓒSUUM

롱 뮤지엄과 더불어 이 지역 개발 초기에 미래 비전을 보여준 미술관은 유즈 뮤지엄(Yuz Museum)이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규모 설치미술인 모리조 카탈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유즈 뮤지엄은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터이자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로 잘 알려진 부디텍이 세운 미술관이다. 막대한 규모의 전시 공간을 보며 ‘여기가 바로 중국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초대형 뮤지엄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 카탈란 기획의 구찌전 등 이곳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회는 중국 내 어떤 미술관보다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 바 있다. 또 부디텍은 미국 LA에 있는 라크마와 협업해 컬렉션을 공유하고 순회하는 방식의 참신한 경영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문을 연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도 새롭게 떠오른다. 탱크 상하이 부지는 원래 1917년 건립된 중국 최초의 대형 공항인 룽화공항의 일부로, 연료 공급용 오일탱크 5개와 소방용풀, 부두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던 자리였다. 중국에서 떠오르는 컬렉터인 차오 지빙(Qiao Zhibing)에 의해 재발견된 이 단지는 6만㎡에 달하는 광대한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중국의 유명한 현대미술 컬렉터인 차오 지빙은 2006년부터 중국 및 국제 현대미술을 모으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비전과 모험정신으로 동시대성과 국제성, 다양성을 담은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다. 또 그는 다양한 작가를 후원하고 전시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차오 스페이스(Qiao Space)를 설립하여 중국 내 어느 미술관보다 혁신적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을 통한 상하이의 문화 르네상스는 불과 지난 10여 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혹자는 건물만 들어설 뿐 내용은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는 오해다. 중국 미술관은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중국이 단지 미술관 구축에만 열을 올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미술관이 새로이 들어서는 만큼, 상하이는 국제적인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함께 발전하고 있다. 여러 갤러리를 중심으로 상하이 포토 페어, 아트 21, 웨스트번드 등 다양한 주요 국제 아트 행사가 이미 자리 잡았다. 즉 예술가, 딜러, 컬렉터, 새로운 큐레이터가 운영하는 미술산업의 에코시스템이 함께 성장한다는 점 자체가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물론 미술관이 들어선다 해도 경제적으로 고달픈 작가들은 여전하고, 미술시장만 비대해지면서 과도한 상업화의 부작용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와 미술 관계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중국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미술 생태계에 대한 비평적 인식이 더욱 확대돼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숨이 기획한 상하이 포토페어 Utopia전에 참가한 백승우 사진작가의 작품 ⓒSUUM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 전경 ⓒAFP Relax News
숨이 참여한 2018 상하이 포토페어 ⓒSUUM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는 버려진 오일탱크를 광대한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TANK Shanghai

 

[이지윤의 art TALK(18)] Frieze Art Fair

[이지윤의 ART TALK(18)] Frieze Art Fair 
현대와 전통을 잇는 최고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스

프리즈 마스터스 2003년 런던에서 영국 현대미술 작가들 위주로 열렸던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 어느덧 1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글로벌 아트페어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혹자는 프리즈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1967년 시작된 아트 시카고나 1970년 설립된 아트바젤과 비교해볼 때 프리즈가 10여 년 만에 거둔 성공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프리즈 아트페어 2018 전경, ⓒFrieze Art Fair

최근 들어 아트페어라는 말은 공공연히 ‘미술품을 사고파는 행사’라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도 크고 작은 갤러리 200여 개가 있으며, 아트페어만 해도 15개나 된다. 놀라운 일이다. 아트페어가 확대일로에 있지만 개별 행사의 서로 다른 기능과 성격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기회는 드문 편이다. 어쩌면 아트페어 활성화가 요구되는 현시점에서는 굳이 그런 시도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 아트페어의 특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나면 앞으로 방문하게 될 곳들을 더 명확히 알 수 있고,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기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트페어는 화랑(갤러리)이 여는 행사다. 유명하고 중요한 작가들을 대표하는 블루칩 화랑부터 신진 작가들을 키워나가는 곳까지, 다양한 화랑 설립자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동료 화랑들을 평가하고 함께 미술시장의 ‘장’을 여는 것이다.

프리즈 마스터스 2018, 갤러리아 엘비라 곤잘레스 Galer a Elvira Gonzalez, ⓒFrieze Art Fair

프리즈 아트페어는 21세기 시작과 함께 영국에서 설립된 신진 아트페어다. 자국 작가들이 소속된 많은 영국 화랑과 딜러들은 매우 영국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아트페어 개최에 나섰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2003년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를 필두로 한 YBAs(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소개하는 자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바젤의 수준 높은 유러피안 모던아트 컬렉터들의 지원으로 시작한 바젤 아트페어, 엑스포 형식의 미술전시인 미국 아모리쇼와는 확연히 다른 페어였다. 프리즈는 ‘여러 실험적인 작품이 과연 현대미술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할까’에 대해 질문했다. 이렇게 시작한 행사는 6만 명이 넘는 관람객과 160개가 넘는 국제 갤러리가 참여(2018년 기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프리미어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역사적 미술에 초점 둔 프리즈 마스터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갤러리 사르티 Galerie G. Sarti, ⓒFrieze Art Fair

프리즈 아트페어는 지난 2012년 또 다른 페어를 만드는 시도에 나섰다. 이름부터 프리미엄 느낌이 강한 ‘마스터스’ 행사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프리즈를 컨템퍼러리 아트페어라 생각한다. 프리즈 런던과 프리즈 마스터스는 개최 장소와 기간이 같아 같은 행사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들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과 내용이 있다. 바로 참여하는 갤러리의 성격과 소개되는 작품의 내용이다. 프리즈 마스터스는 프리즈 아트페어를 찾는 동시대 미술 애호가들에게 ‘역사적인 미술’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으로 설립됐다.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 담겨 있다. 현재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 미술이라는 것이 앞으로 50년만 지나도 중요한 빈티지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미래적 고민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영국인의 사고방식이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행사 진화 과정을 미리 고민해 새로운 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한다는 점에서다. 그렇기에 프리즈 마스터스가 선보이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작품 가격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 작품들도 40년 전에는 동시대 미술이었고, 그 작품들을 구입한 당시의 컬렉터들에 의해서 모던 마스터 시장이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프리즈 런던은 설립 의지처럼 매우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컨템퍼러리 아트페어다. 누군가는 프리즈 런던에 방문하면서 “마치 160개에 달하는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아트페어 자체가 마치 작가들의 부스로 만들어진, 대형 전시와도 같은 인상 때문이다. 페어에 참여하는 이들은 프리즈 마스터스보다 확실히 젊고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작가들이며, 방문객들은 이들을 통해 다양한 신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AR/PAB, ⓒFrieze Art Fair

프리즈 마스터스는 다르다. 우리가 모던이라고 부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미술들로 구성해 역사적인 미술품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리즈 마스터스의 목표는 과거의 예술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컬렉터뿐만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관객들에게 역사적인 미술을 동시대적 배경에서 보여주는 게 목표다. 그래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궁전에 살지 않아도 거장의 그림, 앤티크, 20세기 거장들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프리즈 마스터스의 건축 공간은 각 작품들이 돋보이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미니멀하고 중립적으로 설계됐다.”

프리즈 마스터스의 디렉터 네이선 클레멘 질레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의 말이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가고시안 Gagosian, ⓒFrieze Art Fair

대부분의 국제 아트페어가 동시대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반해, 프리즈 마스터스의 구성은 20세기 모던 마스터들의 작품 60%, 역사화 및 골동품 40%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올드마스터 마켓에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그림을 사면 살수록 시장의 작품 공급은 계속해서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프리즈 마스터스는 시장성 측면에서 굉장한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잘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수많은 딜러가 항상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며 시장을 만든다.

일부 아시아 컬렉터들은 그들이 구입하는 모던 마스터 작품들이 기존 해외 미술관이나 서구 컬렉터들이 소장하지 않고 ‘남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끔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몇몇 작품이 시장에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역사화는 아직 덜 알려진 작품이 훨씬 많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작품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희귀해진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만 해도 피카소에 대한 관심은 큐비즘으로 대표되는 그의 초중기 작업에 치우쳐 후기작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작들이 이미 모두 어딘가에 소장되어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자 지금은 후기작들이 미술시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됐다.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미술시장의 지형도가 계속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시장의 전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역사화의 가격과 가치는 굉장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미술사의 한 조각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 프리즈 마스터스를 다른 아트페어와 차별화하는 좋은 지점일 것이다.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전시

프리즈 마스터스 2018 전경, ⓒFrieze Art Fair

프리즈 마스터스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도자기나 고대 중국 공예품, 아프리카 부족 예술품들이 르네상스 조각이나 마티스, 피카소와 같은 미술사적 작품들의 바로 옆에서 전시되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각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깊은 영감을 주지만 작품 간에 형성되는 대화도 굉장히 흥미롭다. 지난해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가한 갤러리 현대의 흥미로웠던 전시가 좋은 예다. 20세기 한국 거장의 작품과 한국 전통 미술 및 공예를 병치한 전시였다. 갤러리 현대의 컬렉션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목재 조각상과 도자기들을 소개한 기회였다. 중국 고대 청동과 세라믹 스페셜리스트인 벨기에의 지젤 코에즈 갤러리(Gisele Cores Gallery)는 올해도 중국 앤티크를 들고 돌아올 예정이다.

덧붙여 올해 부스의 특징 중 하나는 ‘컬렉션(collection)’이라는 섹션이다.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아시아관의 디렉터이자 크리스티의 아시아 전문가로서 현재 카타르 로열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는 아민 자퍼(Amin Jaffer)와 영국 로열아카데미 전 총장인 노만 로젠탈(Noman Rosenthal)이 큐레이팅한 기획이다. 총 8개 갤러리가 참여해 인도 미술과 동서양의 전통을 병치하는 흥미로운 큐레이팅을 선보였다.

프리즈 조각공원 2019, 가잘레 아바자마니 Ghazaleh Avarzamani,[이상한 시간 Strange Temporalities], ⓒFrieze Art Fair

흔히 아트페어라고 하면 상업적인 행사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히 작품 판매만 위해 세계적인 작가들, 미술관 관장들과 큐레이터들, 미술관 보드멤버와 같은 국제 미술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술관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는 새로운 소장품을 구입하기 위한 시장조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중요한 공공 프로그램들 때문이다. 바로 미술시장의 현재 담론과 그것이 작가들과 미술 생태계에 미치는 다양한 역할을 논의하는 강의 프로그램이다.

2019년 10월에 열릴 프리즈 마스터스는 현재 로열아카데미 총장인 팀 말러(Tim Maller)가 큐레이팅한 ‘프리즈 마스터스 토크(Frieze Masters Talk)’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엘리자베스 페이톤(Elizabeth Peyton),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프리즈 마스터스에는 그야말로 미술사를 다시 써 가는 중요한 미술계 인사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매우 적극적으로 미술 담론을 공론화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영국 국립 아트펀드(Art fund)는 프리즈 마스터스에 중요한 클라이언트다. 아트펀드의 후원으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내셔널 초상미술관은 국제 큐레이터 20명을 초청해 컬렉션에 대한 의견을 듣는 ‘큐레이터 데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초상화’ 컬렉션이 주제인데, 파트너 뮤지엄과 더불어 아트펀드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 아트펀 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미술교육을 고양하기 위한 컬렉션 구입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프리즈 마스터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그들이 구입하고 지원하는 미술관 컬렉션을 연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하다. 그저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방적이고 일시적 지원이 아닌,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더욱 숨 쉬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즉 시대의 다양한 미술사가 큐레이터들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고, 미디어를 통해 대국민 미술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매년 10월 런던에서 중요한 컨템퍼러리 아트페어인

[이지윤의 art TALK(17)] 데이비드 호크니

[이지윤의 ART TALK(17)] 데이비드 호크니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

2018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살아 있는 작가의 작품 중 사상 최대 가격으로 그림이 팔렸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2013년에 5840만 달러를 기록한 제프 쿤스의 ‘풍선 개(Balloon dog)’를 제치고 9030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은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엄청난 복잡함을 압축했다”는 크리스티의 평을 받으며 예술계의 주목을 단번에 끌어냈다. 당시 미국 출신 작가들이 독식하던 경매에서 영국 출신 작가가 이룬 흔하지 않은 업적이었다. 그 후로도 데이비드 호크니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며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2018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낙찰가 1019억원을 기록했다.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이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서울을 찾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올해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이어지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과 공동 기획하여 선보이는 그의 첫 대규모 아시아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한 총 8개 해외 기관에서 대여한 호크니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7개 소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특히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더 큰 그랜드캐니언’ 같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생애별 주요 작품들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크리스티에서 2018년 판매된 작품(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음): 예술가의 초상, 1972, 캔버스에 아크릴릭
David Hockney(b. 1937),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acrylic on canvas, 84×120 in.(213.5×305㎝), Painted in 1972

런던스쿨 실존주의 화풍의 대가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전]

호크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를 미국 출신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호크니에 대한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와 메이저 국립 컬렉션은 그의 작업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영국인 호크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들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호크니의 ‘미국풍’ 유화 작품을 기대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유화 작품을 많이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호크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화와 드로잉, 판화, 사진 등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넘나드는 호크니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의 다양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호크니의 명성 때문에 사람들이 간과하곤 하지만, 미술사 안에서 그의 의미는 그림 가격 이상이다. 그는 1970~1980년대 프랭크 오엘바흐, 레온 코소프, 루치안 프로이트로 이어지는 런던 스쿨의 실존주의적 화풍을 이어받은 중요한 작가다. 런던스쿨 작가들은 인간과 자연의 고뇌를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담아냈는데,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들은 런던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연구해갔다. 당시 유명한 작가 대부분이 추상회화를 고집했지만 호크니는 오히려 개인적이고 사소한 주제의 작업을 했다. 호크니는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사진적 관점(Photographic Perspective)을 회화에 충실히 적용했다. 20세기 포토그래피를 충실히 이해해서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97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
David Hockney, Mr. and Mrs. Clark and Percy, 1970~1971, Acrylic on canvas, 213.4ⅹ304.8㎝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사진의 평면성 벗기 위해 노력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릭, 242.5×243.9 cm,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Acrylic on canvas, 242.5×243.9㎝.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호퍼는 대도시 카페나 사무실 등에 있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을 그리면서 도시가 주는 쓸쓸함과 단절을 이야기했다. 이에 비해 호크니는 미국 교외의 가정과 수영장,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을 매우 섬세하고 사적인 모습으로 담아냈다. 특히 그의 화풍을 대표하는 환한 화면과 선명한 색감은 그가 LA에서 지내면서 받은 영향일 것이다. 1969년 이전까지 런던에서는 게이라는 것을 밝히기도, 게이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960년대 초 영국의 동성애 반대 법안에 도전하는 그림들을 공개했고,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는 1964년 호크니가 LA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는데, 런던과 확연히 다른 자연환경에서 빛을 발견한 것이 그의 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호크니는 회화와 더불어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재료와 관점으로 작업했지만, 공통의 문제의식은 바로 ‘3차원 세상을 어떻게 평면에 구현하는가’였다. 호크니의 작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이 바로 사진을 이용하여 입체파적 시각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포토콜라주(photocollage)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호크니에게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호크니는 그의 저서에서 “피카소와 마티스는 세상을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반면, 사진은 따분하게 만들어버린다”라고 할 정도로 사진의 평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나의 부모님, 1977, 캔버스에 유채, 182.9 x182.9cm,
David Hockney (b. 1937), My Parents, 1977, 182.9×182.9㎝, Oil on Canvas.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음)

그는 대상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여러 각도에서 찍고 이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모터가 달린 리플렉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 수천 장을 이어 붙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데, 전통적인 원근법의 단일 시점에서 벗어나서 한 평면 위에 입체적인 세계를 투사하는 작업은 80세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 거대한 서사를 느낄 수 있는 대규모 풍경화로 이어가고 있다.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 전시에서 이러한 거작(Masterpiece)들을 특별히 조명했다. 관객들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고 대화하게 만드는 그의 작업들이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그의 명성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60개의 캔버스에 유채, 207×744.2㎝
David Hockney, A Bigger Grand Canyon, 1998, Oil on 60 canvases, 207×744.2㎝ overall
ⓒDavid Hockney,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Collection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국내서도 대규모 국제 전시 인기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 작품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놀랄 만큼 많은 어린아이가 무리 지어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서울시립미술관 교육팀의 인솔을 받으며 사뭇 진지하게 작품을 관람하고 있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즐기고 체감하는 문화가 안착해간다는 점이 굉장히 고무적이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대를 위해 미술관이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랐다. 전시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전시를 보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전시를 보는 관람객 수가 해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충분한 관람 수요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호크니 전과 같은 대규모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더 많은 국제적 대규모 전시를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지윤의 art TALK(16)] 새로운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 하우저&워스 갤러리

[이지윤의 ART TALK(16)] 새로운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 하우저&워스 갤러리

미술 생태계에 새로운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사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갤러리가 본격적인 미술사학교를 만든 것이다. 기존 미술계 구조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다. 미술사가나 비평가들에게 원고를 부탁하여 글을 받는 정도의 일들과 달리 아예 큰 투자를 하여 뉴욕에 비영리재단을 설립하고, ‘하우저&워스 아트 인스티튜트’를 개설했다. 이번 호 아트톡은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 스위스 하우저&워스 갤러리(Hauser & Wirth Gallery)가 시작한 매우 의외의 새로운 사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창립자 이반 워스와 마누엘라 워스
사진:휴고 리트슨 토마스(Hugo Rittson Thomas)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누구일까. 국제 미술계를 꽤 안다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단지 유명한 작가들이나 학식과 경영능력이 뛰어난 주요 미술관의 디렉터나 큐레이터들 외에 중요한 화랑을 설립한 갤러리스트 이름이 더 많이 거론된다. 가고시안 갤러리를 만든 래리 가고시안을 비롯해 데이비드 저너, 로팍, 펄람 등 세계적인 갤러리스트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미술시장의 확장과 더불어 본격화된 국제 미술계의 이벤트는 ‘아트페어들’이다. 아트페어 글로벌 시티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젠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엔 작가들에게 중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영예나 목표였다면, 요즘 중견 작가들에게는 중요한 화랑에서 전시를 하는 것도 더욱 큰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소개되는 것도 매우 ‘큰일’이 되었다.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현재 9개다. 런던의 유명한 양복 신사 거리이자 영화 [킹스맨]의 본부로 알려진 사빌로(Saville Row)에 2010년 오픈했다.
사진:휴고 글랜디닝(Hugo Glendinning)

스위스 하우저&워스 갤러리(Hauser & Wirth Gallery)의 시작은 조금은 낯설기는 하나 매우 의미있는 시도임은 분명하다. 영리적인 것과 비영리적인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서로 보완적인 구조로 시도된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단지 이러한 미술사학교 설립 외에, 예술을 삶과 쉼 안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연구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국 서머셋 지역 농가 갤러리, 스위스 스키 별장지에 있는 생모리츠 분관, 스코틀랜드의 아트호텔 등은 매우 흥미로운 접근임은 분명하다.

제니퍼 그로스는 예일대학교 미술관과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에서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한 이후, 디콜도바(deCordova)박물관 부관장을 역임했다.
사진:악셀 뒤페(Axel Dupeux)

1992년 이반 워스는 부인인 마누엘라 워스, 울슬라 하우저와 함께 취리히에 갤러리를 설립했다. 이 갤러리의 설립자 이반 워스의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는 미술계에 잘 알려져 있다. 스위스에서 건축가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반은 16세부터 딜러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반은 우연한 기회에 1990년 호텔 칼튼에 넣을 피카소와 샤갈 작품을 구매하고자 스위스의 아트컬렉터인 울슬라와 함께 일하게 됐고, 울슬라는 이 젊고 뛰어난 이반을 자신의 딸인 마누엘라와 결혼시켰다. 그 후 하우저앤워스 갤러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아주 멋진 이야기로 시작한 이 가족의 갤러리는 이제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와 데이비드저너 갤러리(David Zwner gallery) 함께 세계 톱 엘리트 갤러리 중 하나로 성장했다. 2018년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국제 아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플로 이반 부부를 언급했을 만큼 이 갤러리의 다양한 신사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시장과 미술사

아티스트 레지던시: 영국 서머셋의 하우저앤워스 지점은 지역 주민, 예술가, 큐레이터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공 프로그램과 레지던시를 제공한다.
덜슬레이드팜 지역에 위치하며 이미 100,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사진:헬렌 비넷(Hélène Binet)

그렇다면,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왜 이러한 연구기관을 만들었을까. 또 그들은 급속하게 커가는 글로벌 미술시장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기에 이러한 사업을 시작한 걸까. 이는 그저 한 갤러리의 새로운 사업 시도라기보다는, 현재 글로벌 미술시장이 함께 고민하고, 한국의 미술시장과 갤러리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하우저앤워스 런던 외관 사진
사진:알렉스 델파네(Alex Delfanne)

미술시장은 기본적으로 일차마켓(primary market)과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으로 나뉜다. 일차마켓이 우리가 보통 아는, 화랑들이 살아 있는 작가들의 스튜디오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이라면, 세컨더리 마켓은 기존 컬렉터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다시 파는 시장,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을 경매회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요즘 같은 미술시장 구조(갤러리, 아트페어 등)가 1990년대, 2000년대를 기점으로 더욱 본격화됐고, 갤러리들은 지난 30~40년간 20세기에 태어난 근현대 작가들을 많은 전시를 열어 소개했다. 보통 근대(modern) 작가라 함은 20세기 초반생으로 대부분 작고한 작가들을 통칭해서 말하고, 컨템퍼러리 작가들은 대부분 생존 작가를 호칭한다고 할 수 있다(쉽게 이해를 돕고자 하는 구별임). 하지만 이제 그들이 함께 일해온 많은 작가가 작고하기 시작했고 그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사실 이러한 상업 갤러리가 미술사 학교를 만든다는 것을 조금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눈도 있다. 그들이 설립한 이 미술사 기관이 갤러리 전속 작가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해석 없이 더욱 중요한 작가로 연구하고 소개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에서 다루는 연구와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50년이 지나지 않으면, 아니 더 나아가 100년이 넘지 않은 미술은 아직 다룰 수 없다는 매우 전통적인 학문의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미술사학자들이 미래에 다룰 자료와 내용들은 작가가 살아 있는 이 시간, 또 예전과 달리 생생한 정보가 매우 쉽게 공유되고 전해지는 이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지난 25년간 많은 작가, 미술관, 재단과 일하며 작가들을 지원해왔습니다. 하지만 작가들을 연구하는 미술사가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작가들이 남기는 중요한 자료들과 기록들을 관리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내가 매매한 작가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은, 컬렉터로서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설립한 이 연구소는 단지 갤러리 전속 작가만 연구하는 사설기관이 전혀 아닙니다. 중요한 근현대작가들을 연구하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미래 세대들에게 이 시대의 예술과 역사를 공유하고자 하는 비전에서 시작된 비영리 기관입니다.”

하우저앤워스 인스티튜트

브레말:브레말은 장엄한 그램피언산맥과 고대 삼림 지대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성과 위스키 증류공장으로 둘러 싸인 곳으로 케언곰산맥을 탐험할 수 있는 지대다.
사진:심 카네티 클라케(Sim Canetty-Clarke)

이 기관은 이사회와 자문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회에는 갤러리 창립자 이반 워스를 포함해 임원 5명이 있으며 자문위원회는 6명이다. 초대 학장으로는 예일대학교 미술관 수석큐레이터와 디코르바 조각박물관 부관장을 역임한 세계적인 미술사가인 제니퍼 그로스(Jennifer Gross)를 초청했다. 이 인스티튜트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미술사가들에게 다양한 장학금을 지원하는 장학사업,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다양한 자료를 보존하는 아카이브 사업, 작가들의 도록 출판이다.

이러한 연구와 출판은 모든 미술관, 대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하는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예술위원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우리나라 작가들의 해외 홍보를 위해 전시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전문적 출판임을 직시하고 시작은 했지만, 사업 자체가 오래 걸리고 특별히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기에 숙제가 많다. 갤러리가 작가들을 소개하는 매거진은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인스티튜트에서 나오는 출판물은 좀 더 학술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작가의 이력과 작품을 아카이빙할 수 있는 카탈로그로 출판된다. 카탈로그의 첫 번째 작가로 프란츠 클라인이 선정됐다. 미국 예술가 프란츠 클라인의 1950~1962년 작품이 수록될 예정이며, 프란츠 클라인 재단과 함께한다. 이 외에도 펠로십, 박사후 연구원, 연구 펠로십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근현대 미술의 다양한 작품 연구를 도와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 관련된 지적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특별히 초대 학장인 제니퍼 그로스가 리서치 펠로십을 맡아 선정된 예비 박사 및 박사 학생들과 장학생들을 지원한다.

스코틀랜드 브레말의 피프 암스 호텔:2018년 10월, 피프 암스 호텔이 문을 열었다. 12월 4일, 이반과 마누엘라 워스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건물을 호텔로 재단장했다.
사진:심 카네티 클라케(Sim Canetty-Clarke)

마무리하자면, 예술 공공기금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 하우저 앤워스 인스티튜트의 설립은 사회 엘리트 계층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한 사례가 된다. 또 바이엘러 재단 설립자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딜러로 시작하여 자신의 컬렉션을 재단으로 확장한 점을 고려해보면, 갤러리 사업의 확장으로 인스티튜트를 운영하는 것은 예술을 철학과 문화가 융합된 삶의 일부로 생각하는 스위스의 전통을 반영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반과 마누엘라 워스가 제안하는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의 전시를 위한 다양한 분관 형태의 갤러리 확대, 작가들과 큐레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네트워크 구축, 더 나아가 인스티튜트에서 출판 및 연구의 확장지원 등은 분명히 전통적인 갤러리 운영 방식에 도전하는 새로운 운영안이다. 아트 뉴스페이퍼 설립자 루이자 버크도 이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는 미술 작품 매매를 통해 그들의 클라이언트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전략이 특별히 눈여겨볼 만하다고 언급했다. 스톤헨지 시대의 유물부터 스칸디나비아 가구 등 넓은 범주를 아우르는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으며, 컬렉팅은 하나의 질병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자신들의 깊은 열정을 드러낸다.

[이지윤의 art TALK(15)] 패션이 아닌, 문화를 파는 기업: 프라다

[이지윤의 art TALK(15)] 패션이 아닌, 문화를 파는 기업: 프라다

이지윤의 아트톡은 3개월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중요한 미술거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엔 밀라노 외곽에 있는 미국 최고 거장들의 근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빌라 판자(Villa Panza)’였다. 지난달에는 피렐리사가 지역 재개발의 하나로 설립한 행가 비코카(Hanga Bicocca)라는 대규모 설치미술을 보여주는 공장 미술관을 설명했다. 이번 호에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대표하는 중요한 현대 문화 기관으로 자리 잡은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소개한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초상 사진 / 사진:귀도 하라리

아마도 올해 밀라노 디자인 페어를 방문한 사람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된 ‘must see’ 장소는 다름 아닌 이곳일 것 같다. 밀라노에 있는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는 2011년 오픈한 베니스 프라다 파운데이션에 이어 프라다가 운영하는 두 번째 예술 문화 공간이다. 헤르조그 & 드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펠트리넬리 재단(Feltrinelli Foundation)의 도서관 건물, 안도 타다오의 아르마니 테아트로(Armani Teatro)와 같은 밀라노의 다양한 창조 산업 공간들은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협업으로 설립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와 함께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를 개관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렘 쿨하스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공간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그의 남편 페트리지오 베텔리(Patrizio Bertelli)는 1993년 문화 재단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오랫동안 극장, 시네마, 음악, 문학,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부는 예술에 상당히 깊은 식견을 갖추었다. 본인들은 예술에 관한 관심이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프라다와 베텔리는 예술 속에 있는 생각의 정교함을 통해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는 사업가의 생각이 아닌 새롭고 다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을 여러 번 피력해왔다.

프라다는 현대 예술을 바라볼 때 작품에 내재된 근본적인 생각들을 추구하여 자신들만의 문화적 관점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계획했다. 그들은 밀라노의 창조산업 지역으로 재개발된 포르타 제노바(Porta Genova)에서 멀지 않은 도시의 남동쪽에 있는 1910년에 증축된 산업 공간인 증류주 공장을 구입했고, 건축가를 찾았다. 당시 그녀가 사람들에게 건축가를 소개받을 때 렘 쿨하스의 작품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렘 쿨하스의 책을 본 부부는 그의 작품과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방향성이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렘 쿨하스는 강한 오라(aura)를 지니고 있던 산업 공간을 허물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다이얼로그를 생산하기를 제안했다. 그 결과 파운데이션에 들어오는 사람이 마음의 세계(State in Mind)에 방문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끔 하고자 하는 주된 개념이 나왔다.

사실, 공간을 거닐며 느끼는 놀라움은 렘 쿨하스의 산업적 재료를 이용한 건축의 디테일에서 비롯된 완성도였다. 프라다는 매우 ‘세련된’ 패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비닐 천으로 만든 가방과 가벼운 신소재로 시작된 브랜드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렘 쿨하스가 선정한 철망, 시멘트, 비닐과 같은 소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즉, 낮은 옛 증류 공장의 수평적 공간과 새로 지은 건물의 수직적 공간의 만남, 서로 다른 새것과 오래된 것의 만남, 좁고 넓은 공간들의 대비가 어쩌면 앞으로 운영될 파운데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제시해준다고나 해야 할지. 커미셔너와 건축가의 협업이 매우 긴밀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건축가이지만 상당한 큐레이팅 경력을 가진 렘 쿨하스이기에, 이러한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지향하는 ‘생각의 공유’라는 그들의 취지를 더욱 잘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낳았다.

포디엄, 시네마, 토레 그리고 헌티드 하우스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렘 쿨하스는 파운데이션 공간을 세 개로 나누었다. 토레, 헌티드 하우스, 포디엄(Torre, Haunted House, and Podium)으로 구성된 이 건물들은 일정한 전시 공간, 강당,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타워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약 1만9,000 인 하나의 복합 공간은 입구에서 연결된 포디엄과 황금색 잎으로 금박 장식된 건물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 빌딩 토레로 나뉘어 각기 다른 주제의 전시와 컬렉션을 보여준다.

특히 2018년 완공된 가장 높은 건물 ‘토레(Torre)’는 프라다의 소장품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60m 높이의 흰색 노출 콘크리트로 제작됐다. 타워의 각 층은 카스텐 횔러,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모나 하툼, 마이클 하이저, 존 발데사리 등 국제적으로 명성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공간 내부는 불투명 재질, 알루미늄, 유리 소재로 반사되어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통유리로 설치된 건물 한쪽 면은 실내외 공간의 경계를 없애고 밀라노 시내의 전경을 내부 공간과 연결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핑크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실내 공간 재질은 관람객들에게 프라다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가운데 안뜰(Courtyard)에 있는 건물은 골드 신전을 생각케 하는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라고 불리는 근사한 공간이다. 헌티드 하우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초현실적 경험과 느낌을 주는, 로버트 고버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주로 성, 관계, 자연, 정치, 종교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미국 조각가 고버의 무제 작품(1993~1994년 제작)을 소장하고 있고, 위층에는 프랑스계 미국인 여성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있다. 거미 조각 마망(Maman)으로 잘 알려진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 자연, 신체는 그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다. 1996년 작품 셀(옷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함께 조합한 조각품이며 그녀의 어린 시절과 신체 부분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아틀라스’ 전시 전경, 토레 – 프라다 파운데이션,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카스텐 횔러, 업사이드 다운 머쉬룸 룸, 2000.

포디엄(Podium)은 기본적으로 어떤 기획이든 보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전시 공간이다. 넓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며, 이번엔 미술 큐레이터가 아닌, 벨기에 출신 주요 작가인 뤼크 튀이만(Luc Tuymans)이 기획한 ‘상귄(Sanguin).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는 국제적인 작가 63명의 80개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과 일치한 전시 동선은 작품의 스토리텔링을 돕는다. 이 전시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동시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였으며 포퓰리즘 급증에 영향을 받는 현대 시각 문화에 대한 물음을 바로크 미술과 현대미술을 조합하여 구성한 기획이다. 기획자로서 튀이만은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의 회화와 제이크 챔프먼과 디노스 챔프먼의 설치 작품을 병치하는 등 새로운 문맥을 제안한다.

사고 카운슬(Thought Council)

‘아틀라스’ 전시 전경, 토레 – 프라다 파운데이션,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제프 쿤스, 튤립, 1995~2004.

특히 많은 예술 문화 파운데이션이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제시하는 구조는 매우 눈여겨볼 만하다. 독특하게도 프라다 파운데이션에는 재단의 디렉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그들의 비전을 위해 사고 카운슬(Thought Council)을 운영한다. 세드릭 리버트(Cedric Libert)와 니콜라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을 설립 멤버로 시작했다.

학생, 큐레이터,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 작가들을 초대하여 자신들의 컬렉션에 새로운 지평과 해석을 제공하도록 권장한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이론화한 이탈리아 미술사가인 제르마노 셀란트가 기획한 전시를 시작으로 그들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문화 기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건축가 렘 쿨하스는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다양하게 대조되는 사항들이 변주를 이루는 복합 단지 안에서 예술과 아이디어가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루이비통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구찌의 프랑수아 피노 등 패션 기업가 및 디자이너들은 파운데이션을 형성하고 건축가들과 협업해 예술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킨다는 사업의 일환으로 가장 구체적인 비전과 운영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특히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제 구두 회사인 영국 처치스(Church’s)사 및 밀라노 중심가에서 1884년부터 시작한 디저트 사인 마르케시(Marchesi)를 인수하며 프라다는 자신들의 기업 비전을 패션을 넘어선, 문화의 거점으로 확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듯, 과거와 현재의 공존은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예술의 고장 이탈리아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프라다 기업은 이탈리아 문화적 자산을 통해 패션, 음식, 예술이 어우러진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이탈리아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역사, 현대 예술이 공존하는 방법을 앞으로 프라다 파운데이션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 건물 내부 전경. 사진: 이지윤

프라다 파운데이션 밀라노 새로운 공간, 건축 공간 OMA 담당, 사진: 바스 프린센, 2015, Courtesy Fondazione Prada
‘상귄. 뤼크 튀이먼의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데니스 티푸스, 네덜란드 녹화기 (Vlaamse Blokfluiten), 2012

‘상귄. 뤼크 튀이먼의 바로크에 대하여’ 전시 전경, 폰다지오네 프라다, 사진: 델피노 시스토 레그나니 에 마르코 카펠레티, Courtesy Fondazione Prada, 왼쪽부터 오른쪽, 버린드 드 브렉커, 플란더스 벌판에서, 즐라트코 코플리아, K9 Compassion BW, 2003

 

 

 

[이지윤의 art TALK(14)] 밀라노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공장 피렐리(Pirelli)의 행거 비코카

[이지윤의 art TALK(14)] 밀라노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공장 피렐리(Pirelli)의 행거 비코카

“이탈리아의 정치는 매우 복잡해도, 밀라노는 잘하고 있다.” 최근 밀라노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탈리아는 극보수와 극좌파로 나뉜 두 개 정당이 함께 연방정부를 이끌고 있는 실정이라,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있다고는 하나, 밀라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새로운 유럽 아트와 디자인 혁신이 몰리는 ‘잇(it)’ 장소다. 그 중심에 포뮬러 원의 후원사이자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타이어사인 ‘피렐리’가 설립한 현대미술 전시공장 ‘Pirelli Hangar Bicocca’가 있다. 밀라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트와 디자인, 건축, 패션에 이르는 많은 신생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유를 ‘행거 비코카’를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안젤름 키퍼,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들 2004~2015. Photo : Agostino Osio. Courtesy Pirelli Hangar Bicocca

이곳을 ‘행거 비코카 미술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공장’이라고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피렐리 타이어 회사의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인 동시에, 나아가 매우 특별한 개인 작가들의 솔로 전시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밀라노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미술이나 디자인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잘 모른다.

본래 문화 중심지로의 변화에는 부동산 가격이 큰 역할을 한다. 낮은 임대료 덕분에 한때 예술가들의 집결지였지만 이제 상업 갤러리의 중심지가 된 뉴욕 첼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문화산업의 중심 지역이 되고 있는 런던 쇼디치, 서울 성수동이 그러하다. 밀라노도 마찬가지다. 비코카 지역은 밀라노의 산업을 이끈 거대한 세 기업 브레다(Breda), 마렐리(Marelli), 피넬리(Pirelli)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주한 곳이다. 특히 레코 지역 출신 가족의 대규모 타이어 회사인 피렐리는 전기 케이블과 타이어 무역산업의 선구자로 이탈리아를 최고의 산업 국가 중 하나로 이끄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결과적으로 이 지역은 가장 이른 시기에 제일 중요한 산업단지가 됐다. 하지만 1970~80년대 비코카 지역은 산업 형태의 변화와 낮은 고용률로 인해 많은 사람이 떠나고, 낙후되기 시작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밀라노에서 비코카 지역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 곳으로 지난 20년을 보냈고, 피렐리사는 21세기를 기점으로 매우 대대적인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피렐리는 밀라노 노동계급 역사의 상징인 공간을 대학 캠퍼스, 오피스, 공공기관, 현대미술 센터 피렐리 행거 비코카 등으로 변형했다. 이렇게 낙후된 산업 공간이 예술 공간이 된 것은 비단 비코카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생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에 반하여, 비코카는 ‘기업의 주도’로 도시 재생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우스토 멜로티, 시퀀스, 2019. Photo: © Jiyoon Lee

20세기 산업단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피렐리 행거 비코카 건물은 관람객에게 비코카 지역의 산업 역사와 진화를 보여준다. 특정된 구획 없는 공간은 본래의 건축적 특징을 드러낸다. 전시 공간은 쉐드(Shed), 쿠보(Cubo), 나바테(Navate) 구역으로 구성된 복합 장소다. 방문객이 로비를 지나 처음 마주하는 공간은 쉐드다. 면적은 1400㎡이며, 1920년 지어진 이곳은 기관차와 기차, 농장 기계를 설비하는 곳이었다. 그다음 공간인 쿠보는 나바테로 이어지는 공간이며, 면적은 약 550㎡다. 1950년에 지어진 이 공간은 냉난방을 하지 않으며 천장이 높고, 전기 터빈을 시험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가장 감동적이고 놀라운 공간은 1960년대 초에 만들어진 나바테다. 예전엔 조립 라인과 기계 볼트를 시험하는 곳으로, 높이 30m, 면적 9500㎡(약 3000평)인 대형 공간이다. 천장 크레인의 프레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공간은 작가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하다. 웬만한 작가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압도적 공간감을 지녔다.

2004년 개관한 행거 비코카는 영향력 있는 대형 전시를 독특한 전시 프로젝트로 선보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2012년 이래, 토마스 사라세노, 라그나르 카르탄슨, 조앤 조나스, 필리프 파레노, 다미안 오르테가 등 국제적으로 최고로 인정받는 작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시를 소개했다. 이 기관의 아트 디렉터는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출신인 비센테 토돌리이며, 큐레이터 3명이 이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특별히 여기서 소개하는 전시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이 매우 흥미롭다. 토돌리는 산업 환경이나 물질 등을 다루는 작가들을 선정해 바로 여기 이 ‘장소’만을 위한, 장소 특정형 전시를 만들게 한다.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프로듀스를 하는 전시공장인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전시 공간은 흔하지 않은 기회이기에 작가들에게도 매우 도전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잘나간다는 대형 작가들도 가장 기다리는 초대전으로 꼽히는 미술전시장이기도 하다.

브레다 전자기계학의 새로운 창고 건축, 1963~64, 브레다 역사 자료실. Courtesy Fondazione Isec. Rif: 09442

동시에 행거 비코카는 매우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의 전시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새로운 작가 발굴과 창작 지원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아트센터의 사례라고나 할까. 비코카 지역은 밀라노에서 예술과 인문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피렐리사가 이러한 문화재생사업을 시작한 이면에는 매우 중요한 철학이 있다. 과학과 인문학을 연구하고 지역사회 간 소통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기업의 철학이 그것이다. 그 정신으로 피렐리사는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매우 중요한 매거진 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부터 1978년까지 발간한 ‘매거진 피렐리’는 당시 움베르트 에코, 이탈로 칼비노, 귀도 카를로 아르간 등 세계적인 석학, 지식인들과 대화를 통해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학, 건축, 경제학, 도시계획과 문학 등 다양한 학제를 연구해왔다. 또 피렐리는 달력 하나를 만들 때도 리처드 애버던, 칼 라거펠트, 스티브 맥커리, 브루스 웨버와 같은 거장급 사진작가들과 협력했다. 이 철학을 이어받아 비영리로 운영되는 피렐리 행거 비코카는 피렐리사에서 기금을 지원받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어렵게 여겨지는 대형설치 현대미술 작품을 보려고 방문하는 수많은 초등학생이었다. 이 미술관은 무료로 운영되는 덕분에 밀라노 주변의 모든 초등학교 학생의 방문이 상당하다고 한다. 미술 수업과 모든 예체능 수업이 거의 없어져가는 한국의 실정을 생각하면, 이제 사라져갈 산업적 재료로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생생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미술을 보는 아이들이 앞으로 영감을 받아 뿜어낼 아트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우리도 창조 국민을 위한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행거 비코카 외부 전경. Photo : Lorenzo Palmeri. Courtesy Pirelli HangarBicocca

안젤름 키퍼, 일곱 개 천상의 궁전들(2004~2015)

안젤름 키퍼, 일곱 개 천상의 궁전 2004~2015. Photo : © Jiyoon Lee

이 놀라운 공장의 마지막 견학장에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은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가 10년에 걸쳐 만든 영구 설치관이다. 2004년 피렐리 행거 비코카는 개관 축하 작업으로, 독일의 개념미술 작가이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가와도 같은 안젤름 키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작품을 주문한 기업과 10년에 걸쳐 영구 설치를 위한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관계다. 과거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the Sistine Chapel)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30년에 걸쳐 만든 것을 생각하게 할 만큼, 현대판 최고의 커미션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내부를 시멘트로 쌓아 올려 높이 14~18m, 무게 90톤인 ‘일곱 개 천상의 궁전(2004~2015)이라는 작품이다. 7개 조각과 5점 회화로 구성된 장소 특정형 인스톨레이션 작품으로, 우리로 하여금 미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테크놀로지 미술 시대에 이렇게 굵게 갈 수 있는 물질성을 가시화한 새로운 작업의 존재 등 여러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4~5세기경 출판된 히브리어 문학 작품 『세페르 헤칼롯(Sefer Hechalot) – 궁전의 책들』 본문에서 작품의 제목 ‘일곱 개 천상의 궁전’을 참조했다. 책은 신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인도의 상징적인 길을 묘사하고 있으며, 작가는 7개 구조물에 고유의 이름과 의미를 붙이고, 회화 5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같은 작가의 시적인 숙고를 강조하고 있다.

마리오 메르츠, ‘이글루’, 피렐리 행가 비코카의 전시 인스톨레이션, 밀라노, 2019. Photo : © Jiyoon Lee.

전쟁 후 남아 있는 문명의 폐허 같기도 하고, 그러한 페허가 만들어내는 경외감 같은 위엄성과 어떠한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듯한 심오함이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 출신 작가인 키퍼에게 있는 전쟁에 관한 개인적인 여파(Aftermath)들이 이러한 작업을 가능케 했으며, 특히 무솔리니의 독재 시절을 겪은 이탈리아의 미술기관에서 유럽의 종교와 역사성을 반영한 작품을 영구 컬렉션으로 선택한 것은 놀랍지 않다.

필립 파레노, 대니 거리, 2015(디테일) 전시 전경 “필립 파레노 H {N)Y P N(Y} OSIS”, 파크 에비뉴 아모리, 뉴욕. Courtesy Pilar Corrias, Barbara Gladstone, Esther Schipper. Photo : ©Andrea Rossetti Rif: Danny The Street_ Armory2

2019년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전후 세대 작가인 안젤름 키퍼와 마리오 메르츠의 작품은 거대하다. 두 작가의 작품은 이탈리아 산업 공장을 대표하는 공간인 피렐리 행거 비코카 안에서 유럽의 문화·사회·정치적으로 문맥화되어 다양한 의미로 확장된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 덕분에 한때 발달된 철도와 도로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고 여러 지점을 연결해주던 밀라노는 이제 현대미술과 창조산업으로 과거와 현재, 지역(Local)과 세계(International)를 연결한다. 중소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발달된 산업을 기반으로 밀라노는 패션위크, 디자인 페어 등 다양한 문화 행사로 전 세계 관람객의 이목을 끌고 있다. 피렐리 행거 비코카는 지역과 장소의 역사성을 강조하여 현대미술과 밀라노의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지윤의 art TALK (13)] 컬렉터이자 큐레이터 주세페 판자 ‘빌라 판자’ Giuseppe Panza

[이지윤의 art TALK (13)] 컬렉터이자 큐레이터 주세페 판자 ‘빌라 판자’ Giuseppe Panza

바레세(Varese)라는 도시가 나온다. 그곳에 아주 특별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 2000년에 개관한 20세기 미국 최고 작가들의 컬렉션 미술관이다. 사람들은 댄 플래빈의 최고 작품들을 보려면, 뉴욕이 아닌 바레세에 가야 한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수백억원이 된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 솔 르윗, 브루스 나우먼 등 뉴욕 MoMA에 있을 법한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컬렉션이 이탈리아 북쪽 지방 공립 미술관에 있는 것이다. 이 특별한 컬렉션을 만든, 주세페 판자 컬렉터의 정신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스튜디오에 있는 주세페 판자(Giuseppe Panza)(이 이미지는 주세페 판자와 그의 아들 알레산드로 판자가 1975년 미국 전역을 여행할 때 동반했던 젊은 사진 작가 필립포 포멘티(Filippo Formenti)가 기록한 사진 중 일부다.) ⓒ Filippo Formenti, Milan.

주세페 판자는 1950년대 전후 미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컬렉터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미국의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개념미술 등 최고의 미국 미술을 컬렉션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미국 미술을 유럽 미술계에 처음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2500여 점에 이른다. 개인 컬렉터가 이 정도 컬렉션을 거의 마스터 작품들로만 만들었다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그는 부동산업과 와인 유통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어니스트(Ernest Panza)는 백작 지위를 수여했다. 주세페 판자는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 정권을 피해 스위스로 갔고, 거기서 당시 최고 철학자들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철학자 칸트, 헤겔, 니체, 크로체의 사상에 심취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페라, 바그너, 프랑스 문학, 러시아 문학, 인상주의 미술, 모던 프랑스 미술인 브라크와 피카소 등을 접하며 당대 최고의 문화적 기반을 쌓았다.

판자가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던 1950년대 말 밀라노 예술계는 추상미술에 매우 비판적 입장이었다. 그는 당시 비주류 미술에 관심을 가진 구이도 르 노치 딜러에게 정보도 얻고, 1957년 미국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다.

그의 첫 작가는 프란츠 클라인이었다. 인간의 본성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한 힘과 호흡으로 그린, 수묵화와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는 미술이 합리적인 이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인간의 직감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며 삶과 시각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어야했다. 프란츠 클라인은 그의 철학적 태도가 반영된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추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없애는 투쟁으로 단순함을 만들어가는 것인지. 그러한 극도의 이상적 미학을 추구했다.

미술로 진리 탐구

빌라 메나포글리오 리타 판자, 바레세(Varese)가든, 메인 분수 정면 ⓒAlessandro Zambianchi, Milan.

“나는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감정은 진리를 발견하는 지식이라고 믿는다. 진리 탐구는 인간의 주된 목표다. 이러한 미술은 단순한 형태로 진리에 대한 탐구를 드러낸다.”

판자는 추상표현주의부터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삶을 사색하는 일관된 미적 취향을 기반으로 컬렉션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철학적 사고에 집중된 컬렉터이자 사업가적인 감각이 매우 뛰어났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1958년 봄 밀라노에 있는 아리에테 갤러리에서 프리 컬럼비안(Pre Columbian)과 아프리카 조각(Africa sculpture)을 소개한 [원시 미술(Primitive Art] 전시회가 있었다. 같은 해 바젤 쿤스트할레에서 [새로운 아메리카 미술(New American Art)]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MoMA가 기획한 이 전시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 바넷 뉴먼, 클리포드 스틸과 빌렘 데 쿠닝 등 전후 작가들을 선보였으며 이후 밀라노의 갤러리아 시비카 다르떼 모데르나에서 개최되었고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예술관을 반영하는 이 새로운 미술에 대한 관심은 그가 마크 로스코 작품 8점을 구입하는 등 본격적인 미국 추상미술 컬렉션에 몰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60년 그는 두 번째 뉴욕 여행에서 만난 화상 레오 카스텔리를 통해 마크 로스코, 이브 클라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전후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만나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 반응은 안 좋았다. 집안에서도 밀라노 미술계에서도 매우 이상한 미술을 구입하는 괴짜로만 불렸다. 하지만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초로 미국 작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대상을 받자 판자 컬렉션을 바라보는 이탈리아인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컬렉션한 작가들의 중요성이 미술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 이탈리안 컬렉터의 미국 작가 컬렉션은 상당히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 과거의 대가들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당시에 새롭게 등단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점에서 영국의 사치 컬렉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컬렉터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컬렉션 구입과 디스플레이

빌라 1층 살롱 설치 전경 ⓒAlessandro Zambianchi, Milan.

또 재미있는 원칙이 있다. 그는 자신의 미적 취향에 부합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일 경우에만 작품을 구입했고, 컬렉션을 만들어가면서 어울리지 않는 작품을 매매하거나 교환하기도 했다. 보통 작품 매입 시 기준 금액은 평균 1만 달러였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금액도 아니었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장래성 있는 작품을 구입한 것이다. 특히 1960년에 로스코 작품 8점을 구입하기 위해 1955년 구입한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와 에밀리오 베도바(Emilio Vedova)의 작품들을 팔거나 이들의 작품과 로스코의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는 600달러를 주고 구입한 라우센버그 작품 2점과 리히텐 슈타인 작품 3점을 각각 1000달러에 팔면서 이윤을 남기기도 했으며, 미니멀리즘 작품들의 경우, 모리스의 다면체 작품과 플래빈의 형광 튜브 작품을 각각 3000달러, 400달러에 구입하면서 평소의 작품 매매 기준치보다 “매우 싼 가격(very cheap)”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지금 들으면 매우 전설적인 이야기들이다.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 중에는 그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기획서(plan) 구입도 있다. 즉, 설치하는 방법을 써 놓은 솔 르윗이나 한네 다보벤 같은 작품은 유통이 용이할 뿐 아니라 거래 및 상속에서도 소비세나 양도세를 낼 필요가 없다. 작품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으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작품들이기에 그러하다.

판자는 자신의 컬렉션을 직접 디스플레이했다. 또 많은 다큐멘터리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 미학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설치가 되었지만, 당시엔 매우 새로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전적 담론을 제기할 만한 갖가지 디스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즉, 바로크 궁전들, 고대 유럽의 공공장소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18세기 빌라 등 역사적인 공간에서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아프리카 예술품 및 동시대의 예술 작품들을 배열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선보이며, 건축적 문맥 안으로 예술 작품들을 끌어들이며 예상치 못한 새로운 다이얼로그를 창조했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작품을 배치할 때 전시가 줄 수 있는 현상학적 경험을 중시했고 작품과 관객이 다이얼로그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건물의 건축, 방의 ‘면적(SPACE)’, ‘빛(LIGHT)’은 그가 작품을 공간에 배치할 때 반드시 고려하는 중요한 원칙들이었다. 더불어 그의 컬렉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놀라는 또 하나의 사실은, 한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시리즈로 구매하는 것이다. 즉, 갤러리 방 하나하나에는 그가 구매한 한 작가의 작품들을 시리즈로 배치할 수 있었다. 언제나 인공조명보다 자연광을 선호했고, 전시장에 거는 커튼 선정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타협되지 않으면 전시를 거절할 정도로 자신이 작품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미적 체험을 위한 원칙들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정말 큐레이터들이 알고 배워야 할, 느껴야 할 모든 것을 담담히 하나씩 만들어가는 수행자였다.

컬렉션 매니지먼트

바레세 전원 1층 D에 설치된 댄 플래빈(Dan Flavin) 작품 ⓒAlessandro Zambianchi, Milan.

판자 컬렉션이 시도한 새로운 흐름은 소위 말하는 컬렉션 매니지먼트라 불릴 만한 새로운 시도였다. 즉, 그의 컬렉션은 그가 큐레이팅으로 보여주는 방법 덕분에 더욱 새로운 명망을 얻게 됐다. 그의 컬렉션은 전후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특징과 주세페 판자식의 컬렉션 방법이 더욱 조망을 받게 되면서 다른 나라 미술관들에 대여해주는 전시가 많아졌다.

사실, 개인 컬렉션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수집한 컬렉션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논제다. 자신이 미술관을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공공 기금을 받아 운영하게 되면 개인 컬렉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비전이나 컬렉팅의 색깔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한 면에서, 판자는 그의 많은 작품을 기증과 판매라는 방법으로 중요한 미술관과 협업을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분은 사람들에게 다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영 방식은 사실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조명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미국 1950년대 이후부터의 작품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 장기 대여 및 판매를 했다. 어찌 보면, 로스앤젤레스 미술관은 판자 컬렉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제1기에 속하는 미술품들은 대부분 적은 금액으로 미술관에 매각해 LA MoCA의 영구 소장품이 됐다. 그 이후, 같은 방법으로 1960~70년대의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영구 컬렉션이 됐다.

미국 워싱턴 D.C.의 허쉬혼 미술관은 온 카와라(On Kawara), 조지프 코수스(Joseph Kosuth),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과 한네 다보벤(Hanne Darboven) 등 판자 컬렉션 중 개념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판자 컬렉션의 독일 출신 작가 토마스 쉬테(Thomas Schutte)의 작품은 베를린의 플릭 컬렉션(Flick Collection)에 있다. 혹자는 그가 미술품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기에 그 돈으로 컬렉션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투자나 투기로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했으며, 또 작가들과 만나 인터뷰해 그들의 작품 비평문을 직접 쓰는 대단한 큐레이터이기도 했다. 최근 ‘사치의 작가들’이란 말로 영국 젊은 작가들 ‘YBAs(Young British Artists)’을 만든 것과 같이, 판자는 순회전을 통해 ‘판자 컬렉션’이라는 명성으로 새로운 컬렉션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미술 컬렉팅에 대한 개념과 비전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니 묵묵히 컬렉터의 길을 걸어온 주세페 판자의 태도와 정신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보통 돈이 있어야만 미술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술작품도 때로는 그들이 가야 할 운명적 소장자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낳으며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바레세 전원 1층 H에 설치된 댄 플래빈 작품 ⓒAlessandro Zambianchi, Milan.

스튜디오를 방문한 주세페 판자(판자의 1975년 미국 여행을 담은 기록사진 자료 중 일부다.) ⓒ Filippo Formenti, Milan.

스튜디오 전경 ⓒGian Sinigaglia – Archivio Panza / Giorgio Colombo, Milan.

빌라 1층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들. 1970년대 초반. ⓒGian Sinigaglia – Archivio Panza / Giorgio Colombo, Milan.

대 마구간에 설치된 작품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댄 플래빈(Dan Flavin), 1972 ⓒGian Sinigaglia – Archivio Panza / Giorgio Colombo, Milan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Reina Sofia Museum)에 설치된 리처드 노나스(Richard Nonas)의 작품 ⓒGiorgio Colombo, Milan.

바레세 빌라 2층에 설치된 스튜어트 아렌드(Stuart Arends)와 포드 베크먼(Ford Beckman)의 작품 ⓒGiorgio Colombo, Milan

[박스기사] 시기와 작품 특색에 따른 컬렉션


1기 컬렉션(1955~62년): 전후 유럽 미술 작가인 안토니 타피(Antoni Tapie)와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의 작품 및 추상표현주의 작가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과 마크 로스코(Mark Rothko), 팝아트 작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클라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와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2기 컬렉션(1969~78년): 브라이스 마든(Brice Marden),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댄 플래빈(Dan Flavin) 등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작품들이다.

3기 컬렉션(1987년~2010년): 작가 스튜어트 아렌드(Stuart Arends), 포드 베크만(Ford Beckman), 크리스티아네 뢰어(Christiane Lohr), 데이비드 심슨(David Simpson)과 윈스턴 로즈(Winston Roeth) 등의 작품들을 수집했다.

 

 

 

[이지윤의 art TALK(12)]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만난 멕시코 혁명 예술가 프리다 칼로: MAKE HER SELF UP

[이지윤의 art TALK(12)]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만난 멕시코 혁명 예술가 프리다 칼로: MAKE HER SELF UP

2018년 여름, 런던에서 매우 독특한 전시가 열렸다. 우리가 늘상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전시다. 전시를 오픈한 6월에 전시를 마감하는 11월 입장권까지 이미 매진되는, 그야말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전시는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테이트 모던의 프리다 칼로 회화 전시가 아니기에 더욱 흥미를 끌었다. 

Frida Kahlo, c. 1926. Museo Frida Kahlo.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e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런던에는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이 버티고 있다. 런던에서 꼭 가보아야 하는 명소인 이곳은 연간 관람객이 4000만 명으로 영국 최고다. 이 방문객들은 단순한 여행 관람객이 아니라 내국인이나 그 지역 주민 관람객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이렇듯 런던 대영박물관은 사람들에게 그저 살면서 ‘평생 한 번’ 가보는 곳이 아니라 주말에 편안히 들를 정도로 문턱이 매우 낮은 곳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런던 박물관의 양대 산맥이라 할 만한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은 사실 아주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며, 귀한 디자인 컬렉션을 가진 명실상부한 ‘오늘날 최고의 디자인 박물관’이다. 기본적으로 세계 역사를 중심으로 쓰는 대영 박물관과 필적할 만한 세계적인 생활사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 완성도와 첨예함을 공유하겠다는 빅토리아 여왕의 비전 아래 세계 최초로 열린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 이후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기에 의식주와 연결된 재료사가 매우 중요한 큐레이팅의 방향이 되고 있다. 이번 프리다 칼로의 전시도 그런 맥락에서 기획됐다. 과거 테이트 모던에서 페인터로서의 프리다 칼로 전시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매우 혁신적인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많은 개인 소유물로 구성됐다. 그녀의 남편인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가 멕시코시티에 있는 그녀의 집인 카사 아줄(Casa Azul)에 보관했던 물건들이다. 그녀의 페인팅은 초상화 몇 개만 있을 뿐이고, 전시의 초점은 ‘그녀(HER)’ ‘자신(SELF)’이다. 옷, 속옷, 장신구, 화장품, 구두 등 200개 정도의 개인 물품이 반세기 만에 발견되었고, 그 자료들은 20세기 남미의 숨은 천재 여성 작가를 재조명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됐다.

프리다 칼로를 현재 21세기 초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한 퍼포먼스 작가다.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MAKING)’냈다. 마치 80년대에 활동한 신디 셔먼이나 영국의 그레이슨 페리처럼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를 만들었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이처럼 다양한 자아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초기 회화 작품에서 엿보인다. 자신을 쌍둥이로 그리거나, 하나는 남성으로 하나는 여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즉 다양한 자아, 또는 이질적인 자아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을 넘어 복수(複數)의 자아를 꿈꾸는 것은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과 관련 있다.

신체장애가 셀프 이미지 메이킹의 시발점

Self-portrait, Frida Kahlo, 1941 ©The Jacques and Natasha Gelman Collection of 20th Century Mexican Art and The Vergel Collection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에 걸리고, 18세에 치명적인 버스 사고를 당한 후 침대에서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녀는 미술과 드레스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칼로는 침대 캐노피에 거울을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시점에 유독 자화상 작업을 많이 한 이유는 이 집에서 나온 물건을 발견한 후에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즉, 이번 전시품들은 그녀의 약과 정형외과 관련 물품들, 몸과 척추를 지지했던 물품들, 종교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상징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그려진 그녀의 코르셋 등이었다. 바라보기가 민망할 만큼 아픈 ‘물건들’이다.
기록사진에서 보았던, 거대한 디에고 옆 자그마하지만 아즈택 문화의 수호신과 같은 여신의 포스로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알았던 그녀의 모습 뒤에 가려진 새로운 리얼리티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처음엔 한쪽 다리 의족이, 그 후에 30번 넘게 계속된 수술을 받고 발가락, 척추, 골반 등이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는데, 이때 사용한 다양한 형태로 고안된 지지대들이 전시됐다. 또 이번 전시의 한복판에서 아주 격렬하게 느껴지는 설치가 있었으니, 침대 프레임을 구조로 한 디스플레이다. 그것들이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의 부장품이 연상되는데, 그녀가 다시 태어나도 바로 필요한 물건들일 것 같아서다. 그 모든 것이 신체를 지탱해주는 장치들이었고, 그 다양한 기구 없이는 온전히 설 수 없는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고 여행과 혁명적 삶을 이루어냈을까 하는 애잔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들게 하는 오브제라 할 수 있다. 개인 물품이나 자신의 코르셋에 쓰인 글과 그림들에선 두 자아를 늘 공유하며 인생과 신에게 끝없이 질문하는 작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신체장애는 그녀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 그녀는 아주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의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다. 머리채도 그녀만의 방법으로 땋아 올리고, 언제나 큰 숄을 이용해 드레이프를 만들었다. 아무도 그 아름다운 드레스 밑에 또 다른 현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도록, 완벽에 가까운 패션 아웃룩을 만들었다. 전시는 이 드레스들을 마치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 전시와도 같은 기법으로 이용했다. ‘패션디자이너 프리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연출로 그녀의 드레스를 전면적으로 소개하는 패션관을 만든 것이다. 칼로의 컬렉션으로 전시된 옷으로는 리보조, 멕시코의 전통 숄, 후필, 수를 놓은 사각 모양의 상의, 긴 주름치마를 비롯해 pre-Columbian 시대의 옥 장식부터 현대식 은식기까지 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남멕시코 테우안테펙 지협(Isthmus of Tehuantepec)의 모계 중심 사회 여인들이 썼던 레이스로 장식된 헤드드레스다.

이번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것은 사진가로 활동한 아버지의 사진 작업들이다. 프리다가 늘 병상에서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계속해서 기록해주는 사진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SELF MADE UP’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초기 기록사진들의 전시는 마치 프리다 칼로를 통한 멕시코 르네상스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는 1920~1930년대에 외국 예술가, 작가,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이 모여든 자유주의적 행선지로 번창했다. 1920년대에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과 티나 모도티(Tina Modotti)가 이곳에 와서 찍어 남긴 전통의상, 건축, 대중예술 사진들도 함께 전시됐는데, 멕시코시티가 유럽 못지않게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 수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바람이 이 아름다운 곳을 휩쓸어버린 것을 생각하니 왠지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1980년대에 비로소 예술적 가치 인정

Self-portrait on the Border between Mexico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Frida Kahlo, 1932 ©Modern Art International Foundation

개인적 비극을 품은 작가 프리다 칼로는 운명적으로 이러한 시대를 살아낸 혁명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고, 강력한 스탈린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고, 러시아 혁명가에 심취해 평생 공산주의 옹호론자로 살았다.

20세기 초 독립국가 멕시코는 여전히 디아스라는 절대적 대통령에 의해 새로운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면서 도시는 혁명의 물결에 젖어들었다. 그 정점에 창조적 열정으로 멕시코 문화운동을 진두 지휘하고 있던 남자가 디에고 리베라였다. 프리다는 민족화가와 같은 모습에 반해 20살이나 많은 그와 결혼했다. 시대를 불태운 뜨거운 연인이었지만 동시에 치정극의 맞상대였던 두 사람. 그들의 작품은 멕시코시티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리베라의 계속되는 자유분방한 여자관계 때문에 그녀는 평생 실망과 배신, 분노를 겪었다. 이러한 감정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프리다 칼로는 사실 작가로서는 당시 리베라에 비해 덜 중요한 작가로 알려졌지만, 1939년 피에르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출품하여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 당대의 마스터 작가들에게 인정받는 작가로 데뷔했다. 그럼에도 칼로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정체성을 밝혔다.

드레스도 매우 여성적인 스타일로 보이지만, 당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적인 관습을 거부하는 디자인이었다. 그녀가 페미니스트들에게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하지만 멕시코의 국민 예술가로 미국과 러시아에까지 명성을 떨친 디에고에 비하면, 프리다는 오랫동안 ‘디에고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죽은 뒤 수십 년이 지난 1980년대에 와서야 새로운 예술운동을 통해 그녀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알려지게 됐다. 소아마비로 고통받은 어린 시절, 18세에 재난에 가까운 버스사고를 당해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던 여성, 엄청난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한 그녀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마이너리티의 대변자가 됐다. 1984년에서야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했다. 이번 전시품들은 지금은 박물관이 된 프리다의 ‘푸른 집(La Casa Azul)’에서 가져온 물건들이다. 그녀의 예술과 더불어 남편 디에고와 혁명가 트로츠키가 머물렀던 곳으로도 매우 중요한 명소다.

Prosthetic leg with leather boot. Appliqued silk with embroidered Chinese motifs. Photograph Javier Hinojosa. Museo Frida Kahlo.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é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Exhibition view of Frida Kahlo: Making Her Self Up, 16 June~14 November 2018. Sponsored by Grosvenor Britain & Ireland. ©Victoria and Albert Museum

Exhibition view of Frida Kahlo: Making Her Self Up, 16 June~14 November 2018. Sponsored by Grosvenor Britain & Ireland. ©Victoria and Albert Museum

Exhibition view of Frida Kahlo: Making Her Self Up, 16 June~14 November 2018. Sponsored by Grosvenor Britain & Ireland. ©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지윤의 art TALK(11)] 테이트 모던의 특별전 PICASSO 1932’ LOVE, FAME, TRAGEDY

[이지윤의 art TALK(11)] 테이트 모던의 특별전 PICASSO 1932’ LOVE, FAME, TRAGEDY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이 수년에 걸쳐 준비한 매우 의미 있는 멋진 전시가 테이트 모던에서 오픈했다. 바로 피카소가 1932년에 제작한 작품으로만 기획된 [LOVE, FAME, TRAGEDY]라는 특별 기획전이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Y Exhibition:Picasso 1932-Love, Fame, Tragedy ⓒSuccession Picasso/DACS 2018

어떤 한 해에 만든 작품으로만 테이트 모던급의 대형 전시장에서 특별전을 초청한다면 그저 그 공간을 채울 만큼의 작품이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 같다. 다작이 천재 작가들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이듯, 피카소도 살아생전 2만5000점을 만들어 다작 작가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특히 1932년은 더욱 그러했다. 그가 1932년에 그린 작품 ‘Nude, Green Leaves and Bust’는 지난 2016년 경매에서 1300억원에 거래돼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비싼 페인팅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1932년은 소위 ‘신기한 해(Years of Wonders)’로 불리곤 한다.

새로운 실마리 마련한 1932년

Picasso, 1933, Photograph by Sir Cecil Beaton ⓒThe Cecil Beaton Studio Archive at Sotheby’s

1932년은 피카소가 50살이 된 해다. 그에겐 작가로서 새로운 실마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1901년 파리로 넘어와서 당당히 새로운 미술을 구축해나갔고, 파리 초창기 블루시대, 주홍빛시대, 큐비즘 시기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미술 언어를 만들어가며 바로 파리 미술계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그의 예술세계가 이제 거의 소진되지 않았을까 의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점에 그의 첫 번째 뮤즈였고 처음으로 결혼한 러시아계의 발레리나인 올가와 소원해졌다. 그는 45세에 우연히 만난, 당시 17살이었던 마리아 테레스 워터(Marie-Thérèse Water)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예술가들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생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 그렇지는 않다. 평생을 혼자 살다 간 사람도 많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피카소는 살아생전 매우 큰 명성을 누리고 성공한 작가였을 뿐 아니라, 두 번의 결혼 외에도 많은 뮤즈를 두었다. 특히 그는 1930년 파리에서도 이동이 편한 프랑스 남부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18세기 성인 부아젤루(Boisgeloup)를 구입했다. 그는 이곳에서 주로 조각 작업을 하며 당시 자신의 비밀 애인이었던 마리 테레스 워터를 영감으로 멋진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이 스튜디오는 피카소의 예술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물론 올가에게는 그녀의 소중한 장소가 또 다른 여인에게 넘어가는 아픈 경험을 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사진가 브라사이(Brassäi)가 멋지게 남긴 그의 작업실 사진이 보여주듯, 매우 큰 조각과 페인팅을 할 수 있던, 피카소만의 동굴이었다.

특별히 1932년은 그가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조르주 프티(Georges Petit) 갤러리에서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당시엔 작가들이 살아 있으면서 회고전을 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31년에 마티스가 같은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 터라 다소 경쟁적인 맥락에서 전시 초청을 수락했다. 사실 이 전시는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 뉴욕의 모던아트 미술관의 전시까지 취소하며 매우 중요하게 준비한 전시이기도 하다.

한편 갤러리 입장에서는, 당시 미술시장이 겪고 있는 극심한 대공항 상황을 이 성공한 작가의 회고전으로 화랑의 운영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시대적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중요한 갤러리도 1933년 문을 닫게 되었지만, 피카소에게는 가장 중요한 전시라고 말할 수 있다.

6월 16일 GALERIE GEORGES PETIT

Pablo Picasso, The Dream,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London 2018

“The work that one does is a way of keeping a diary”

피카소는 “예술은 일기와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을 기록해가는 것이 나의 예술이며, 그런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이 전시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중요한 회고전이 바로 이 전시다. 이 전시의 오프닝에는 2000명에 달하는 파리 사람이 방문했고, 그저 당시에 왠만한 지성인이라면 꼭 봐야만 하는 전시이기도 했다. 여기서 피카소는 다른 작가들의 회고전과 매우 다른, 완연히 다른 디스플레이 실험을 했다. 작품들은 초기 작품에서 현재까지 시대별로 구성하지 않고 여러 시대와 스타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두 섞어서 설치했다. 예를 들면, 1906년에 브랑쿠지와 함께 시작한 큐비즘적인 여인의 누드와, 1차대전 직후 유행하던 매우 사실적인 이미지로 그린 올가의 초상 등 1918년부터 1924년까지의 작품을 함께 디스플레이했다. 그리고 지난 6개월간 부아젤루에서 새로 작업한 마리 테레스의 초상과 누드 작품은 전시장 여기저기를 가득 채웠다. 피카소의 새로운 뮤즈가 누구인지 바로 소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관객이 있었지만, 피카소는 참석하지 않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뒷얘기도 있다. 이 전시로 올가도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드디어 마리아 테레스가 1935년에 임신을 하자 올가는 떠났다.

남들이 들으면 심한 여성 편력의 사람으로 간주될 이 1932년은 피카소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그린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새로움에 대한 탐구를 그치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내용도 이 전시의 한 부분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의 전시 자료 및 초청장, 신문 스크랩, 설치 장면, 심지어 당시 마신 샴페인의 종류까지 기록된 아카이브도 보여준다. 피카소가 대단한 점은 이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그의 가장 정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성을 발휘하는 챕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주 마치 어린 학생처럼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매일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렇기에 부아젤루 스튜디오에서의 생활을 통해 이번 테이트 모던 특별전도 1월부터 12월까지로 전시장을 기획할 수 있었고 일련의 작업들을 순서대로 소개하는 전시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그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뮤즈인 마리 테레스와의 사랑 덕분에 그는 고전에서 다루었던 여인의 초상, 누드, 신화 등 매우 원초적인 회화의 기본을 다시 다루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열정적인 사랑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녀가 자고, 몸을 구부리고, 움직이고, 꿈꾸는 모든 모습이 그의 작업에 소재가 되었다. 특히 그녀의 프로필은 고대 로마 여인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지녔고, 그러한 모습은 다소 성기와 같은 모습의 두상으로 표현된 그의 유명한 조각들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사실 피카소는 언제나 전통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시도했다. 그 어떤 시기보다 가장 고전적인 여인의 누드나 초상화 같은 기본적인 구도에 집중한 듯하다. 당시를 생각하면, 피카소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사상 대립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매우 중립적인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의도적으로 다른 상징적 의미를 담는 작업들을 피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 예술의 고전과 기본에 집중하며 지극히 제한적인 정치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특히 1933년이 히틀러가 유럽을 제패하고, 유럽에서 나치의 관할이 가장 넓어지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담은 것은 그의 고향인 스페인의 바스크 타운이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게 폭격을 당한 후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이다. 한국전쟁을 주제로 1949년에 그린 작품도 그러한 예일 것일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피카소의 전시를 한다고 하면 아무리 긴 줄이어도 마다치 않고 기꺼이 몇 시간을 서서 전시를 보고자 하는 열망이, 이번 전시에서도 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예술가로서 무르익은 50세의 피카소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여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 또한 놀랍다. 시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이 해에 그는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Pablo Picasso, 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2018

Pablo Picasso, Portrait of Olga in an Armchair, 1918, Muse National Picasso ⓒSuccession Picasso/DACS 2017
Pablo Picasso, The Rescue, 1932, Foundation Beyeler, Riehen/Basel, Sammulung Beyeler ⓒSuccession Picasso/DACS 2017 마치 일본의 우키오에 작가인 호쿠사이의 춘화에 나오는 문어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Pablo Picasso, Bust of a Woman, 1931, Mus e National Picasso ⓒSuccession Picasso/DACS 2017

Pablo Picasso, The Mirror,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2018

Pablo Picasso, Nude Woman in a Red Armchair, 1932, Tate Succession Picasso/ DACS 2018 마리의 23살 생일 때 그려준 작

Pablo Picasso, The Rescue, 1932 © Succession Picasso/DACS London, 2018  오염된 물에서 수영을 하고 매우 심하게 아픈 마리를 구하고 있는 이미지.

 

[이지윤의 art TALK(10)] 바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특별전 ‘프랜시스 베이컨과 알베르토 자코메티’ 20세기 두 천재 작가의 50년 만의 만남

[이지윤의 art TALK(10)] 바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특별전 ‘프랜시스 베이컨과 알베르토 자코메티’ 20세기 두 천재 작가의 50년 만의 만남 

아트바젤 기간에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 아주 야심 차게 기획한 전시를 소개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아일랜드)의 전시다. 자코메티와 프랜시스는 한때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20세기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뛰어난 두 주인공이다.

ALBERTO GIACOMETTI AND FRANCIS BACON, 1965 Gelatin silver print, © Graham Keen

스위스 바젤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인 바젤이 왜 전 세계 최고의 컬렉터들이 모두 모이는 최고 미술시장의 현장이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젤이라는 도시는 매우 중요한 학자들과 새로운 사고들을 배출한 장소이기도 하다.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도 죽기 전까지 바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카를 융도 같은 대학에서 새로운 심리학 이론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인문학의 단단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아주 작은 이 도시는 세계적인 마이스 산업 중 하나인 다양한 페어로 유명한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 하나가 세계적인 최고의 아트페어로 자리하는 아트바젤이 있으며, 그 외에도 시계 및 보석 페어 등이 연이어 이 작은 도시를 분주히 만든다.

바젤뿐 아니라 스위스는 아주 좋은 개인 컬렉터가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바젤 아트페어는 로슈(Roche)라는 제약회사의 도움으로 1970년에 시작하여 지금은 최고의 아트페어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다른 시간과 장소의 작품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PORTRAITS (INCLUDING SELFPORTRAIT), 1969 Oil on canvas, Tryptichon 35.5×30.5㎝, Private Collection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 2018, ProLitteris, Zurich Photo: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이 작은 도시엔 보석 같은 미술관이 매우 많다. 바젤 쿤스탈레 갤러리, 샤울라거 뮤지엄, 팅글리 뮤지엄, 폴 클레 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그중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다. 이곳은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라는 갤러리스트가 만든 아주 멋진 미술관이다. 흔히들 미술 화상이 어떻게 미술관을 만들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베니스에 가면 볼 수 있는 초현실주의 화상이었으며 컬렉터였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과 더불어 20세기 최고 개인 컬렉션 중 하나이자 높은 수준의 컬렉션으로 알려진 중요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즉, 에른스트와 페기는 그들의 삶을 작가들과 함께하고 작가들을 키워온 아주 존경받는 갤러리스트였고, 이제는 비영리 재단으로 만들어 그들의 모든 작품을 세상과 공유하고 있다.

에른스트 바이엘러는 두 작가를 자주 만났고 그들의 친절한 태도와 개인적인 매력을 언급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취리히에서 자코메티 재단을 설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스위스의 자코메티 갤러리에서 두 차례 단독 전시회를 개최해 작품 약 350점을 판매했다. 또 바이엘러는 베이컨을 위해 두 번의 단독 전시회를 열었고 삼단화를 포함하여 그의 후기작 50편이 그의 손을 거쳐 판매되었다. 베이컨과 자코메티는 바이엘러 갤러리에서 각각 8회, 38회 그룹 전시에 참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바젤 기간에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 아주 야심 차게 기획한 최고의 전시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아일랜드)의 전시다. 20세기 최고의 두 작가를 이렇게 함께 전시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자코메티와 프랜시스는 한때 친구이자 경쟁자였으며, 20세기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뛰어난 두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두 작가는 1960년 자코메티가 테이트 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할 즈음에 만났는데, 그 후 이렇게 전시장에서 다시 작품으로 조우하는 것은 약 50년 만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서로에게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었으며,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예술에 대한 고뇌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하다. 가끔 그들의 메이저 작품을 한두 개만이라도 보는 것이 매우 주목받는 일인데, 그들의 주요 작품, 특히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요 트립틱(tryptich)을 포함하여 100여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은 그 규모에서부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베이컨과 자코메티 작품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 형상에 대한 지점이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전통’과 옛 거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모사와 변형 작업을 수없이 했다는 점이다. 자코메티는 거의 한평생 두상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요하게 실제 형상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고, 베이컨도 다양한 초상화에 집중하며 연구했다. 그들이 활동한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사용한 케이지(cage)와 같은 구조는 인물을 공간에서 고립시켜서 새롭게 형상을 바라보려는 의지들로 보인다. 이 전시는 계속해서 두 작가의 작품 제작 연도를 비교해가면서 볼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되어 있는데, 두 사람의 미술에 대한 고민과 집념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게 표현돼 경이롭다. 특히 그들이 가장 고민한 중요한 주제인, 새로운 상징적 ‘추상’을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즉,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중심이 되었던 형상화와 추상화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과 실험을 통해, 어떻게 보면 20세기를 관통하는 새로운 미술의 언어를 구축했다고나 할까.

FRANCIS BACON, STUDY FOR PORTRAIT VII, 1953 Oil on canvas, 152.3×117㎝, Gift of Mr. and Mrs. William A.M., Burden. Acc. N.: 254.1956. © 2017.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FRANCIS BACON’S 7 REECE MEWS STUDIO, LONDON, 1998 Photographed by Perry Ogden,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 2018, ProLitteris, Zurich, Photo: Perry Ogden/DACS/Artimage

Alberto Giacomettim Boule suspendue, 1930, Plaster and metal, 61×36×33,5㎝, Kunstmuseum Basel, Depositum of the Foundation Alberto Giacometti, © Succession Alberto Giacometti / 2018, ProLitteris, Zurich, Photo: © Kunsthaus Zurich

FRANCIS BACON,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 STANDING IN A STREET IN SOHO, 1967, Oil on canvas, 198×147㎝,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1967 acquired by the estate of Berlin,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 2018, ProL

ALBERTO GIACOMETTI, TÊTE D’ISABEL, 1937~1939, Plaster and pencil, 21.6×16×17.4㎝, Fondation Giacometti, Paris, © Succession Alberto Giacometti / 2018, ProLitteris, Zurich

 

마치 대화하듯 설치돼 있어

전시장 내부

전시장의 디스플레이는 두 작가의 작품이 서로 마주하며, 마치 대화하듯 설치되어 있다. 특히 그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베이컨의 삼단화 시리즈 작품들에서 그가 해석하는 불안, 고통 등의 심리가 내재된 아주 왜곡된 형상을 한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누리는, 당대 최고의 페인터로써 역량을 발휘하듯, 작품들은 ‘잘 그려진’ 것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다양한 색채감이나 언제나 캔버스를 뒤집어서 사용해서 얻어낸 아주 부드러운 마감처리 방법, 작품의 보전을 위해 언제나 유리를 해서 작품을 마무리했던 그의 성격 덕분에 모두 최고의 보전 상태를 보여준다. 베이컨은 언제나 여러 종류의 캔버스 사이즈로 작업해 모작 문제가 없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에 그의 작품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1987)]이 공공전시에 처음 소개되기도 했다.

전시에서 계속적으로 함께 생각하게 하는 것은, 두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집중과 열정의 상호작용이다. 자코메티는 그의 석고 흉상에 칼로 깊은 흉터를 남겼다. 그 상처는 어떤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보여주지만 결국 작가 자신에게 겨누는 상처이기도 하다. 또 베이컨의 그림에서도 뒤틀어지고 왜곡된 몸과 얼굴들이 비슷한 시선으로 드러난다. 결국 두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미학적 범주는 놀라울 정도로 전복적이다. 베이컨과 자코메티가 결과적으로 밝히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이면이 아닐까.

전시를 마무리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잡은 공간은 두 작가의 작고 흐트러진 스튜디오에 대한 경험이었다. 자코메티의 23㎡(7평)짜리 스튜디오도 유명하지만, 베이컨의 스튜디오는 그 자체가 작품 같은 공간이다. 상하좌우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일로 범벅된 이 공간에 베이컨은 사람들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사후엔 런던의 소호에 콜로니라는 멤버십 클럽으로 운영되어 많은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가 아지트로 삼기도 했다.

 

[이지윤의 art TALK(9)] 제프 쿤스(JEFF KOONS) 홍콩 아트바젤에 온 컨템퍼러리 마스터

[이지윤의 art TALK(9)] 제프 쿤스(JEFF KOONS) 홍콩 아트바젤에 온 컨템퍼러리 마스터

지난 3월 말에 열린 홍콩 아트페어의 열기와 더불어, 현재 국제 시장에서 다시 더욱 중요한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제프 쿤스를 짚어보고자 한다. 현대미술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름이고, 사실 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유명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지난 90년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뉴욕의 앤디 워홀 이후의 또 새로운 셀레브리티 작가로 자리 매김했다.

제프 쿤스가 홍콩 아트페어에 왔다. 사실, 예전에는 작가들이 아트페어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나 느낌이 조금은 낯설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밀레니엄 이후 미술시장이 더욱 글로벌화 되면서 아트페어는 또 다른 패러다임을 갖게 되었다. 즉, 단지 페어를 아트를 사기 위해서만 방문하는 곳이 아닌, 세계 최고의 미술계 인사들이 모이는 중요한 미팅 장소이자, 작가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더 나아가 첨단 미술세계에 관한 중요한 담론이 논의되는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미술관의 디렉터나 큐레이터가 아트페어에 간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때로는 중요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가야만 하는 시대가 되기도 한 것이다. 혹자는 미술의 심각한 상업화와 화랑들의 기업화에 우려를 표하기도 할 만큼, 미래 어느 시점 이 시대를 뒤돌아보면 2018년 지금은 분명히 아트페어 시대 정점의 순간이다. 또 10년 전 당시 바젤 아트페어의 디렉터인 사무엘 켈러(Samuel Keller)가 매우 야심 차게 홍콩 로칼아트페어를 인수(2008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이 도래했다. 이제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공공연히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행사가 되었고, 올해는 32개국에서 아주 어렵게 선별되어 온 247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미술계의 큰 축제였다. 작품 가격도 놀랍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국제 중견 작가들의 작품가는 1억원을 훌쩍 넘었고,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은 오프닝 3시간 만에 370억원에 거래되는 등 그야말로 5일 만에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약 8만 명이 방문하는 이 행사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노 모델들과 함께 나체로 화보 제작하며 이름 알려

이런 행사에 미국의 데이비드 져너 갤러리(David Zwner Gallery)는 특별부스로 쿤스의 게이징 볼(Gazing Ball) 작품들과 대형 조각들을 소개했고, 제프 쿤스는 수려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페어에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와 함께 셀카를 찍었고, 서로서로 ‘쿤스가 홀에 나와 있어요’라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더군다나 야경이 아름다운 홍콩 케리호텔 루프탑에서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쿤스가 초청하는 파티를 기다리는 듯했다. 사실, 다른 유명한 작가들도 홍콩에 많이 와 있었기에, 매일 저녁 그들을 위한 수많은 멋진 파티가 열리고, 그러한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컬렉터가 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최근 아트페어의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쿤스를 2018년 홍콩에서 만난다는 건 좀 더 중요한 맥락이 있다. 그는 1992년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이라는 전시에서 포르노 모델과 같이 직접 나체의 모델로 나오는 대형 화보를 제작했다. 그는 아마도 20세기에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뒤집어 ‘파운틴(우물)’이라고 내놓고 전시한 것만큼이나 센세이션한 몇 안 되는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탐욕, 돈, 소름 돋음,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과, 심지어 문화의 추악함이 교차되는 다양한 주제의 물체들로 만든 조각을 선보이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셀레브리티와 같은 삶을 살았다. 쿤스의 아트는 마치 문화의 가장 추악하고 나쁜, 또는 낮은 가치를 찬양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예술이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는 탐욕, 부, 섹스 등 예술로 다루기 꺼리는 주제들을 솔직하게 다루며 매우 독특한 유머로 우리에게 친숙한 새로운 상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스는 그의 이름과 명성에 비해 1992년에 시카고 미술관에서 있었던 대규모 개인전 이후, 미국에서 이렇다 할 만한 전시가 없었다.

특히 그가 평생 살아온 뉴욕에서도 전시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증명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4년 전에 열린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회고전(June 27~October 19,2014)은 그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전시였다. 즉, 이제서야 그의 고집스러운 35년 작품 세계는 세계 최고의 마스터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휘트니 전시는 국제 미술계에서 그가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는 검증의 전시가 되었고, 프랑스 퐁피두(2015), 빌바오 구겐하임(2015)으로 순회하며, 이제 더욱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고, 중요한 현대미술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의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요소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영감받는 작품 세계

그렇다면 과연 그의 작품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주 가벼워 보이는 주제들, 특히 그가 2007년부터 10여 년간 만들고 있는 백화점 토끼, 가제, 수영장 튜브 등의 조각은 어떤 의미인가? 제프 쿤스의 레디메이드(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선정하여 작가가 작품으로 지칭하는 작품)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작품을 시작한 시카고대학에서의 만남들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제프 쿤스의 레디메이드는 뒤샹이 시작한 언어기호학적 레디메이드와 다른, ‘연역적 사고’가 연관된 레디메이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시카고미술대학에서 사사 받은 시카고 이미지스트라는 짐 너트(Jim Nutt), 에드 파스케(Ed Paschke), 로저 브라운(Roger Brown)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짐 너트는 그에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다양한 물건을 어떻게 발견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미술 이론의 모순된 생리들에 대한 비평적 사고를 길러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많은 작품의 영감과 살아 있는 동시대성이 ‘일상생활(everyday life)’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해준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는 사실 전혀 미술을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았다.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그는 ‘아트’라는 것은, 어떤 물체나 오브제가 아닌, 그 물질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각과 도전에 연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계속해서 자기만의 세계가 가지는 도상학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러한 오리지널 작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또 다른 그들만의 경험과 사고에 의거한 해석을 통해, ‘그들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작품을 만드는 주체자인 작가보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주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하고 새로운 미술 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에 그가 소개한 블루 크리스털 볼 작업은 그러한 면에서 지금까지의 그의 생각을 또 한번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에 홍콩에서 진행된 중요한 비평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영한다(reflect)’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모든 철학책을 읽어봐도,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어떤 시대든, 사고든 문화든, 어떤 것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볼의 표면은 바라보는 사람, 보이는 사람, 그 사람들의 주변 등 모든 것의 의미를 그 자체대로 만들어준다. 또 나는 늘 이 블루 크리스털 볼을 이용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 크리스털 볼은 내가 어릴때 살던 펜슬베이니아의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즉, 당시 독일 사람들이 많이 그곳으로 이주해 왔는데, 그들이 장식용으로 많이 가져왔었다. 어찌 보면, 이 블루볼은 16세기에 루드비히2세가 처음으로 베니스에서 가져다가 사용한 장식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많이 좋아했고, 보통 잔디밭에 근사한 공공조각으로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본인들도 좋지만, 아주 넓은 농가에 늘어놓은 이 큰 구슬 같은 조각은 오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아주 예쁘고, 도움을 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서펜타인 디렉터 한스 울리크, 2018년 3월)

“사람들과 함께하고 움직임 가능 한 작품 할 것”

이제 그렇게 논쟁의 대상이 었던 쿤스가 국제 미술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같은 시대에 목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리도 키치라고 말하던 어린아이들의 풍선, 튜브 같은 조각들이 당당히 미국과 유럽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의 소장품이 되어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생존 작가로 거의 100억대에 이르는 그의 시장가치에 대한 질문과 냉소적 비판은 여전하지만, 그야말로 작가가 믿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도전을 상당히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번에 보여준 신작인 공공 조각에 대해 쿤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기존의 정적인 조각작품들이 아닌, 더욱 사람들과 연계할 수 있고, 움직임이 가능한 공공미술의 성격이 큰 작품들이다.” 앞으로 현대미술 마스터로서 쿤스의 작품들을 더욱 기대해본다.

[이지윤의 art TALK(8)] 아트부산 2018 특별전-박은선 작가 카라라 대리석의 마스터

[이지윤의 art TALK(8)]  아트부산 2018 특별전-박은선 작가 카라라 대리석의 마스터 

1990년에 시작된 국제비엔날레의 열풍이 이젠 세계적으로 아트페어로 전환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예전에 컬렉터들이 열정과 안목을 가지고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좋은 전시를 감상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시대가 다소 ‘슬프게도’ 지나가고, 주요 작가들은 중요한 브랜드와 같이 유명해졌고, 관객들은 좀 더 편하게 한 장소에서 작품을 만나는 아트페어를 찾는 경향이 짙어졌다. 모두가 더욱 많은 정보를 갖게 되고 분주한 삶이 되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트부산 2018 특별전에서 만난 박은선 작가의 조각을 소개한다.

지난 4월 아트부산 2018 특별전에서 광장에 설치된 박은선 작가의 카라라 대리석 조각작품.

사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미술의 국제화에 한몫하고 아주 중요한 미술계의 행사로 자리 잡은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를 설립했다. 중요한 국제적 담론에 발맞추어 중요한 전시들을 진행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작가들도 중요한 큐레이터 미술관 디렉터와 만나면서 점차 국제화되었다. 또 이러한 환경은 한국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더욱 좋은 작가가 나올 수 있는 맥락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몇 가지 이유만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미술관의 쳬계화, 상업 화랑들의 전문화 등으로 이제 많은 한국 작가의 활동을 국제 미술계에서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필자도 지난 5년간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도 2012년에 시작한 아트부산(ART BUSAN) 페어를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서울의 KIAF도 최근 들어 많은 변화를 모색해가지만, 아트부산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매우 큰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페어가 열리는 곳은 단지 미술시장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부산은 그러 면에서 바다와 음식, 또 최근에 더욱 부상한 휼륭한 호텔들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사단 법인이 운영하는 페어와 지역 유지들이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매우 흥미로운 구조의 행사였다. 갤러리 전시들이 열리는 각각의 부스도 매우 세련돼, 함께 만난 외국 지인은 홍콩 바젤의 느낌이 난다고도 했다. 이러한 요소가 약 6만 명이라는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사실, 이번 페어는 각 부스들의 예술성이나 작지만 좋은 전시를 만들려는 갤러리들의 여러 가지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 매우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작가인 박은선 작가의 특별전이 주목할 만한 전시였다. 미술관 전시도 아닌 페어에서 대형 대리석 조각 8개를 광장에 설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다. 작품은 언제나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박은선 작가의 설치작품. 2016 피렌체 미켈란젤로광장. 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이탈리아에서 먼저 주목받은 조각가

2016 피렌체 미켈란젤로광장. / 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최근 들어 우리가 조금은 전통적이라고 말하는 석조각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현대미술이 매우 다양한 매체 중심과 대형 설치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지난 30년간 이탈리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박은선 작가는 이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로도 인정받는다. 필자가 3년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북촌에 올라가는 길에 처음 설치했던 작품이 박은선의 조각이었다. 또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출장을 다니면서 한국 큐레이터라고 하면, 자주 물어보는 한국 작가의 이름이 그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여 년간 언제나 작품으로만 만나던 작가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기회도 매우 의미 있었다.

2014 프랑스 라바울(La Baul) 도시야외조각전. / 사진:ⓒ박은선 작가

박은선 작가는 경희대 조소과,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원 졸업 후 이탈리아 중서부 해안가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피에트라산타는 작은 도시지만 카라라산에서 질 좋은 대리석을 구할 수 있기로 유명해 세계 각지에서 뛰어난 조각가와 석공들이 몰려드는 ‘조각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카라라 대리석이 유명한 이유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 ‘다비드상’이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최근에 데미안 허스트의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서 나온 고대 조각들도 모두 여기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질 좋은 이 대리석은 이미 로마 시대 때부터 예술가들이 알아보았다. 박은선 작가 역시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매료되었고, 생활고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에도 작업을 향한 열정은 쉽게 잠재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 공공미술 전시

2014 로마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Museo dei Pori Imperiali)의 트라야누스 시장. / 사진:ⓒ박은선 작가

그렇게 묵묵히 조각가의 길을 걸어온 박은선 작가의 작품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이었다. 그의 작품을 수집하겠다고 나타난 수집가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1997년 피에트라산타시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게 되면서 비로소 이탈리아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최근 전시 중 매우 놀랄 만한 멋진 전시는 2016년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 설치한 공공미술 작품이다. 이탈리아에서 이 광장의 의미는 르네상스 이후 가장 중요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이 역사적인 공간들은 그의 작품에 더욱 새로운 공간성과 시간성을 부여한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보다 이러한 역사적 유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맥락이 많은 곳에 놓인 그의 작품은 더욱 그 시대적 새로움의 조각언어를 더해주는 듯하다. 사실 작가들에게는 이렇게 중요한 유물들이 있는 건축과 작품들 옆에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2015-2017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 (갈릴레오 갈릴레이 국제공항, G.Galilei Airport) 설치됐던 작품. / 사진:ⓒ박은선 작가

특히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최고의 마스터 작가들이 다룬 같은 재료로, 그 장소에서 작품을 내보이는 것은 일련의 소리 없는 혁명이기도 하다. 사실, 재료비나 몸으로 해야 하는 작업의 양이 어마어마한 석조각은 이미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전통 미디엄을 통한 현대적 추상조각의 맥락을 계속 추구해가며 작업해왔다. 다른 추상조각을 작업한 많은 작가가 시도한 다양한 재료(나무, 석고, 실, 철 등의 미디엄)가 아닌, 이 카라라 대리석으로 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실험과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20세기 초 서양 여성 조각가인 바버라 헵워스는 조각의 재료가 되는 물질 사이를 통과하는 구멍 공간을 만들면서, 추상조각 안에서의 재현되는 공간과 시간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이러한 미니멀한 추상조각 안에서의 공간은 작품의 균형과 미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박은선 작가의 기둥들은 그러한 면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사실, 이렇게 무거운 재료인 대리석으로 5~10m에 이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균형과 조각이 위치하는 외부의 다양한 요소에 대한 고려는 거의 과학자와도 같은 수준의 계산과 측량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 긴장감 있는 조각의 균열들은 그의 미니멀한 조각에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물질성을 가져다준다. 그 공간으로 들어오는 빛, 공기, 소리들이 그 조각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유럽의 전통의 조각이나 아주 동양의 선적이고 단아한 미니멀한 예술성을 만들어낸 것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한 추상적 표현이 기하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 면, 큐브, 기둥 등 기본적인 구조로 나타나기에, 그 어떤 장식적인 조각과 함께 전시되어도 단단하게 설 수 있는 미학적 기준을 만들었다.

박은선 작가 / 사진:ⓒ박은선 작가

일련의 전시는 대부분 이탈리아의 중요한 공공장소에서 열렸다.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국제공항(갈릴레오 갈릴레이 국제공항), 프랑스 라바울과 스위스 루가노의 도시야외조각전, 룩셈부르크의 ‘La commune de Hesperange’ 공원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전시를 하였다.

발굴작업이 완성된, 예전 로마제국의 영화를 느낄 수 있는 포로 로마노와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한국 작가인 박은선의 조각은 매우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지윤의 art TALK(7)] ‘Charles1:King and Collector’ 전 4세기 만에 한자리에 모인 찰스 1세의 명작 컬렉션

[이지윤의 art TALK(7)] ‘Charles1:King and Collector’ 전 4세기 만에 한자리에 모인 찰스 1세의 명작 컬렉션 

런던에 있는 영국 최고 왕립미술학교인 로열 아카데미가 설립 250주년을 기념하며 의미 있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엔 역사적인 정치 사건들에 기인하여 숙명적으로 흩어진 한 영국 왕 찰스 1세 미술 컬렉션과 영국의 첫 포퓰리즘 혁명가 크롬웰의 개혁 정책과 함께 고찰해보고자 한다.

서양미술사를 연구하다 보면, 가장 흥미롭게 빠져드는 이야기 중 하나는 미술작품과 컬렉션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다. 특히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작가가 작업을 할 때, 다음엔 그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소유로 팔려 나갈 때, 마지막으로는 그 작품이 있어야 할 곳에 안착될 때다. 그런 맥락에서, 영국 왕 찰스 1세는 17세기에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및 북유럽 르네상스 최고의 명작들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모았던, 대단한 컬렉터였다.

사실상, 15~16세기 영국의 튜더 왕가는 미술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가문이었다. 강력한 군주 국가의 영향력을 시사하기 위해,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때도 그들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초상화 커미션 정도만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헨리 8세는 영국 전역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멋지게 그려 보내기 위해, 당시 신교적 입장을 함께하던, 북유럽 앤트워프 출신의 한스 홀바인을 궁정 화가로 초청했다. 그 이후, 영국이 유럽에서 최고의 예술적 리더십을 발휘한 업적으로 남길 만한 일이 있다면, 바로 영국 내전의 주인공인 찰스 1세가 수집한 유럽 최고의 명작으로 이루어진 미술 컬렉션이다.

찰스 왕세자는 왕위에 오르기 전인 1623년 마드리드를 방문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찰스 왕세자는 티치아노(Titian)와 베로네세(Veronese)의 작품을 포함해 많은 작품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학자와 같은 삶을 꿈꾸며 자신의 컬렉션을 구축할 의향이 있던 왕세자는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Mantua)의 공작이 축적한 당시 최고의 명망 있는 곤차가(Gonzaga) 컬렉션의 주요 작품을 인수했다. 당시에 이러한 거래를 도운 다니엘 니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딜러 역할을 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러한 단단한 당대의 마스터 피스들과 더불어 당시의 현대미술 작가인 안토니 반다이크를 영국으로 초청하여 중요한 초상 작품을 의뢰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성에 반다이크(Anthony Van Dyck) 및 ‘반다이크류’의 초상 작품들이 없는 곳이 없다 할 정도로, 영국 미술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는 유럽에 이러한 컬렉션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영국 귀족사회에도 왕과 경쟁할 만한, 영국 왕실 공작인 토머스 하워드(1586~1646), 아운델 백작, 조지 빌리어스(1592~1628) 등 여러 컬렉터가 있었다. 이러한 예술적 리더십에 관해 생각을 조금 더 해보자. 사실, 영국이 계몽주의 시대를 시작하며,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면서 동시에 유럽에서 최고로 리딩했던 것이 컬렉션 문화다. 그리고 1753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스 슬로운 경의 컬렉션에 힘입어 세계 최초의 퍼블릭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컬렉션 문화는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1744년 설립)와 크리스티(1778년 설립)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한 시대의 예술적 리더십은, 후대에 한 국가의 문화유산을 만드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영국 사람들은 선대가 만들어놓은 문화관광 콘텐트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세계적인 경매회사도 런던에서 시작해

하지만 그러한 미술 컬렉션이 그저 순탄하게 보전되고 인정받으면서 지켜지진 못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거니와, 시대적 가치와 정치적 시각에 따라서, 예술품들도 달리 해석되고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찰스 1세의 컬렉션은 연이은 영국 내전에서 당시 군부의 개혁가인 올리버 크롬웰이 승리하면서 모두 해체되었다. 즉, 1649년 왕의 처형 이후 그의 소장품들은 크롬웰에 의해 모두 전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 크롬웰은 의회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거두어들인 왕의 세금 환수와, 이 예술품을 판매해 확보한 재정으로 더욱 강력한 철기군에 기반한 군부정권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10년이 지난 후 찰스 2세가 다시 왕정복고에 성공하여, 크롬웰 공화정을 극복하며 아버지의 작품들을 회수하였지만, 여전히 그의 대부분 작품은 유럽 전역에 남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방문해서 보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찰스 1세의 총 2000점에 이르는 막대한 컬렉션 중 140개만 소개되었고, 현재 여왕의 컬렉션으로 남아 있어 본 전시에 대여해준 작품은 총 전시품 중 80여 개밖에 되지 않는다. 스페인은 티치아노가 그린 실물 크기의 ‘찰스 5세 초상’을 획득했다. 프랑스는 ‘엠마오의 만찬’을 가졌다. 다른 페인팅 작품들은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마침내 뉴욕에 도달했는데, 반다이크의 작품은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으며 브뤼헐(Bruegel)의 작품은 뉴욕의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으로 소장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또 생각해야 할 부분이 올리버 크롬웰의 정책이다. 사실 영국에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크롬웰의 커몬웰스(Commonwealth)정책이나, 그의 외무상으로 일하며 10년간 그의 정치적 사상의 근간을 만들어준『실락원』의 저자 존 밀턴(John Milton)에 대한 국민의 큰 존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두 번의 영국내전을 통해, 찰스 1세를 처형하여 왕정을 붕괴시키고, 첫 공화당을 시작하여 민주주의적 기틀을 더욱 공고히 한 사람이다. 또 찰스 1세의 카톨릭적 교황제 우대정책을 하는 영국 성공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새로운 성서주의에 입각한 청교도적이며 프로테스탄트적 성공회로의 변화를 추구한 대개혁가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선 일반 시민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중산층 시민에게 보통선거를 시작하는 등, 중상주의 정책을 시작한 매우 건강한 포퓰리즘 정치를 시도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많은 작품을 모두 팔아버리고, 예술적 가치에 대한 보전이나 의미를 지키지는 않았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대중에게 이러한 엘리트적인 예술품은 필요하지 않다는 게 혁명가들의 입장이었고, 과감히 그 모든 예술품을 남김없이 팔아버렸다. 과연 이처럼 훌륭한 혁명가이고 왕정복고 이후에도 더욱 민주적 기반을 닦은 크롬웰의 정책을 예술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오랜 시간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가 유럽 미술관들을 방문할 때, 가끔 운 좋게 만나는 과거 대가들의 전시들, 가령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등의 전시들을 현시대에 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전시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과거의 명작들을 보면서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적 가치에 찬사만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수많은 미술사가와 큐레이터들이 5~6년의 시간을 들이고, 다른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많은 보험 비용을 지불하면서 대여해 올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유럽에서의 예술적 리더십 되돌아봐

전시의 핵심은 안토니 반다이크가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맡은 주요한 커미션 작업인 왕과 왕실의 기념비적인 초상화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을 시대순이나 주제별로 전시한 것이 아닌, 찰스 1세의 비전이 담긴 컬렉터로서의 모습, 예술 후원자로서 선구적으로 발굴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이 부각된 전시였다. 어떤 면에선, 다시 옛 왕들의 문화적인 업적과 그들이 시작한 선구적인 예술적 리더십을 말하고 있다. 그 유명한 루벤스의 ‘전쟁의 신 마스에게서 평화를 지키는 미네르바 여신(Peace and War, 1629~30)’이라든지, 반다이크의 ‘큐피드와 프시케(1639~40, Royal Collection) 등도 모두 찰스 1세의 커미션 작품이었다. 그리고 후대에 더욱 중요하게 인정받는 헨리에타 마리아 여왕의 후원을 받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와 귀도 레니(Guido Reni) 등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내용을 방증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시 자국주의,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포퓰리즘의 시대로 들어가는 시점이다. 이럴 때 본 [Charles1:King and Collector] 전시는 다시 한번, 250년 전통의 영국 로열 아카데미의 위상을 재확인하며, 브렉시트하는 영국이 유럽에서의 예술적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다소 옹호하고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혁명가 크롬웰에 의해 사라졌던 작품들이 런던으로 돌아온 것을 영국인은 매우 뭉클하게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영국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었던 것이며, 다시 한번 예술의 가치와 대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전시인 것 같다. 전시는 4월 15일까지다.

[이지윤의 art TALK(6)]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 건물을 캔버스 삼아 패턴을 입히다.

[이지윤의 art TALK(6)]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 건물을 캔버스 삼아 패턴을 입히다.

이번 호에는 영국 현대미술 작가 리처드 우즈를 소개하고자 한다. 리처드는 가장 오래된 미술 기법 중 하나인 나무판화를 사용한다. 즉, 판화를 한 장 한 장 찍어내 건물 외벽, 인테리어 등에 패턴을 부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올해 2월을 달군 평창올림픽 알파인 경기장 숙소로 사용된, 현대산업개발의 파크로쉬 호텔 아트프로젝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Richard Woods, PARK ROCHE Lobby, 2018 ⓒPARK ROCHE Resort & Wellness

리처드 우즈는 자작나무와 돌 패턴을 개발해 파크로쉬 리조트 곳곳에 예술작품 신작을 선보였다. 큐레이팅 사무소 ‘숨’과 HDC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예술적 숨결을 리조트 전체에 녹여냈다. 특히 로비에 전시된 ‘실버 버치’ 작품은 리처드 우즈가 정선으로 가는 여정 중 자작나무 숲의 풍경을 포착해 패턴화한 작품이다.

리처드 우즈는 영국 중부의 체스터 출신으로 90년대 초,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학교(Slade School of fine art)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과 디자인의 통섭적 영역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는 현대미술작가다. 영국의 1990년대는 데미안 허스트와 같이 새롭고 젊은, 소위 말하는 YBAs(Young British Artists)라고 하는 작가군들의 등장을 보았다. 한편 디자인과 미술의 영역을 드나들며 활동하는 작가 중 하나가 리처드 우즈다. 그는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하여, 흥미로운 커미션 작품을 하면서 세계적인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런던의 모던아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으로 시작한 그는, 2002년 전설과도 같이 세계적인 작가들을 발굴한 뉴욕 첼시의 다이치 프로젝트에서 전시 초청을 받는다.

당시 다이치 프로젝트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의 제프리 다이치가 씨티뱅크 컬렉션 디렉터로 10년간 일하고 나와서 오픈한 프로젝트 갤러리로 매우 중요한 전시를 선보여 주목받는 갤러리였다. (제프리 다이치는 이후 LA 시립미술관의 디렉터가 된다.) 야요이 쿠사마의 대형 호박조각 하나가 창고에 놓여 보여지는 설치작업, 무명의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설치와 사진, 매슈 바니의 영상작품 등, 지금 세계 최고가 된 작가들을 소개한 곳이었다. 리처드는 다이치 프로젝트가 그의 작가적 여정에서 중요한 시작을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뉴욕은 당시 런던보다도 새로운 실험적 작품을 지원하는 컬렉터 군단이 많은 시점이라, 가장 중요한 모멘텀이 된 첫 커미션 작품을 받는다. 애덤 린데만 집이 그것이다.

SUPER TUDOR PROJECT / Richard Woods, Super Tudor, Collection Adam Lindemann, Woodstock, New York, 2003 ⓒRichard Woods

세계적인 컬렉터로 『현대미술컬렉팅 하기(Collect Contemporary Art)』 저자이기도 한 애덤은 자신의 별장을 리처드에게 기증한다. 리처드는 ‘슈퍼 튜더’라는 제목으로 뉴욕 근교의 별장을 15세기 영국의 튜더 가문의 멋진 블랙&화이트 패널로 연결된 집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만든다.

Richard Woods, Wall and Door and Roof, New York City Hall, / 2009 ⓒRichard Woods 리처드 우즈는 뉴욕의 시청 공원(City Hall Park)에서 공공미술 커미션 작품을 선보였다. 공원 입구에 있는 경비초소를 빨간색 벽돌 무늬의 MDF를 쌓아 올려 외벽 전체를 뒤덮었다.

리처드의 기본적인 미술 언어는 가장 오래된 미술 기법 중 하나인, 목판(wood block)을 제작해 찍어내는 나무판화다. 즉, 판화를 한 장 한 장 찍어내 건물 외벽, 인테리어 등의 건축적 면들에 부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NewBUILD, New College, Oxford, 2005

리처드 우즈가 런던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주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 붉은 벽돌 패턴으로 건물의 외벽을 감싼 여러 설치작업 중 하나이다. 14세기에 실제 목욕탕으로도 사용되었던 이 오랜 건축물은 구조에 대한 인식을 바꾸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레고’와 같은 장난감 집으로 변해버렸다. 

리처드 작품의 형식은 공공미술영역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윌리엄 모리스는 영국의 19세기 텍스타일 디자이너, 미술가, 시인, 사회운동가로서 전통 미술을 지키며 예술의 공공성을 주창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 리처드의 작품도 영국 전통적 문양과 패턴 작품이 많이 사용되고, 건축과 연계된 공공성, 벽지 같은 느낌으로 보여지는 연출 등은 윌리엄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공미술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닮아

Richard Woods at Lever House, New York, 2010

뉴욕에 있는 레버하우스는 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모더니즘 형식의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리처드 우즈는 이 건물의 로비와 야외 공간의 일부를 작가 특유의 패턴으로 감싸 업무를 보며 바삐 지나다니는 뉴요커들의 마음을 따스하고 푸근한 감성으로 물들였다. 리처드 우즈는 레버 기업이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부터 예술 작품을 소장해왔다는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며 당시 회사가 활발히 수집했던 화려한 무늬의 장식용 패턴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리처드는 말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우 존경하는 작가고 그의 정신에는 매우 동의합니다. 하지만 난 영국의 전통을 고수하거나 어떤 로맨틱한 엘리트 미술을 지향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난 미술 안에서 ‘크라프트(공예)’라고 하는 면에 심취해 있고 손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미술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공예적 미술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글로벌 문화가 남긴 무명 예술가들의 작품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즉 리처드는 이 시대 ‘컨템퍼러리’가 무엇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을 통해, 플라스틱적인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현 글로벌 동시대적인 장식미술적 패턴과 많은 상업 로고를 주제로 작품 세계를 풀어간다. 어떤 면에서 현대판 민화와 같은 작업을 한다고 할까? 요즘 현대미술처럼 추상적인 개념미술의 시대에서, 이렇게 손맛이 물씬 나는 목판화 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제작돼 대형 건축과 통섭적인 협업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를 찾아가는 듯하다.

Richard Woods, Logo Series ⓒRichard Woods

패턴 가격이 작품 가격이 되다, ‘LOGO PRICE’

Richard Woods, PARK ROCHE Outdoor Pool, 2018 ⓒJiyoon Lee

리처드의 영구/반영구 설치 작품은 어떻게 판매가 될까. 리처드도 이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작품을 구입할 때는 보통 ‘커미션을 한다’는 표현을 쓴다. 즉 있는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만을 위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 장소(site)라고 하는 곳이, 예술품으로 인해서 특정 장소(place)가 되는 것이다. 리처드는 작품의 이미지 패턴이 나오는 것을 LOGO라는 이름으로, 패턴가격을 작품 가격으로 정했다. 그리고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공간이 크든 작든 커미셔너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장소에 설치되었던 작품을 나중에 없애게 되면 그 패턴은 컬렉터가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재료비만 추가하여 다른 장소에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설치미술을 위한 패턴 개념은, 미국 작가 솔 르윗(Sol Lewit)과 같이 ‘어떤 크기의 공간에 어떻게 작품을 그린다’라는 방법을 적어준 개념 드로잉으로 생각할 수 있다.

2018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 만든 파크로쉬 리조트 호텔 프로젝트는 작가가 지금까지 했던 많은 국제 커미션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었다. 특별히 이 장소가 동계올림픽에서 중요한 알파인 스키 경기장을 운영하는 호텔로 사용된다는 데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다. 필자와도 2003년 런던에서부터 함께 많은 전시를 했던 작가라 1년이라는 짧은 프로젝트 준비 기간에도 빠른 진행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그는 정선 스키장 주변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드로잉을 하며 개념을 만들어갔다.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건물을 위한 작품 드로잉은 어렵지만 한편으론 작가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정선에서 흰색 자작나무 숲과 숙암리라는 지역 이름이 주는 지점에서 백색 자작나무와 돌을 메인 주제로 잡았다. 원근법 원리에서 나오는 거리감을 돌이나 자작나무의 패턴으로 풀었다. 깊은 자작나무 곳에서 멀리 보여지는 풍경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한 손에 잡히는 풍경(Handheld landscape)’이라 이름 붙인 페인팅을 25개를 제작하고, 여러 가지 크기로 만들어진, 스톤 패턴들이 어우러진 세라믹을 제작하여 수영장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리처드 우즈는 목판화 기법으로 더욱 다양한 물질에 시도를 하고 있다. 알루미늄 판, 또 다른 신소재 재료 등을 연구하며,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시간 속에, 꾸준히 런던 스튜디오에 쌓여가는 우드블록 목각을 깎고 있는 모습에서 또 한 명의 진정한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지윤의 art TALK(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김종영_붓으로 조각하다’ 전

[이지윤의 art TALK(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김종영_붓으로 조각하다’ 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지난번 중국의 근대 동양화의 대가인 치바이스(제백석) 전시에 이어 매우 중요한 전시를 개최했다. 한국의 모던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1915~1981) 작품의 전시가 그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중 한 분의 전시를 서예박물관에서 한다는 것, ‘붓으로 조각하다’라는 전시 제목 또한 큐레이터의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제목이었다.

김종영, 작품 79-4, 1979 ⓒJiyoon Lee

최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전당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좋은 전시회가 줄지어 열리며 전시 프로그램이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도 많을뿐더러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높아지고 있다. 여러 모임 자리에서도 종종 어느 전시를 봤냐고 서로 담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시작한 젊은 영국작가 발굴상인 터너 상(Turner Prize)이 활발히 회자되던 런던의 1990년대 초가 생각난다. 특히 예술의전당은 더욱 일반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들을 유치하기에 국공립 현대미술관이 더욱 학제적 연구와 실험적 전시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2월호 아트톡은 예술의전당에 있는 숨어있는 멋진 한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그것은 서예박물관이다. 예술의전당 가장 높은 층에 올라가면 있는 음악당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물론 음악당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서예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요즘 세대 젊은 사람들에게는 ‘서예’라는 말 자체가 나와는 거리 먼 당신처럼 들릴만큼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장르이기는 하다. 하지만 서예는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는 기본 관념과 사고에 내재해 있는 중요한 DNA와도 같은 것이며, 동아시아 예술인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놓고 다시 한 번 멈춰 서서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종영, 작품 73-1, 1973 ⓒ김종영미술관

‘붓으로 조각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 우선 김종영 작가는 한국의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학장이신 장발 선생님과 함께 만드시고, 평생 교육자로, 작가로 살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을 입문하는 사람이면 그분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먼저 모던 추상 조각을 시작한 매우 독보적인 분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분이 일찍이 도쿄유학 시절 서양 모던 조각의 언어를 공부하는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한국의 ‘서’ ‘화’ ‘시’를 연구한 최고의 선비적 태도를 가진 작가인 김종영을 볼 수 있는 전시인 것이다. 즉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를 섭렵하고, 절대세계에 대한 통찰을 추상적으로 조형화한 작가라 할까? 동양의 필묵공동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서예에 대한 깊은 고찰과 연구자인 분이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그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서구현대를 녹여내 동서예술이 나아갈 방향 제시

김종영, 전설, 1958 ⓒJiyoon Lee

그러한 김종영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집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영남 사대부 가문인 김해 김씨 22대 손인 성재 김기호의 오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아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대궐’이 바로 경남 창원 소답동에 있는 김종영의 생가다. 당시 그 어떤 작가들에 비해 그는 가풍을 통해서 조선 사대부의 학예 전통을 익힐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 그 이후 서동진·윤희순·오지호 등의 미술가들을 배출한 민족사학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며, 1932년에 동아일보 주최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 작품전람회]에서 안진경체로 일등상을 받으며 예술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이후 도쿄미술학부 조각부에서 공부하며 브루델, 마이욜, 브랑쿠지 같은 서구 조각가들의 작품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즉 서예적 훈련과 이해에 근간한 정서에 서구 조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작품 세계를 키워갔다.

사실 우리에게는 김종영의 조각은 공공 기념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 국민성금을 모아 탑골 공원에 건립한 [3·1독립선언기념탑]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들어가서 평생 미술학도를 키워내는 중요한 미술 교육인이기도 하였다. 또한 작가로서도 가장 최초의 한국인 작가로 1963년에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린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공모전에 출품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공모전에 입선한 작가이기도 하다. 당시 테이트 전시에 참여한 작가리스트를 보면 한 세기 당대 최고 작가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김종영, 꿈, 1958 ⓒJiyoon Lee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작가인 김종영 전시이지만,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면서 매우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볼 수 있다. 즉 조각 이외에도 예술의전당과 김종영미술관이 서화, 서예, 드로잉, 사진과 유품 등 180여 점이 함께 있는 전시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고, 놀랍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김종영이 가장 애장했던 추사 김정희의 [완당집고첩 阮堂執古帖]을 볼 수 있다는 것과 또한 ‘불각(不刻, 조각을 하지 않음)’의 미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조각가가 조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매우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예술의전당 전경 사진 ⓒJiyoon Lee

특유의 숙달되고 정교한 기법이 자신의 예술 활동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각 자체의 물질성과 기운,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장 존경한 추사 김정희 선생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겸재 정선의 그림을 탁본하는 수련과 같은 훈련 과정을 거쳐 그가 추구하는 추상의 단계를 추구했다는 것이 그의 예술이 독창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서예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이동국 부장이 도록에 쓴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종영 작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20세기 서화(書畵) 미술로의 대전환기에 사의(寫意)라는 동양전통으로 추상(抽象)이라는 서구현대를 녹여냄으로써 동서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실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김종영 예술을 통해서 과연 한국 현대미술이 앞으로 더욱 고민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해준다. 그는 반세기 전부터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독창적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뇌 속에서 작업을 하며, 후학들을 키워왔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미술은 어떠한지. 글로벌화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더욱 우리만이 다를 수 있는, 차별화 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어디서 찾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김종영, 『장자(莊子)』「천하(天下)」편 판천지지미, 예술의전당 전경 사진 ⓒJiyoon Lee 1967 ⓒ김종영미술관

2019년 LA에 있는 미국 서부의 최고 미술관인 라크마 미술관은 현재 한국 ‘서예(Calligraphy)’ 대규모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책임을 맡은 미국 큐레이터들은 벌써 3년째 한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한국 서예가들과 서화들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미술시장의 현장에서 중국은 자국 차바이스를 1000억원이 넘는 최고의 작가로 세계시장에 자국 작가의 가치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그러한 면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국가의 대표 미술을 컬렉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예를 연구하는 책임 큐레이터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의 추상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김종영 선생님의 노력과 그의 비전은 더욱 연구돼야 하며, 우리 현대미술이 더욱 추구하고 찾아야 할 독창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지윤의 art TALK(4)] 실존적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아주 집요한 관찰의 리얼리티 조각가

[이지윤의 art TALK(4)] 실존적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아주 집요한 관찰의 리얼리티 조각가

최근 세계적으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는 현대조각의 거장 작가가 있다. 2016년부터 작고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로 기획되어, 전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이 앞을 다투어서 기획하고 있는 작가는 알베르티 자코메티이다. 2016년 뉴욕의 구겐하임에서부터 시작하여, 상하이의 유즈 미술관, 2017년 동경의 신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이 연이어 큰 전시를 기획 중이다. 이번 2018년 1월의 아트톡은 자코메티 재단과 함께 기획되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본 전시를 소개한다.

작업실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아마도 자코메티의 조각은 그의 독창적 예술성과 천재성으로 인해 최대의 찬사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현대미술이라는 점도 그러한 작품에 대한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드는 것 같다. 2010년 런던 경매에서 1200억원(1억400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하더니, 2015년 1600억원(1억413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언젠가 1000억원대의 피카소 가격을 이겼다. 매우 섬세한 작품이기에, 운송이나 보험이 많이 힘들어서 이렇게 대규모의 전시를 살면서 한번 본다는 것 또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자크뒤팽_캔버스유화_1965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자코메티는 스위스 태생으로 20세 이후 파리에서 활동하던 작가이다. 1901년 태어나 1966년까지 짧은 인생을 산 천재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미술사를 보면 놀랍게도 시대가 작가를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떤 변화와 혁명의 시대는 늘 대단한 작가들을 낳았다. 20세기가 그 어떤 시기보다 많은 작가를 배출했고, 미술이라는 개념이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면, 분명 20세기라는 시간은 인간사에서 매우 특별하게 많은 가치와 패러다임이 변한 시대임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리가 지난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가져올 4차산업에 대한 질문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보다, 아마도 19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와 놀라움, 나아가선 상당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강대국들의 형성과 새로운 제국주의에 의한 제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과 그 시대를 살아낸 그 어떤 의식 있는 예술가라면 도대체 그러한 시대에 그들이 어떤 예술이란 것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은 쉬지 않고 했으리라. 길거리에는 발에 치이 듯 굴러다니는 형제, 이웃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예술가들은 그들이 살아내는 예술이 어떤 인생과 존재하는 진리를 찾으려는 투쟁적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20세기와 함께 태어나서, 미술 조각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발버둥을 친 작가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디에고 두상, 1937년경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그는 당시 최고의 조각가다. 프랑스에서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댕의 남성적이고 감정 표현을 담고 있는 조각과는 매우 다른, 가느다랗고 길게 늘어진 인체를 제작한 조각을 보여준다.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적 연구과 접근이 그의 조각을 당시의 로댕과 매우 차별화하는 시작을 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의 조각은 아주 집요한 ‘관찰’에서 시작된 새로운 리얼리티 구축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자코메티의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손이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 대상을 계속해서 매만지고 다듬어 가면서 그 대상을 구현해 내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한다. 어릴 때부터 세잔을 아주 존경한 자코메티였기에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모방을 기본으로 시작하는 태도는 매우 오랫동안 자코메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글쟁이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 아네트 실물 조각상, 1954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그는 또한 상당한 문학가였다. 모든 작품을 할 때마다 본인의 작품에 대한 글을 남겼고, 당시 최고의 철학가와 문학가들과의 교류도 매우 활발하였다.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은, 중요한 작가들 옆에는 동시대 최고의 철학가나 문인들이 함께 있었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즘 얘기하는 통섭(inter-deciplinary)에 대한 맥락도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의 곁에는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있었다. 그는 1926년 파리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평생 그와 함께하고 논쟁하고 살았던 초현실주의 설립자인 앙드레 브루통, 사르트르-시몬드 보봐르 커플, 철학가 바타이유와 교류했다. 이런 만남이 그의 작업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근간이 된 것은 물론이다. 1948년엔 사르트르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서 온 편지라는 글’을 소개하는 문학 행사를 열기도 했다. 또한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사무엘 베케트와의 인연으로 그의 연극 공연인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도 만들기도 하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업실에 앉아있는 아네트, 1960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자코메티는 1934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줄리안 레비화랑에서 할 만큼, 좋은 시작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33세에 불과한 자코메티가 뉴욕에서 당시 파리의 피에르 콜 갤러리만큼의 명성을 갖는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그의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은 국제 미술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평생 딜러이자 파트너는 피에르 마티스 였다. 사실 이러한 상업적 꾸준한 지원이, 그가 그만의 언어를 구축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청동작품 제작에 투자를 하고, 파리의 매그 갤러리와도 계약을 맺고 더욱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성공이 그의 삶의 방식을 전혀 바꾸지 않았고, 그는 매우 검소하고 한결같았다. 그는 금전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파리 몽파르나스 아폴리트맹드롱가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평생을 보냈고, 셀렉트 카페 또는 쿠폴 카페에서 늘 식사를 하며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단지 치열하게 모델과의 집요한 싸움에 전념했다. 사실 모델을 놓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를 우리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는 평생 몇 안 되는 모델과 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 조각은 그의 동생 디에고(Diego Giacometti)가, 또 여성모델은 그의 아내인 아네트 암(Anette Am)이 맡았다. 그들은 하루에도 5~6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서 그의 작업 대상이 되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남자, 1960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본 전시에서 많이 소개되는 자코메티의 후기 작품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사물과 인물을 자신만이 인지하고 보이는 대로 재현하기 원했기 때문에, 대상의 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지 작품의 대상이 모델뿐만 아닌 그 모델이 있는 공간과 주변 사물과 맺는 관계들까지도 시각화하려는 것을 추구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조각해도 그의 또는 그녀의 영혼이나 느낌, 분위기, 기운까지도 함께 표현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회화 작품에서 흔적이 뚜렷했다. 마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멀리 있는 모델의 대상과 주변의 공간, 나중에는 자유라 불리는 회색계열로만 만들어지는 회화 작업이 이러한 일련의 갈구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1955년 구겐하임 대규모 회고전

작업실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자코메티는 1966년 심장병으로 죽기 전 약 10년 동안 작가로서 매우 성공적인 작품활동과 전시를 했다. 1955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1956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한 기념비적인 여인상을 제작한다. 인간의 크기보다 더 큰 작품들도 시작했다. 1965년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면서 그의 국제적 명성은 더욱 치솟았다. 당시 중견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였을 것 같다. 우리가 요즘 방문하는 많은 해외 미술관에서 만나는 자코메티의 대형 작품들은 대다수 이 시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이 시점에서 자코메티 파운데이션이 만들어진 역사를 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코메티의 가장 중요한 컬렉터는 데이비드 톰슨이라는 미국 피츠버그의 강철업계 거물이다. 미술은 세 번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처음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다음은 컬렉터가 구입 할 때, 마지막은 그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질 때이다. 그가 직접 미술관을 만들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당시 친구인 한스 베츨러와 에른스트 다니엘러가 화상과 함께 진행한 시민운동으로 자금이 모아졌고, 1965년 알레르토 자코메티 파운데이션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그의 작품들은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 하우스, 바젤의 쿤스트 뮤지엄, 빈터투어의 쿤스트 뮤지엄 등 세 곳에 둥지를 틀었다. 자코메티는 이렇게 자신의 파운데이션이 만들어지고 안착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1966년 6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첨예하고 실존적 경험이었던 제1, 2차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런 시대상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만의 독특한 질문과 사색을 하게 하는 토양이 됐다. 예술의 본질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탐구라면, 그는 인류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의 교류 과정을 통해 그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했고, 결국 새로운 조각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첨예하고 실존적 경험이었던 제1, 2차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런 시대상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만의 독특한 질문과 사색을 하게 하는 토양이 됐다. 예술의 본질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탐구라면, 그는 인류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의 교류 과정을 통해 그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했고, 결국 새로운 조각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자켓입은 남자, 1953 © Alberto Giacometti Estate / SACK, Seoul, 2017

 

[이지윤의 art TALK(3)] 영화의 도시에서 미술의 도시로 LA의 ART FEVER

[이지윤의 art TALK(3)]  영화의 도시에서 미술의 도시로 LA의 ART FEVER

Michael Heizer, Levitatated Mass, 2012, LACMA LA ⓒ Jiyoon Lee [부유하는 물질], 라크마. 100마일이 떨어진 유루파 벨리에서 가져온 340t 돌을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듯 설치했다.

세계 미술시장은 2016년 아트바젤의 마켓리포트가 말하듯, 약 60조원(USD 56.6 million)에 달하며 상당한 규모의 산업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 중국을 필두로 하여 지난 10년간 아시아가 당당히 글로벌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 시점. 중요한 글로컬 아트존들의 형성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그 지역 중 하나로 눈부시게 두각을 내보이는 장소가 현재 바로 ‘로스엔젤레스’다.

이러한 큰 변화의 중심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인 라크마(LACMA_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의 움직임이 매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세기를 생각해 볼 때, 1934년 뉴욕 MoMA가 생기면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이후 1979년 퐁피두 미술관, 2000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순서로 미술계의 헤게모니는 미술관과 함께 성장하였다. 그만큼 공공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은 한 나라의 미술을 넘어서는 글로벌 문화경쟁력을 갖는다. 2006년 라크마는 전격적으로 뉴욕의 디아.비콘(Dia.Beacon) 뮤지엄을 기가 막히게 만들고 성공시킨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 관장을 영입했다. 고반 관장은 1988년 토마스 커렌 관장이 구겐하임으로 부임하면서, 25세 청년을 부관장으로 지명하여 미술계를 놀라게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커렌 관장과 함께 빌바오, 베니스, 프랑크프루트 등의 놀라운 글로벌 구겐하임 프로젝트를 함께 성공시켰다.

Chris Burden, Urban ilght, 2008, Lacma LA 크리스 버든, [어반라이트], 2008

라크마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는 LA 출신 작가들과 커미션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 광장을 바꾸었다. 크리스 버든은 202개의 빈티지 스트리트 램프를 모아서 ‘어반 라이트’라는 LA 흥취가 물씬 나는 작업을 설치했고, 바바라 크루거는 ‘무제(Untitled)’라는 벽 라이트 작업을, 로버트 어윈은 ‘원초적 팜트리’란 작품으로 미술관의 광장을 멋진 야자수 가든으로 변화시켰다. 거기에 정말 놀라운 규모의 작품은 마이클 하이져 건축가의 ‘부유하는 물질(Levitated Mass)’이라는 작업이다. 100마일이 떨어진 유루파 벨리에서 가져온 340t의 돌이 마치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작품을 설치했다. 심지어 라크마의 로고는 LA 출신으로 미국의 살아 있는 중요한 작가인 존 발데사리가 만들었다.

라크마(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오른쪽부터)과 필자, 스티브 리틀 수석 큐레이터.

한국과 중요하게 연계될 라크마(LACMA)

UCLA HAMMER MUSEUM. UCLA 해머미술관은 1990년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 페르롤리엄 사장 아만드 해머가 약 3000억원에 상당하는 개인 수집품을 전시하고자 개관했다.

지난 10년간의 준비는 미래의 라크마를 새로 다지는 초석이 되었다. 본 프로젝트는 LA시민들의 마음을 얻었고, 미술관을 가보고 싶은 장소로 바꾸었다. 관람객이 60만에서 160만으로 변하는 데는 모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에, 라크마를 이 LA 변화의 중심에 중요한 기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적 건축가인 피터 줌터를 초청하여 새로운 마스터 플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1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본 프로젝트에 고반 관장은 3000억 원의 펀드 모금에 성공했다. 이제 2018년 기공하여 2023년 완공될 새로운 라크마는 새로이 시작한다. 이정도 되면, 미술관 관장이 10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해도 사람들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라크마는 앞으로 한국과도 매우 중요한 연계성을 가질 중요한 미국 미술관이다. 우리의 현대 역사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는 장소이며 LA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해외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또한, 2014년부터 10년간의 계약으로 시작된 현대 모터스 미술 후원 프로젝트에 따라 2019년 한국의 서예작품으로 대규모 전시도 준비 중이다.

UCLA HAMMER, LA ⓒ Jiyoon Lee UCLA 해머 미술관 입구.

1965년 개관한 이 미술관 하나도 이렇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나갈 수 있기 위해서 지난 10년간의 시간이 필요로 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매우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은 최근 하루아침에 뮤지엄이 하나씩 탄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뮤지엄들이 연일 만들어지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급행열차의 프리미엄 비용도 열심히 내고 있다.

즉, 문화나 예술을 담는 일들이 다른 그 어떤 분야들과 다른 점은 ‘절대적 시간’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크마의 경우도 뛰어난 관장의 리더십은 미술관 내부조직과 소통하고, 시민들은 물론 더 나아가 모든 재정을 책임지는 지방정부나 보드멤버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10년이란 아주 적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Robert Therrien, Under the Table, 1994, The Broad, LA Jiyoon Lee 로버트 테리엔, [Under the Table], 1994.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 기획한 UCLA 해머미술관

The Broad, LA ⓒ Jiyoon Lee 더 브로드 뮤지엄 외관. 엘리 & 에디스 브로드 부부가 세운 컨템퍼러리 미술관. 2015년 9월 개관 이래 160만 명 이상의 관람자가 방문했다.

이런 맥락에서 매우 감동적인 전시를 하나 봤다. UCLA 해머미술관은 1990년에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사장을 지낸 아만드 해머가 개관했다. UCLA 해머미술관에서 기획한 ‘비평적 여인: Critical Woman’이라는 전시로, 미술사에서 거의 조명되지 못한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다. 본 전시는 2명의 큐레이터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연구해 기획했는데, 하나의 역사적인 중요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10년간을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것에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그지없이 부러웠다. 그러한 기관의 장기적 연구에 대한 지원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장을 함께 동행해준 뮤지엄의 보드멤버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어렵게 구한 작품들과 자료들을 자신들은 본격적으로 뮤지엄 소장으로 구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여성 작가들의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도 자신들이 지원하는 뮤지엄의 의미를 더욱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LA가 공공미술관과 구별되는 기업이 주도하는 또 다른 멋진 필란트로피스트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자선 및 기부와 구별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ie)라는 의미는 개인들의 공적 목적을 가진 기여나 기부, 특히 인문학·예술·자연과학 등의 오랜 기간 지원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을 후원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이러한 필란트로피스트 정신이 LA에도 있다. 중요한 기업가들의 문화적 리더십이 그것이다. 앞서 설명한 해머미술관도 기업인이 설립한 뮤지엄이지만, LA가 이렇게 미술과 문화로 중요한 역할을 한 데에는 게티뮤지엄과 게티 인스티튜트, 2015년에 개관한 엘리 브로드 미술관이 그 이유이다.

The Broad Museum, LA ⓒ Jiyoon Lee 더 브로드 뮤지엄 전시관 내부

각 뮤지엄마다 그 내용과 특징이 모두 전략적으로 다르고 차별화되어 운영된다는 점이 이 LA라는 도시에 서로 다른 시너지를 준다는 점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디렉터, 아니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게티 장학금은 가장 중요한 장학금이기도 하거니와 아주 단기간 연구를 위한 지원금 또한 효율적으로 운영되기에 미국에 중요한 미술 전문인들을 육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필자가 방문했던 11월 LA는 퍼시픽 스탠다드 타임(Pacific Standard Time) 페스티벌을 통해, LA와 라틴아메리카, 라티노 문화의 경계를 연결하는 대대적인 문화행사를 치러 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도 약 70개의 국공립, 사립기관들이 참여하는 행사였고, 이 또한 게티의 스폰서로 리드되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MOCA, LA ⓒ Jiyoon Lee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외관. Jonas Wood 설치 전경.

1500억원 들여 지은 더 브로드 뮤지엄, 스위스서 시작한 하우저 & 월스

Hauser & Wirth Gallary, LA ⓒ Jiyoon Lee 하우저 & 워스 마이크 켈리 전시. 

보통 LA를 할리우드 도시로 생각하게 했다면 이젠 자타가 공인 할 정도로 서부에선 매우 중요한 미술의 도시가 됐다. 그 방점을 또 하나 찍게 한 것이 있다면 2015년 개관한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 부부가 만든 더 브로드(The Broad) 뮤지엄이다. 약 1500억원을 들여 지은 이 건축은 딜로 & 스콜피오가 디자인하였고 그들의 현대미술 콜렉션 2000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미국 최고 작가들인 신디 셔먼, 에드 러샤, 제프 쿤스, 앤디 워홀 등의 작품과 더불어 21세기 최고의 블루칩 콜렉션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뮤지엄은 바로 옆에 있는 프랑크 게리 건축가가 디자인한 월트 디즈니 음악당과 나란히, LA 다운타운을 매우 중요한 문화적 메카로 자리 잡게 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다. 이러한 문화기관이 만들어지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은 역시 시장이다. 지금까지는 로컬 갤러리들의 움직임으로 운영되는 LA 상업 화랑계는 2015년부터 세계적인 메이저 갤러리들이 줄지어 미술관급 화랑을 열었다. 스위스에서 시작하여 미술계의 거물이 된 하우저 & 월스(Hauser & Wirth)갤러리도 2015년 대대적인 오픈을 했다. 특히,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옛 밀가루 제분소 글로브 밀스 콤플렉스를 재개발해 면적이 10만 square feet(약 30㎢)에 달하는 미술관급 화랑을 오픈했다. 이어 2016년 독일의 중요 갤러리인 스프루스 매거스(Sprueth Magers) 갤러리도 베를린, 런던, 쾰른, 홍콩에 이어 LACMA의 맞은편, 미 서부의 전설적인 건축가인 윌리엄 페레이라(William L. Pereira & Associates)가 디자인한 2층 건물에 로스앤젤레스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제는 상업화랑을 한다는 것은 거의 메이저 중소기업급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갤러리들도 거의 미술관급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초청 받은 주요 아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한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즉, 글로벌 작품 가격이 많이 상승하는 데는 이러한 연관된 이유가 있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의 글로컬화는 그 지역 갤러리들의 성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03년에 설립돼 LA에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을 발굴했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들이 발굴한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소개되기 시작했고, 방문기간 전시된 요나스 우드 작가는 국제적 가고시안 갤러리와 함께 소개되면서, 데이비드 호크니 이후를 잇는 중요한 회화작가로 부상하면서, 이젠 회화 작품 하나에 40억 원을 호가하는 두 번째 LA 출신 마크 브래드포드 작가의 전설을 따르고 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급부상과 더불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LA의 내일을 기대하며 지켜볼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지윤의 art TALK(2)] 동경에서 열린 ‘선 샤워’ 전 WHY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이지윤의 art TALK(2)] 동경에서 열린 ‘선 샤워’ 전 WHY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상 현상인 ‘여우비’인, ‘선 샤워(SUN SHOWER)’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본 전시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쳐 온 이 지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로다. 특히 이 전시가 ASEAN1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리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다는 점이 놀랍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 차이시리, 선 샤워, 2017·Jiyoon Lee

이지윤의 아트TALK의 두 번째 이야기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이다. 사실 동남아시아라 하면 약 11개의 나라에 인구가 약 6억 명이 되는 매우 큰 지역이고, 다양한 민족과 다종교로 구성된 지역이기에, 이 지역의 특징적인 미술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다. 특히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지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동남아시아 각국은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로 각기 서로 다른 문화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통합된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상 현상인 ‘여우비’인, ‘선 샤워(SUN SHOWER)’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본 전시는 이러한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쳐 온 이 지역을 나타내는 메타포로서, 198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전시회였다.

와산 시티켓, 파란 10월, 1996 / 와산 시티켓, 잃어버린 정보, 2010

특별히 이 전시가 ASEAN1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리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에서 동시 개최된다는 점이 놀랍다. 일본은 1972년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을 설립하고 당시 ASEAN 국가들에 대한 문화적 지원을 시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아젠다로 지정했다. 일본이 국제화에 있어, 지역적·문화적 리더십이 중요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하고 ASEAN 국가들의 문화 미술관들을 연계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로 지난 40년간 축적된 지식을 기반한 연구로서 세계 처음으로, 아세안 국가의 큐레이터들과 일본 미술관의 큐레이터 14명이 2년반 동안 본 전시를 만들어 냈다. 아세안 10개국의 16개 도시에서 총 86명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190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사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인 콜렉션 구입을 시작한 곳은 미국의 구겐하임이다. 구겐하임은 바젤 아트페어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UBS은행과 함께 글로벌 아트 콜렉션을 구축하고 있고,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글로컬(glocal)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글로벌 미술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신 시장 구축과 함께 아시아 미술이 또 미국에 의해 선점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2013년 개최된 구겐하의 전시는 싱가포르 출신 큐레이터인 준엽(June Yup)이 큐레이팅 하였고, ‘노 컨트리(NO COUNTRY)’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FX 하루소노, 목소리 없는 목소리, 1993-1994

사실 그 어떠한 이유이던 간에, 세계적으로 동남아 작가들이 처음 소개되었던 2013년의 전시가 2017년 일본에서 열린 이 전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년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동남아시아 미술계·화랑가의 발전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10년 전부터 글로벌 미술계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지만, 지난 전시 이후 동남아시아 작가들 중 해외에서 관심을 끈 작가들의 경우 화랑과의 ‘전속 작가’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또한 동남아시아 갤러리들의 활동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 하나,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글로벌 미술시장 진출에 도움이 된 것은, 그들의 외국어 능력이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식민지였던 그들의 역사가 작가들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여전히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는 예술 생태계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도쿄에서도 이렇게 신미술관과 모리미술관이 공동으로 전시를 진행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처럼 대규모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열정과 혁명들> <역사적 아카이브> <다양하게 공존하는 정체성> <일상의 삶> <현대적 발전과 그 뒤의 그림자> <예술이 무엇이고, 왜 하는가?> <명상적 미디어> <역사와의 대화>라는 주제로, 190점의 작품들을 나누었다. 이 9개 주제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구겐하임의 전시와는 사뭇 다르게 다소 역사적 사건과 연계된 역사책의 시각화와도 같은 연구 중심 전시였다. 구겐하임 전시는 UBS의 콜렉션이 되는 만큼, 지난 5년간 소더비와 싱가포르 아트스테이지 등 동남아시아 중요한 미술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던 아린 수나리오, 와누 등의 스타 작가들 위주로 많이 보여진 데 반해, 본 전시는 1927년생 작가부터 1987년생 작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가들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주가 되는 전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또한 작품 캡션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많은 일본 미술관들의 소장품이 소개된 전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다.

사실 동남아시아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예전에 백남준 선생님이 글로벌한 작가로 활동했음에도 덜 알려졌듯이,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출신이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며 글로벌한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해 있는 작가들도 많다. 그 중 한 작가인 아핏차퐁은 차이 시리와 협업을 하여 전시장 입구에 ‘선 샤워’라는 대형 조각을 소개하였다.

아구스 스와게, 관용의 벽, 2012

눈을 반쯤 감은 8m의 코끼리는 마치 죽은 듯 고요하게 누워 있다. 둥실 떠 있는 코끼리는 공간에 위화감을 주며 그 위에는 색이 변하는 원반이 설치되어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본 작품은 모뉴먼트이자 사실과 픽션, 물질과 정신, 존재와 부재라는 양면성을 의미하며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선 샤워’라는 이름을 통해 복잡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의 양면성을 표상한다.

장미빛 안경을 통해, 2017

또한 전시 섹션들이 제시하듯,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작품들 중 와산 시티켓의 <파란 10월>(1996)은 매우 압도적인 설치로 다가온 작품이다. 1976년 방콕 타마삿대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듯한 화면과 신문 보도내용이나 학생운동에서 사용된 노래의 가사 등을 한 화면에 담아 낸다. 당시 대학생이기도 한 그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파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활약하였다. 아래에는 플래카드를 든 자신의 미니어처를 늘어놓은 <잃어버린 정보>(2010)를 설치했다. 이 작품은 가끔 빈 플래카드에 관람자가 문구를 써 넣으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전시된다. 동남아의 중요한 작가들 또한 우리가 민중예술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듯, 정치·사회적 표현으로써 예술을 이용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소개할 만한 미술관이나 화랑이 부재한 시대에서도 작가들이 중요한 액티비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계를 리드해갔다는 점이 이번 동남아시아 전시작품을 보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와산 시티켓, 파란 10월, 1996 / 와산 시티켓, 잃어버린 정보, 2010

예를 들어, FX 하루소노의 출품작인 <목소리 없는 목소리>(1993-1994) 작품은 9개의 패널에 수화로 표현한 데모크라시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마지막 글자를 만드는 손은 밧줄로 묶여 있는데, 이는 자유롭게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당시에 존재하던 언론적 사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화계 자바인인 FX 하루소노는 최근에는 중화계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우 아름다운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손짓이 무엇일지 궁금한 관객에게 이 내용이 수화로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알게 되는 순간은 매우 진한 감동을 주게 되는 동시에 작가의 예술적 승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구스 스와게의 <관용의 벽>(2012)과 <사회의 거울>(2013) 작품도 그러하다.

                    선 샤워: 동남아시아 현대미술-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전, 2017, 도쿄 신미술관, 모리미술관, 전시 전경

이 작품들은 인도네시아의 전형적 일상의 경험을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슬럼가와 고급 주택가 양측에 있는 모스크에서부터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이 작업에는 파티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시외버스 뒷자리에서 나누는 담화 등 다양한 개인적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육체의 표상인 귀는 작품의 구조에 개입해 제시하는 그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불안과 공포, 억압과 거부 도발이라는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다문화가 가져온 위기를 반영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렇듯 본 전시는 아마도 우리에게 앞으로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말할 때 기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전시로 자리할 것 같다. 다만 그들의 미술사를 논할 수 있는 국립 미술관들의 전문성과 사관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 미술사가들의 해석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게 자국 내에서 재토론되고 비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지윤의 art TALK(1)] 데미안 허스트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전’

[이지윤의 art TALK(1)]  데미안 허스트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전’

2008년 소더비 이브닝 세일에서 호가 2200억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는 동시에, 미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 허스트가 1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팔라조 그라시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작품으로 높이가 19m나 되는 청동처럼 보이는 조각. 하지만 레진으로 만들어 청동 조각과 같은 페인팅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 볼을 들고 있는 데몬, 채색된 레진, 1822x789x1144㎝ / ©이지윤 제공

이달부터 연재되는 ‘이지윤의 ART TALK’의 첫 주인공은 1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제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아트 그랜드 투어, 그 중 최고의 작가 데미안 허스트이다. 아트 그랜드 투어란 17세기 유럽 귀족들이 문화와 예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며 교양인으로 입문하는 그랜드 투어에서 따온 말로, 국제적인 현대미술 행사들이 브랜드화된 오늘날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진행되는 대장정을 일컫는다. 지난 30년간 명성을 쌓아가며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에 가장 영향을 주는 행사들, 예를 들어 1970년대 시작되어 세계 최고 아트페어로 발전한 아트바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도큐멘타와, 10년에 한 번 우리를 찾아오는 독일 뮌스터 시티 조각 프로젝트이다. 이 행사들은 전 세계 미술인과 미술을 향유하는 아트노마디안들에게 매우 중요한, 거의 종교의식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번 에세이는 다양한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에게 가장 많이 회자된 미술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의 주인공 데미안 허스트를 소개한다.

                                                                        

데미안 허스트, 전사와 곰, 청동, 713x260x203㎝ / ©이지윤 제공                    데미안 허스트, 콜렉터와 친구, 청동, 185.5×123.5×73㎝ / ©이지윤 제공

2008년 소더비 이브닝 세일에서 호가 2200억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는 동시에 미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 허스트가 1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2016년 런던에 자신의 콜렉션을 선보이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 개관 외에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그의 전시는 개관 전부터 매우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 신작은 범상치 않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심연의 바다 속에 모습을 드러낸 난파선에서 예술품을 건져 올리는 다이버들의 영상과 사진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세기 초 안티오크(Antioch)에 살던 부유한 콜렉터 시프 아모탄(Cif Amontan) 2세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막대한 재산을 모은 전설적인 인물로, 막대한 양의 조각·보석·동전과 세계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들였다. 그가 모은 보물을 싣고 아시트 메이어(Asit Mayor)시에 준공될 해의 신전으로 향하던 거대선 ‘아피스토스(믿을 수 없는 이란 뜻의 고대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그리고 전설이 되어 떠돌던 그 유적들은 2008년 아프리카 동쪽 해안 인도양에 가라앉았던 전설적인 보물들로 재발견되었다. 이 유적들은 2년 뒤인 2010년 인양되어 바다 세계의 흔적을 안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유물들 사이사이에는 배에서 건져 올린 기록들과 설명들이 제시된다. 배와 함께 발견된 4페이지의 이상한 물건들 리스트 말미에 적힌 ‘이 물건은 자유인 아모탄이 그의 배 아피스토스에 소장품을 실었다’는 문장은 이 전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허스트가 전시를 위해 만들어 낸 픽션이다. 관객은 작품과 기록을 마주하며 진실과 허구 사이의 개연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바닷속에서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조각과 함께 라이트박스 사진 작업으로 소개했다. 데미안 허스트, 네 명의 잠수부에 의해 발견된 히드라와 칼리, 알루미늄, 프린트된 폴리에스터, 아크릴 라이트 박스, 244.2×366.2×10㎝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허스트는 75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19m가 넘는 조각에서부터 약 100개의 조각과 21개의 캐비닛을 채우는 작은 오브제 등 총 189점을 제작하고 2개의 뮤지엄을 가득 채우는 전시를 감행했다. 현대미술작가가 이런 막대한 제작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이렇게 엄청난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현대미술작품시대라는 것에서 미술 현장의 대대적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개최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의 주인이자 Kering그룹 회장, 예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의 지원을 받았다는 설은 허스트의 깜짝쇼와 같은 이 전시가 상업미술의 극치를 축하하는 장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일으켰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박제 상어, 나비 페인팅 등으로 미술에 새로운 시각언어 및 가치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준 일종의 악동과 같은 천재 작가 허스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미술에 대한 질문과 그의 전시는 단순한 상업미술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과 맥락이 매우 난해하고도 깊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많은 숫자와 대규모 물질들로 만들어진 작품은 물론이지만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맥락과 전시적 표현이다. 많은 관객이 그의 초기작 박제 상어와 돼지 등을 보면서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생애 연구에 근간하여 살펴본다면 영국의 리즈(Leeds)라는 작은 도시에 살던 당시 14세 소년이던 허스트가 본 첫 현대미술전이 우연히도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 미술관에서 열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늘 박제된 동식물들의 캐비닛을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러한 오브제들이 그의 작품으로 연결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10년 전 필자가 허스트를 만나 알게 된 사실은 고대 문명에 관심이 깊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역사는 물론이고 페루에서 마야문명의 판초나 여러 가지 문명사와 관련된 오브제들을 모으는 콜렉터였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보면서 그가 지난 10년간 공부한 많은 고대 예술품들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영감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마치 J.R.R. 톨킨스가 호빗이라는 종족을 만들어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을 쓴 것과 같이 아모탄2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문명사적 오브제와 새로운 역사, 미래의 역사유물 만들기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상상의 세계가 가지는 새로운 서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품으로 연출한 문명박물관을 통해 새로운 전설을 만든다.

데미안 허스트, 히드라와 칼리,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본 전시가 주목할 부분은 아무리 좋은 이상적 개념이라도 어떤 예술로 승화하지 못한다면 그저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지만 그를 넘어 아날로그적이며 매우 완성도 높은 장인정신이 미술품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많은 장인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주문하는 작품들을 만드느라고 상당히 바쁘지 않았을까. 허스트가 만든 청동과 대리석 조각들에는 적어도 전시를 준비한 3년 이상 기막히게 색칠된 산호조각과 바닷속 퇴적물 등이 부착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부식 과정은 기존 조각을 또 다른 새로운 문명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새로운 형과 색을 부여 받은 스핑크스와 크로노스, 비너스의 토르소, 라오콘을 오마주 한 듯한 동상들은 오랜 시간과 함께 남겨진 고대 유물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경이를 지우고 하나씩 천천히 그 작품들을 들여다본다면 놀랍게도 우리는 산호가 감싸고 자란 작가의 초상조각이나 미키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 전시의 후원자이자 미술관의 주인 피노씨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유희를 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모두 고대 문명과 문물에서 시작된, 우리 눈에 익숙한 그러한 작품들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이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서 또 다른 문맥을 창조하고 있다.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의 조각같이 보이는 여인의 대리석 흉상의 몸매가 장난감 바비인형의 몸매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지. 매우 섬뜩이는 재치와 유머가 각 작품에 녹아있다. 이번 전시는 데미안 허스트가 직접 기획한 1988년 골드스미스 졸업전이자 YBA신화를 만들어낸 프리즈(FRIEZE)전 만큼이나 중요한 제2의 신화를 시작하는 여정이 아닌가 한다. 그가 앞으로 자신이 만든 이 세계를 어떻게 진화시켜 나가고 풀어갈지가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푼타 델라 도가나는1682년 주제페 베노니에 의해 완공된 대저택이다.

데미안 허스트, 시클롭스의 두개골,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본 건물은 17세기부터 베니스 상권에서 가장 중요한 세관이 있었던 건물로 이 해상도시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난 100년간 전혀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이를 프랑수와 피노가 새로운 미술재단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피노 파운데이션이 새단장한 이 공간은 팔라조 그라시와 더불어 베니스시와의 33년간 계약을 통해 본 건물의 보존·운영권을 얻었다. 그 이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에 걸쳐 일본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지휘 아래 약 220억원(2000만 유로)을 들여 구겐하임 다음으로 큰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33년 후에 본 공간은 베니스시로 기부체납된다.

 

[2018.03.02] 올림픽 선수들도 극찬한 PARK ROCHE Resort & Wellness

라이프 | 올림픽 선수들도 극찬한 PARK ROCHE Resort & Wellness
글 천소현기자 제313호(2018.03) 댓글0건

알록달록한 스키복, 방한복을 입은 외국인들과 방송 녹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리포터들. 정선에 위치한 파크로쉬 리조트에 들어서자마자 강풍처럼 들이닥친 풍경들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알파인 스키대회장 바로 옆에 위치한 파크로쉬 리조트는 개장하자마자 올림픽 관계자 지원 숙소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일 강풍으로 취소된 스키 대회가 아쉽긴 했지만 사실 파크로쉬 리조트를 찾은 이유는 영국의 거장 아티스트 리차드 우즈(Richard Woods)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1, 2 정선의 자작나무에서 영감은 얻었다는 리차드 우즈의 작품 ‘실버 버치’가 파크로쉬 리조트 & 웰니스 로비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3 루프탑에는 자갈을 패턴화한 작품이 덧입혀졌다 4 플라잉 요가 시범을 보이고 있는 트레이너. 다양한 웰니스 시설을 갖추고 있다.

파크로쉬 리조트는 설계 단계부터 전문 큐레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왔다. 정선을 오가는 여정에서 자작나무와 돌에 특히 주목한 그는 자연에서 발견한 패턴을 팝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컬러풀한 자갈 패턴이 입혀진 수영장과 건물 외관에 그의 작품이 영구적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파크로쉬 리조트에서는 리차드 우즈 외에도 현대미술작가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 Martin), 움직이는 한국화 영상으로 유명한 이이남 작가, 디자인 스튜디오 ‘유니버설 에브리띵(Universal Everything)’의 미디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모든 객실에는 박찬우 사진작가의 돌 연작을 걸었다.

작가들도 주목한 ‘바위’는 파크로쉬 리조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리조트가 위치한 ‘숙암리(宿岩里)’의 이름은 먼 길을 오가던 나그네들이 이곳의 너른 바위에 이르러 비로소 편안하게 쉬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고, 리조트의 이름 로쉬(프랑스어로 바위라는 뜻)와 고품격 웰니스(Wellness) 라는 콘셉트는 숙암에서 착안한 것이다.

요가, 필라테스, 스파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웰니스 시설과 에이스침대의 수면 과학연구소와 협업으로 운영하는 ‘숙암랩(lab)’ 등은 일부일 뿐. 올림픽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가동될 프로그램들이 대기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또 다른 호텔인 파크 하얏트의 체인에서 경험을 쌓아 온 세바스찬 피쉬으더 파크로쉬 리조트 & 웰니스 총지배인이 슬쩍 말했다. “선수들이 ‘역대 올림픽 숙소 중 최고!’라고 하던데요.” 그럴 것 같았다. 파크로쉬는 웰니스를 표방한 리조트 중에서도 최고였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파크로쉬 리조트

[2017.02.25] 팝아트적인 내 작품, 진짜 자연 돋보이게 해

팝아트적인 내 작품, 진짜 자연 돋보이게 해

파크로쉬 루프톱 건물 외벽에 설치된 리처드 우즈의 작품. 강원도의 돌을 형상화했다.

파크로쉬 루프톱 건물 외벽에 설치된 리처드 우즈의 작품. 강원도의 돌을 형상화했다.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마련된 강원도 정선에 고품격 웰니스 리조트를 표방하는 파크로쉬(PARK ROCHE)가 지난달 문을 열었다. 가리왕산과 두타산 사이, 옆으로 오대천이 흐르는 아늑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가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로 꾸몄다. 경쟁에 지치고 스트레스에 쪄든 현대인을 위해 요가와 명상을 위한 공간을 특화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인가가 드문 첩첩산중을 지나던 나그네가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잠을 이뤘다는 설화에 근거한 지명에서 딴 ‘숙암(宿岩)랩’은 에이스침대 수면과학연구소와 함께 투숙객의 숙면을 돕는다.

정선 파크로쉬와 협업한 영국 작가 리처드 우즈

더욱 특이한 점은 건축 설계 단계부터 아티스트와 협업을 꾀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영국 작가 리처드 우즈. 2008년 청담동 MCM HAUS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익숙한 작가다. 유럽의 전통 벽지 문양을 활용한 인테리어도 유명하다.

작가는 1년 반 전부터 한국을 오가며 리조트측·건축가·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어떤 컨셉트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할 것인지를 두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가리왕산에 저절로 조성된 자작나무 숲이었다. 인근에 바위가 많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리조트 로비의 바람벽은 그가 목재 판화로 찍어낸 흰색 자작나무로 빽빽한 숲을 이뤘고, 13층 루프톱 건물 벽 역시 단풍색 바위들로 아롱졌다. 수영장 바닥 역시 파랗고 푸른 바위 문양으로 감쌌다. 강원도의 자연을 리조트 안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그는 영국 중부 체셔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낮에는 집 짓는 일을 돕고 밤이 돼야 자신의 공부를 하고 작품 활동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나만의 예술 언어를 찾을 수 있었지요. 바로 주변의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나무 재료들이죠. 이것을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해 팝아트적인 면을 부각했어요. 낡은 집을 수리할 때는 튜더 왕조 스타일로 바꿔놓곤 하죠. 그 그래픽 디자인 랭귀지와 컨템포러리 아트는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정선으로 오면서 차 안에서 바라본 한국의 산세와 풍경도 작품으로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이것을 다시 목판화로 간결하게 찍어낸 것. 그래서 리조트의 바람벽은 자작나무 숲의 흑백의 미학과 강원도 가을의 화려함이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우즈는 “원경과 근경을 병치시킨 것이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며 “상반되는 모순의 미학이 그 속에 있다”고 덧붙였다.

우즈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공동 기획한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는 “리처드 우즈의 스타일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팝적으로, 동시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라며 “그의 작품으로 인해 진짜 자연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리조트 내 204개 방마다 사진작가 박찬우의 돌 사진 5종류를 설치한 것도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겠다는 리조트의 의지가 반영된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정선 글 정형모 기자,  사진 파크로쉬

[2018.02.11] 질의응답 시간 가진 리차드 우즈

[포토]질의응답 시간 가진 리차드 우즈

 신태현 기자 2018-02-11 16:30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현대미술작가 리차드 우즈(오른쪽)와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디렉터가 11일 강원 정선군 파크로쉬 리조트에서 열린 아트 미디어 이벤트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리차드 우즈는 ‘실버 버치’를 비롯해 곳곳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취재진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사진=파크로쉬 리조트)

[2018.01.03] 패션과 아트의 상징 ‘MCM’ 밀레니얼 세대 잡는다

패션과 아트의 상징 ‘MCM’ 밀레니얼 세대 잡는다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담아낸 새 라이프스타일 제안

  • 독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MCM’이 음악, 예술, 여행, 테크놀로지 4가지 가치를 가지고 밀레니얼 세대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MCM은 기존 양질의 문화, 예술적 경험을 토대로 매장에서 색다른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 및 기회를 제공한다. 쿤스트프로젝트를 통해 유명 문화 예술인들을 초대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MCM은 접근이 쉬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전시는 방문객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패션과 아트의 만남을 이뤄내는 플래그십 스토어는 청담동 명품거리에 위치한 MCM 하우스(MCM Haus)와 홍대 젊음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홍대 MCM 팝업(MCM Pop-up) 매장 등이다.


    MCM은 예술문화가 융성했던 1970년대 독일 문화와 전통을 포용하는 동시에 현대의 최첨단 소재와 디자인을 접목하고 있다. 특히 음악, 예술, 여행, 테크놀로지 등 4가지 가치를 두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청담동의 MCM 하우스는 지난 2016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지상 5층과 지하 1층을 단독 예술 공간으로 꾸며 고객과 예술의 만남을 이어주고 있다. 지난 7월 처음 시작한 MCM 컬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MCM 컬처는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한국 대표 포토그래퍼들의 강의 프로그램이다. 현대미술 기획 사무소 ‘숨 프로젝트’와 함께 기획해 매월 패션과 예술을 주제로 작가 작품과 관점에 대한 강연이 이뤄지고 있다.
    B&A건축사사무소 소장인 배대용 디자이너가 첫 번째 주자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포토그래퍼 강영호가 ‘부조화의 힘’을 주제로 관객과 소통했다. 패션 사진으로 유명한 포토그래퍼 구본창은 ‘수수한 아름다움’을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서 지난 30년간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MCM 하우스는 전시 관람 뿐만 아니라 매장을 찾은 관람객이 제품까지 살펴보는 선순환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홍대 MCM 팝업점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는 ‘쿤스트 프로젝트(Kunst Project)’는 MCM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체험 캠페인이다. 2014년부터 연중 3~4회의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열고 있다. 그 동안 타투, 토이아트, 조형예술, 조각, 사진, 설치예술, 그래피티, 디지털 네온아트, 팝아트 등 다양한 예술 분야 아티스트와 협업이 이뤄졌다.
    MCM은 앞으로도 예술문화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MCM 컬처 프로그램’은 기획된 10회 중 남은 5번의 강연을 2018년 상반기에 MCM 하우스 매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쿤스트 프로젝트는 12번째 협업 아티스트를 물색 중이다.

[2017.12.26]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가치 통해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청담동·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양질의 문화·예술적 경험 제공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가치 통해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청담동·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양질의 문화·예술적 경험 제공

MCM갤러리 초대전 by한국패션문화협회 <사진제공=MCM>

 

MCM이 음악, 예술, 여행, 테크놀로지 등 4가지 가치를 통해 패션을 넘어선 2018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MCM은 청담동 MCM 하우스(MCM Haus) 매장, 홍대 MCM 팝업(MCM Pop-up) 매장 등 접근성이 용이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전시는 방문객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특히 MCM 하우스는 지난 2016년 건물 리모델링을 감행하며 지상 5층과 지하 1층을 단독 예술 공간으로 꾸며 고객과 예술의 만남을 이어주고 있다.

지난 7월 처음 시작한 ‘MCM 컬처 프로그램(MCM Culture Program)’은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한국 대표 포토그래퍼들의 강의 프로그램이다.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대중과 대면하여 소통하는 창구이면서 대중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들과의 ‘만남의 장’이다.현대미술 기획 사무소 ‘숨 프로젝트’와 함께 기획한 10회의 강연 중 B&A건축사사무소 배대용 소장, 포토그래퍼 강영호, 김용호, 구본창, 헬레나플라워 유승재 대표 등의 강연이 진행됐다.

MCM 하우스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매장 방문객이 매장을 둘러보듯 전시를 관람하던 구조는 전시 관람객이 제품까지 살펴보는 선순환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한국패션문화협회의 주도로 ‘2017 MCM 갤러리 초대전’이 열렸다.‘ODD PERFECTION(특이한 완벽함)’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는 인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불완전한 공존의 현상들을 표현한 패션 디자인 작품들이 공개됐다. 또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건축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아트백 공모전 및 전시회, 건축 조형물 전시회가 열리며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대중들이 다녀갔다.

홍대 MCM 팝업점을 중심으로 하는 ‘쿤스트 프로젝트(Kunst Project)’는 MCM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체험 캠페인이다. ‘예술’을 의미하는 독일어 ‘쿤스트(Kunst)’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2014년부터 연중 3~4회의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열어 현재 11회차를 맞았다.

그 동안 타투, 토이아트, 조형예술, 조각, 사진, 설치예술, 그래피티, 디지털 네온아트, 팝아트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이 이뤄졌다. 각 전시마다 디제잉, 힙합과 무용 공연, 미니콘서트 등 음악과 예술을 결합해 이색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글로벌 브랜드로서 세계적인 규모의 예술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독일의 쾨닉 갤러리와 소속 아티스트들로 이뤄진 레이블인 쾨닉 수비니어가 MCM과의 한정판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활용해 큐레이팅한 설치미술을 지난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일부 선공개한 데 이어 12월에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전시했다.

MCM은 향후에도 꾸준히 예술문화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MCM 컬처 프로그램’은 기획된 10회 중 남은 5번의 강연을 2018년 상반기에 MCM 하우스 매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쿤스트 프로젝트 역시 연내 꾸준히 지속할 예정이며, 12번째 협업 아티스트를 물색 중이다.

이효정 기자  market@greened.kr

<저작권자 © 녹색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원본: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가치 통해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청담동·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양질의 문화·예술적 경험 제공

[2017.12.26]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통한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통한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사진 – 2017 MCM 갤러리 초대전.

[G밸리 이은현 기자] MCM이 다양한 예술작품과 아티스트들을 국내에 소개하며 패션과 예술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MCM은 예술문화가 융성했던 1970년대 독일의 문화와 전통을 포용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의 최첨단 소재와 디자인을 접목해 선보인다. 특히 음악과 예술·여행·테크놀로지 등 4가지 가치를 꼽아 패션을 넘어서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청담동 MCM 하우스(MCM Haus) 매장과 홍대 MCM 팝업(MCM Pop-up) 매장 등 접근성이 용이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전시는 무료로 개방하며 특히 MCM 하우스는 지난 2016년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지상 5층과 지하 1층을 단독 예술 공간으로 꾸며 고객과 예술의 만남을 이어주고 있다.

MCM 하우스가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매장 방문객이 매장을 둘러보듯 전시를 관람하던 구조는 전시 관람객이 제품까지 살펴보는 선순환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한국패션문화협회의 주도로 ‘2017 MCM 갤러리 초대전’이 열렸다. ‘ODD PERFECTION(특이한 완벽함)’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는 인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불완전한 공존의 현상들을 표현한 패션 디자인 작품들이 공개됐다. 또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건축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아트백 공모전 및 전시회, 건축 조형물 전시회도 열었다.

이 밖에도 지난 7월 처음 시작한 ‘MCM 컬처 프로그램(MCM Culture Program)’은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한국 대표 포토그래퍼들의 강의 프로그램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대중과 대면·소통하는 창구이면서 대중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들과의 ‘만남의 장’이다. 현대미술 기획 사무소 ‘숨 프로젝트’와 함께 기획한 10회의 강연 중 B&A건축사사무소 배대용 소장, 포토그래퍼 강영호, 김용호, 구본창, 헬레나플라워 유승재 대표 등의 강연이 진행됐다.

MCM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체험 캠페인 ‘쿤스트 프로젝트(Kunst Project)’도 선보인다. ‘예술’을 의미하는 독일어 ‘쿤스트(Kunst)’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홍대 MCM 팝업점을 중심으로 지난 2014년부터 연중 3~4회의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열어 현재 11회차를 맞았다. 그 동안 타투·토이아트·조형예술·사진·설치예술·디지털 네온아트·팝아트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가졌으며, 각 전시마다 디제잉과 힙합과 무용 공연 및 미니콘서트 등 음악과 예술을 결합한 이색 경험의 기회도 제공했다.

MCM 관계자는 “‘MCM 컬처 프로그램’은 기획된 10회 중 남은 5번의 강연을 2018년 상반기에 MCM 하우스 매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라며 “쿤스트 프로젝트 역시 연내 꾸준히 지속할 계획이며 현재 12번째 협업 아티스트를 물색 중”이라고 전했다.

이은현 기자  hyun@gvalle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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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본: MCM, 음악·예술·여행·테크놀로지 통한 ‘2018 라이프스타일’ 제시

[2017.12.14] 큰손 취향 저격… 갤러리·호텔 뺨치는 PB센터

큰손 취향 저격… 갤러리·호텔 뺨치는 PB센터

입력 : 2017.12.14 03:00

[PB센터 고급화·대형화 경쟁]

지점에서 ‘分家’… 대형 센터로… PB·세무 전문가 등 수십명 상주
전시회 등 문화 행사도 열어

한국씨티銀 10억 이상 맡긴 고객 지난해 6월 대비 8% 증가
신한銀, 인근 전문센터와 연계… 관리자산 2조3000억원 달해

시중은행들의 ‘PB(Private Banking· 프라이빗 뱅킹)센터’ 고급화·대형화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프라이빗 뱅킹이란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다. 국내 시중은행은 2000년대부터 수익 기여도가 높은 자산가를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PB 사업을 시작했다. 과거 은행 지점 ‘셋방살이’로 시작한 PB센터들은 ‘분가(分家)’를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은행·증권 PB뿐 아니라 부동산·세무 전문가까지 수십 명이 상근하는 초대형 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금융 상품뿐 아니라 부동산·세무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고객의 자산 관리 욕구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또 VIP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고급 실내장식을 도입하고, 각종 문화 행사도 병행하고 있다.

자산가 ‘취향 저격’…호텔·갤러리처럼 변하는 PB센터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7월 고객 자산 관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서울센터’를 개소했다. PB뿐 아니라 보험·외환·대출 전문가 등 자산 관리 전문가 50여 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센터다. 최고급 인테리어의 상담실 25개와 투자 강연을 위한 라운지, 휴식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수억원 이상을 맡긴 고객을 자산 규모별로 나눠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KEB하나은행은 갤러리 콘셉트의 고품격 이미지를 내세운 초대형 PB센터를 최근 을지로 본점 3층에 개장하고, 이스라엘 출신의 설치미술가 자독 벤 데이비드를 초청해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 고액 자산가들에게 맞춤형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PB(프라이빗 뱅크)센터가 갈수록 대형화·고급화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갤러리 콘셉트의 고품격 이미지를 내세운 초대형 PB센터를 최근 을지로 본점 3층에 개장하고, 이스라엘 출신의 설치미술가 자독 벤 데이비드를 초청해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KEB하나은행
시중은행별 '간판 PB 센터'

한국씨티은행이 ‘랜드마크’급 센터에 도전한 건 그간 고급화 전략이 성공을 이뤘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브렌단 카니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 그룹장은 “반포 및 청담센터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에 작년 동기 대비 투자 상품 판매가 23%, 투자 자산도 4% 늘어났다”며 “한국씨티은행에 자산 10억 이상을 맡긴 초자산가 고객은 작년 6월 대비 8%, 2억~10억을 맡긴 고객은 5% 증가했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은 ‘갤러리’ 같은 고급 PB센터를 표방하고 있다. 이번 달 서울 을지로 신사옥에 문을 연 ‘영업1부 PB센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센터 내에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 등 그림·사진·조각 30여 점을 설치했다. 하나은행은 “작품 전시, 도슨트(안내인을 통한 전시관 설명) 프로그램 진행 등을 통해 VIP 고객에 대한 감성 마케팅을 병행할 것”이라며 “기존 PB 채널을 정비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산가의 취향까지 고려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연예인·스포츠 스타 투자 돕고, 가족 자산도 관리

KB국민은행은 PB센터에 ‘스타 마케팅’을 접목했다. KB국민은행의 대표적인 PB센터인 ‘강남스타PB센터’에 지난 6월 연예인·스포츠 스타 전담 금융센터 ‘Club E’를 만들었다. 연예인·스포츠 선수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담 공간을 만들고, 바쁜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는 셀러브리티 맞춤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또 강남뿐 아니라 도곡·명동에 위치한 스타PB센터에 ‘KB 부동산·상속·증여센터’를 설치·운영 중이다. 고액 자산가 개인을 넘어서 가족 단위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인근 센터·지점과 인력 나눠 쓰는 ‘시너지’ 전략도

신한은행은 각 분야 전문 인력을 데려와 대규모 PB센터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센터를 인근 전문 센터와 연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신한 PWM 파이낸스센터’는 신한은행 글로벌외환센터와 연계해 해외 부동산·송금·이주 등 외환 업무에 대한 전문 상담을 진행한다. 또 부동산투자자문센터와 연계해 부동산 투자 상담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관리 자산도 2조3000억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센터’로 거듭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 가입·송금·결제 등 단순 거래는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만큼, 일반 지점은 축소하고 복잡한 상담을 필요로 하는 VIP 고객 유치하는 ‘투 트랙 전략’이 당분간 인기를 끌 것”이라고 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4/2017121400047.html#csidxfcaf0a74113987ca04cdd5e39a88cc0 

[2015.08.19] 우리 옷에 바람을 입히다 – 이영희 展 – 바람,바램

우리 옷에 바람을 입히다
이영희 展 – 바람,바램
국제섬유신문  |  webmaster@itnk.co.kr 승인 2015.08.19
2015년 9월 23일(수) ~ 10월 9일(금)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알림터 알림 2관

한복의 보편적 美, 이영희 한복이 추구한 40년의 미학

“나는 ‘아름다움’이 지닌 보편성과 공감성의 힘을 믿는다. 한국여인에게 아름다운 옷은 세상 모든 여인들에게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이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 의상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닌 의상으로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한복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주인공.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 참여를 비롯해 2010년 최초로 파리 오뜨꾸뛰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며 명실공히 한복의 세계화를 선도한 디자이너 이영희.
그녀의 한복 디자인 40년을 조망하는 전시가 오는 9월 23일~10월 9일 동대문 DDP 알림 2관에서 개최된다.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나이 마흔에 시작된 이영희의 한복 디자인 40년 발자취를 돌아보는 여정이자 한복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이영희 디자이너가 모은 진귀한 한복 사료를 비롯해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제시한 대표적 작품이 컨템포러리 아트 워크로 연출되며 한복의 새로운 매력을 제시한다.

이영희의 한복, 왜 ‘바람의 옷’이 되었을까?

“한복이 우리 생활 속에 베어 들게 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장식부터 과감히 없애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쟁이로서 이영희가 한복의 실용화를 위해 과감히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면, 세계적 디자이너로서 이영희는 아예 저고리를 생략한 파격적인 한복을 선보였다. 1976년 한복을 짓기 시작한 후 40년 간 수 많은 옷을 디자인했지만 지금까지 대중의 뇌리에 남아 있는 이영희의 옷은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 즉 ‘바람의 옷’이다.
1994년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는 ‘가장 모던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옷이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당시 <르몽드> 수석 기자 로랑스 베나임(현 Stiletto 잡지 대표)은 이 옷을 일컬어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 평하면서 ‘바람의 옷’이라 명명했다.
한없이 다양한 형태와 볼륨을 지닌 옷으로 변화하지만 언제든 간단한 평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한복 치마, 바람의 옷. 디자이너 이영희 관점에서는 전통을 버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복이 지닌 고유한 미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최고의 디자인이었다.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지난 40년 간 이영희가 추구해 온 패션으로서의 한복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저고리가 없는 한복으로서 강렬한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 한복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세계적 패션으로 거듭나는 한복의 진화 과정을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차원 평면이 선사하는 새로운 시선, 한복을 한복 안에서 만나다

“전통을 버리고 전통을 얻는다. 한없이 변화할 수 있지만 언제든 가장 간단한 평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옷. 이런 생명력이 있어서 나는 바람의 옷을 사랑한다.” -디자이너 이영희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한복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전시 디자인으로 한층 풍성한 볼거리와 영감을 선사한다. 이에 새롭게 시도한 것은 전시장 자체를 한복과 같은 평면 구조로 구성해 마치 실제 한복 속에 들어가 한복을 보는 듯한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복이 서양 의복과 차별을 이루는 것은 2차원 평면 구조로,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기면서 여유가 있는 구조로 변화하는데 이는 ‘옷이 몸에 붙으면 복이 들어갈 틈이 없다’ 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 한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전시장은 이러한 원리를 통해 천으로 겹겹이 벽을 이루는 공간이 형성되며, 관람객이 그 사이로 진입하면 마치 한복 속에 생긴 여유 구조를 자유롭게 유영하듯, 그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느끼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여유 구조 안에서 만나는 한복은 한복 고유의 평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아트 워크 형태로 설치됨과 동시에 아티스트의 작품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그 대표적 예로 미디어 아티스트 박제성 작가는 이영희의 대표작인 ‘바람의 옷’이 지닌 특징(바람이 나부낄 때 드러나는 치마의 움직임과 자연의 빛깔로 물든 치마 등)을 미디어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형상화하고, 사진 작가 김중만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이영희 디자이너가 특별 제작한 ‘바람의 옷 남자 버전’을 입은 유니버셜 발레단 남자 무용수를 촬영한 화보와 영상을 공개한다.

한편 겹겹이 벽을 이룬 천 사이로 한복 속을 유영하다 마주치는 넓은 ‘마당’ 공간은 이번 전시에서 마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살아 있는 전시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바람의 옷(남•여 버전)을 입고 펼치는 퍼포먼스, 이영희 디자이너의 한복 강연, 한복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워크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뤄질 예정이다.
프로그램이 없을 때의 마당 공간은 전시장 전체의 풍경을 조망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당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은 자연의 빛을 닮은 감성 조명이 마치 중첩된 산등성이 사이로 해가 뜨고 지는 듯한 한국적인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람객에게 서정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디자인의 영감, 한복의 근원을 찾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가 없고, 조상의 문화를 버리면 현재의 문화도 없다. 전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전통을 알면 내가 즐거워진다.” -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편적인 패션으로 전환해 온 이영희 디자이너. 그녀는 발전적인 미래란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만큼 한복 디자인에 있어서 우선시 된 것은 전통 한복의 소재, 형태, 염색 기법에 대한 연구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색다른 시도는 이영희를 디자이너로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한복의 전통을 계승한 이영희 컬렉션 및 그녀가 직접 모은 전통 유물이다.
그 중 중요무형문화재이자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한산모시는 이영희 전통 컬렉션의 주인공으로, 한산모시만의 빛깔과 텍스쳐 등의 특색을 살린 전통 한복과 오뜨꾸뛰르 드레스 디자인 작품이 아트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선보일 예정.
또한 전통 색상과 염색에 대한 이영희의 탐구와 열정은 ‘이영희의 색’으로 정의되는 색깔과 배색이 들어간 디자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전통 한복에서는 쓰이지 않았지만, 전통 염색에서 발견한 회색의 아름다움은 쪽빛과 먹자주 색깔과 짝을 이루며 이영희 한복만의 개성이 되었고 이러한 시그니쳐 컬러는 그녀가 만든 프레타포르테 기성복을 비롯해 오뜨꾸뛰르 드레스까지 물들이며 전통의 현대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외에 이영희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영감으로서 자신이 수집해 온 조각보와 비녀, 족두리, 버선, 꽃신과 같은 전통 유물을 공개한다. 2004년 뉴욕 맨하탄에 설립한 ‘Lee Young Hee Korea Museum’에서 선보인 바 있던 유물로서,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첫 선을 보인다. 그 중 조각보는 이영희 디자이너에게 색과 패턴 등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으로서, 특히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색동 저고리들을 한 데 모아 전시함으로써 관람객에게 드라마틱한 비주얼을 제공하며 또 다른 영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도전하다

“어렵더라도 이런 일을 시작하고 개척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억지로 벌여놓은 일이, 앞으로 세계에 나아가 활동하려는 후배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잠시 숨 고르며 편히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 -디자이너 이영희

이영희 디자이너를 수식하는 말들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93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 한국 디자이너 최초 참가, 94년 한국디자이너 최초 파리 부티크 오픈’ 이다. 그녀 스스로 조차도 당시를 회고하며 ‘어떻게 그렇게 용기가 생겼는지 당시에는 무작정 뛰어들어 맨몸으로 부딪혔다’고 할 정도였지만,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복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이며, 이런 한복과 한국의 전통 문화를 세계에 더 많이 알리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했다.
전통에 대한 영감을 바탕으로 수십 차례의 쇼를 통해 세상에 내놓은 프레타 포르테, 그리고 오뜨 꾸뛰르 콜렉션. 한 번의 쇼를 위해 제작하는 의상이 평균 80~100벌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부티크가 거대한 옷 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에서 이영희 디자인의 정점이자 터닝 포인트가 된 마스터피스 20점을 선별, 특별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각 의상은 실제 해당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이 담긴 영상과 함께 미러 박스에 설치됨으로써 한복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며, 이영희 디자이너 자신 조차 몰랐던 한복의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그간 이영희 디자이너가 세계 무대를 겨냥해 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 온 노력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
이영희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디자인은 다음 세대에 징검다리가 되고자 하는 것으로, 디자이너로서 ‘바램’이 있다면 자신의 도전이 개인의 도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혹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미학이 계속 새로운 손길로 재 탄생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이 이영희 디자이너의 바램. 여기에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이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단 한 벌의 의상에서라도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겸손한 희망이다.

● 현대 아트와 한복의 만남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해 온 이영희의 디자인 철학을 공간 자체로 끌어들여 하나의 아트 워크로 구성될 수 있도록 건축, 디자인, 미술,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진행했다.

▶전시 총괄 기획 및 큐레이션 :
숨SUUM 현대미술 경영 연구소

숨SUUM은 미술/건축/디자인 등의 시각문화를 컨텐츠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 컨설팅 연구 및 기획하는 곳으로, 이번 이영희 전시를 총괄 큐레이팅을 담당했다. 21세기의 미술의 영역은 단지 미술 안에서만이 아닌 시각예술, 문학, 건축, 음악 및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이해되고 제작 생산 및 소통되어야 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으며, 이는 큐레이팅이 단지 미술계에 국한 되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통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숨쉬고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2001년 런던, 독립 큐레이터 기획사무실로 발족하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양한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영희 전시 또한 숨의 큐레이팅을 통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한복 전시로 거듭났다.

▶전시 디자인 :
건축가 최장원 소장(건축농장)

한복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인 평면 재단을 전시장 구성에 도입할 수 있다면? 패션 전시가 단순히옷을 보여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도록 중추적 역할을 한 건축가 최장원. 중앙대학교 건축학과와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2013년 <건축농장>을 설립한 그는 우리에게 현대카드 컬쳐 프로젝트 중 하나인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뜰에 설치된 파빌리온 <신선놀음>을 통해 사용자가 직접 만지고 밀고 흔드는 행위를 통해 사람의 움직임을 수용하는, 실험적인 건축으로 친숙한 인물이다.
그가 운영하는 <건축농장>은 ‘생각’을 구축하고 표현하는 방법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작은 오브제나 새로운 생각의 제안으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으며, 건물을 짓는 것 이외의 다양한 건축적 방식들을 실험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서울과 뉴욕에서 디자인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공공건축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오면서, 건축과 예술의 경계에서 ‘소통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건축에 관련된 ‘교육 및 전시기획’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에서 ‘창의 건축프로그램’과 도코모모 <충돌과 확장> 전시기획팀에 참여했다. 대표작업으로는 가시(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안, N.E.E.D.와 협업), 도시텃밭프로젝트(기획재정부주관 국유지공모전), 여의나루 자전거 정류장(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등 공공장소에 관한 공모전 수상작들이 있으며, 2013년 광화문 광장에 난민주간을 기념하기 위한 오브젝트를 설치한 <점들의 이야기 축제>나 최근에는 창신동 골목길 프로젝트, 춘천 마임축제 등 공공예술과 건축이 만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주말예술농장>으로 2015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 상에 선정되었다.
▶전시 디스플레이 :
힐긋(Hilgeut)

힐긋은 시각예술의 영역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디자인과 그 실현을 목표로 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전시공간 디자인부터 옥내외 조형예술까지 시각예술 영역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는 힐긋은  두산갤러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문화역서울 284 등 다수의 갤러리에서 기획전 및 개인전의 전시공간디자인과 패션지와 광고 등에서 세트디자인 일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복을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오브제로서 연출하는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단지 이영희 디자이너의 한복이 아닌, 21세기에 바라보는 한복의 의미와 미래까지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를 기획했다.

▶아티스트 :
박제성(미디어아티스트)(제_:/박, JE_:/BAAK)
서울대학교와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한 박제성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작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이를 해체 변형시켜 평면 작품으로 선보인 “선결문제요구의 오류”(2012)라는 전시를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지난 런던올림픽 기간 중 런던 사치갤러리(Saatch Gallery)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전 ‘코리안 아이(Korean Eye)한국작가 34인에 선정돼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의 연설에서 메시지를 소거하고 숨소리와 표정만을 전달하는 작업을 하는가 하면 축구경기에서 공이 사라진 필드를 뛰는 선수들, 전시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살려두고 전시작품을 제거한 ‘Gong’ 시리즈를 통해 인간이 쫓고 있는 욕망의 실체와 본질을 되짚었다.
“Ritual-Media-Karma” 등 런던과 서울에서의 5회의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전, 사치 갤러리의 “Korean Eye” 전시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서울대학교 MoA, 중앙일보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중만(사진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진가이자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김중만. 오래 전부터 이영희 디자이너와 함께 한복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으며, 2008년 그가 촬영한 이영희 디자이너의 ‘바람의 옷’ 시리즈는 지금까지 세계 패션 무대에 한복을 알리는 대표적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김중만 작가는 이영희 디자이너의 바람의 옷 신작인, ‘남자 바람의 옷’ 촬영을 맡아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유니버셜발레단 남자 무용수가 바람의 옷을 입고 행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프레임 안에 예술적으로 담아낸 것. 김중만의 사진 예술로 탄생한 바람의 옷을 감상하는 재미는 전시를 한층 흥미롭게 연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딜루션
전시특수영상 제작사로 세계 최초의 SM Town Theater_COEX atrium 의 K-POP 홀로그램 콘서트총괄운영사로 업계 최고의 뉴미디어 솔루션 업체. 이영희 전시에 소개되는 동영상 제작을 담당했다.
● 한복을 생활에 들이다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이영희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한복의 미를 21세기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접목한 시도를 보여줄 예정이다. 패션 아이템인 가방, 생활 가구인 침대 등에 녹아 든 우리 옷의 아름다움의 단편을 발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Brand Collaboration

시몬느 with 이영희 : 셰계 시장 점유율 1위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핸드백 제조사인 시몬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영희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통해 한정판 핸드백을 선보일 예정.
에이스 침대 with 이영희 : 모던하게 재해석한 한국 전통 문양을 침대 헤드보드에 장식 요소로 적용해 기품 있는 침대 디자인을 선보인다.
Asian Beauty Creator 아모레퍼시픽_설화수와 함께 동양적인 신비로움을 담은 향초 및 파우치 디자인 콜라보 및 VIP 증정품 콜라보 제작.

 

▶ 현물후원

창립 40년을 맞이한 국내 조명 개발 제조업체로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조명기업
전시공간에 사용되는 모든 조명 지원으로 한복을 더욱 예술적으로 연출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최고의 화질을 자랑하는 OLED TV를 전시장내 전량 지원하여 미디어아트의 완성도를 더욱 높임.
또한, 딜루션에서 제작한 전시영상의 제작비 후원.
스마트폰 케이스 아이페이스를 시작으로 디자인 그룹으로 성장중인 에이스그룹.
관람객과 가장 먼저 만나는 포스터 이미지와 도록 및 각종 시각디자인물 디자인 및 제작지원
● 관객 참여 전시 프로그램 일정
전시 기간 내에는 ‘바람의 옷 퍼포먼스’를 비롯, 이영희 디자이너의 강연과 한복 워크 숍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며, 이는 SNS 홍보 매체(페이스북 페이지 검색: 이영희展 – 바람, 바램)를 통해 공지 된다.

-바람의 옷 퍼포먼스 : 모델 및 무용수가 바람의 옷을 입고 전시장 내에서 퍼포먼스를 진행.
1일 2회 실시( 14시/ 16시 예정)
-이영희 강연 : 디자이너 이영희의 한복 디자인 관련 강연. 전시 기간 내 6회 실시 예정.
-한복 워크숍 : 한복 제작을 시연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 전시 기간 내 6회 실시 예정.

-VIP 전시 투어 : 보다 상세한 설명과 이해를 원하는 관람객을 위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직접 진행한다. 전시 기간 중 예약자에 한함. 문의 info@cmcwordlwide.net

 

● 연계 프로그램 일정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실크로드 경주 2015와 함께 하는 이영희 한복패션쇼
<이영희展- 바람바램>은 8월21일부터 10월 18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및 경주시 일대에서 59일간 열리는 <실크로드 경주2015>와 함께 한다.
그 일환으로 8월 25(화) 6시 경주 하이코에서 신라시대의 화려했던 궁중의상 및 전통의상을 직접 볼 수 있는 이영희 한복 패션쇼가 개최된다.
한편 <이영희展- 바람바램>전시 기간 중 DDP현장에서는 <실크로드 경주 2015>의 홍보 부스가 마련되어 다양한 연계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 전시 문의
메종드이영희 www.leeyounghee.co.kr
전화) 02-547-0630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www.ddp.or.kr

● 티켓
유료 / 인터파크 ticket.interpark.com

원문보기: 우리 옷에 바람을 입히다 – 이영희 展 – 바람,바램

[2011.09.04] “활짝 열린 대안공간, 실험적 작가들에게 날개 달아준다”

“활짝 열린 대안공간, 실험적 작가들에게 날개 달아준다”

1 39아트:광주:11’ 전시장. [광주=연합뉴스]

미술품 장터를 뜻하는 아트 페어는 종합예술이다. 이 공간에서는 작품과 사람과 돈이 함께 움직인다. ‘함께’라는 말이 중요하다. 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다. 지방에서, 그것도 생긴지 얼마 안 된 신생 아트 페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제2회 광주국제아트페어 ‘아트:광주:11’ 가보니

2 크라운해태가 마련한 ‘아트&컴퍼니’ 섹션에 있는 구두 설치물. [사진 숨 프로젝트 아카데미 제공]

지난봄 제2회 광주국제아트페어 ‘아트:광주:11’(8월 31일~9월 4일)의 예술감독을 맡은 이지윤 숨 프로젝트 아카데미 대표는 그래서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겼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현대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 대표는 유명 갤러리와 이름난 작품, 안목 있는 컬렉터를 동시에 움직이는 기존의 아트 페어 성공 공식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바로 대안공간이다.
“사실 작품은 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젊은 혈기 하나로 작품에 매진하는 작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별로 소개될 기회가 없죠. 그나마 그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고 있는 대안공간을 시장으로 적극 끌어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름을 ‘뮤지엄 아웃렛’이라고 붙였어요. 작품 수준은 미술관급으로, 가격은 아웃렛처럼. 젊은 작가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투자하는 새로운 역할이 아트 페어에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광주시 김대중컨벤션센터 콘코스홀에서 개막한 ‘아트:광주:11’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안공간의 참여였다. 서울의 대안공간 충정각·대안공간 루프·브레인팩토리, 런던의 애니메이트 프로젝트, 광주의 대인예술시장 등 12곳에서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들고 나왔다.

3 전시장 초입에 있는 존원 작가의 회화. 길이 10m, 높이 3m짜리 대작이다. [광주=연합뉴스]4 이지윤 ‘아트:광주:11’ 예술감독이 내빈들에게 전시장을 설명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전시공간을 운영 중인 아트스페이스풀의 김희진 대표는 1970년대 개념미술을 선도한 중견작가인 경원대 김용익(64) 교수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는 젊은 작가 이완(32)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김용익 작가의 ‘땡땡이’ 시리즈입니다. 그동안 마켓에 거의 안 나오고 계셔서 여기서 작품을 처음 본다는 분들도 제법 계셨어요. 마침 이번에 글 모음집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정치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의 연결을 보여주기』가 나오게 돼 출판기념전시를 앞두고 겸사겸사 모습을 드러내신 거죠.”

눈길을 끈 것은 또 있다. 지역 화랑과 작가들에게 문을 활짝 연 것. 61개 참가 갤러리 중 외국 갤러리가 19곳, 국내 갤러리는 42곳인데 이 중 광주 지역에서 나인·자리아트 등 10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작고 작가부터 청년 작가에 이르는 50여 명의 작품을 내놓았다. 원 갤러리가 의재 허백련의 작품을 비롯해 오지호·오승윤·임직순 선생의 작품을 걸어놓았다. 황영성 광주시립미술관장도 작품을 내놓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이이남 작가는 고향을 찾아 신작 ‘달항아리’를 선보였다. 얇게 만든 커다란 달항아리 조각에 홍매화가 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또 ‘빛의 화가’로 불리는 우제길 화백은 중학생 시절 습작부터 근작까지 예술인생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5 김용익 작가의 ‘무제-절망의 완수’(1992), 캔버스에 혼합매체, 193x130cm. [사진 아트스페이스풀 제공]

서울에서는 갤러리현대·이화익갤러리·갤러리인·갤러리미·갤러리선컨템퍼러리·갤러리서종 등이 참가했다. 아예 한 작가만 집중적으로 부각한 화랑도 있었다. 갤러리인의 양인 대표는 유현미 작가의 작품만 소개했다. 이와 함께 “이제 정치를 넘어 문화”라는 메시지를 표방한 ‘더블 데모크라시 프로젝트’에는 yBa 출신의 샘 테일러 우드와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를 비롯해 조덕현·신미경·정연두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았다. 명품 브랜드 MCM은 전시장 한복판에 VIP 라운지를 만들어 고급스러운 전시장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오리토모 다쓰미의 귀여운 행위예술도 펼쳐졌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 ‘브레드맨(Bread Man)’에 사용한 딱딱한 빵을 머리에 둘둘 묶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빵인간이다”고 외치고 다녀 시선을 끌었다.

‘아트:광주:11 조직위원회’의 윤영달 공동위원장(크라운해태 회장)은 이날 “아직 규모는 작지만 내용이 알차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며 ”비디오 작품에 관심이 많이 생겨 송추 아트밸리에 전용 상영관을 지어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문보기: “활짝 열린 대안공간, 실험적 작가들에게 날개 달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