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성의 아트 트랙]바스키아에서 커트 코베인까지…천재는 왜 27세에 죽는가

비극적 초상이 된 저항과 혁신의 상징
장 미셸 바스키아 대규모 특별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한 천재가 시대의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폭발시킨 예술적 에너지를 조명한다. 27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3천여 점의 작품을 쏟아내고 스러진 바스키아의 궤적은, 그가 속했던 이른바 ‘27세 요절 클럽’의 비극적인 맥락 속에서 더욱 선명한 울림을 던져준다.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장 전경. / 사진. © 숨 엑스

마치 세기말의 예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는 유독 27세에 요절한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집착해왔다.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1942~1969)에서 시작하여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1942~1970),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1943~1970), 도어스의 짐 모리슨(Jim Morrison, 1943~1971),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 1967~1994),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1983~2011) 등의 음악가들이 창작의 열정과 커리어 발전의 정점에 이른 27세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음악이라는 가장 즉각적인 매체를 통해 기성세대의 질서와 통념에 저항하며, 젊음의 불안과 열정, 그리고 혼란을 고스란히 체현했다. 이들이 뿜어낸 예술적 불꽃은 너무나 강렬하고 자극적이어서, 마치 자기 파괴적인 에너지를 연료 삼아 타오른 시대의 제단 같았다.

1988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27세에 생을 마감한 장 미셸 바스키아 역시 이 비극적인 계보의 일원이다. 그는 팝아트의 상업성과 주류 미술계의 백인 중심주의 속에서, 거리의 거친 언어와 아프리카의 원초적 정신을 캔버스에 이식하며 1980년대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이 ‘27세 요절 클럽’의 천재들은 공통적으로 자아의 과잉,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 그리고 시대의 불안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이들의 예술은 완벽히 다듬어진 교향곡이 아니라, 거칠고 즉흥적이며,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날것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소진적인 창작 방식은 그들의 짧은 생애를 예고하는 비극적인 운명처럼 보인다.

캔버스 위의 그런지: 커트 코베인과의 시대적 공명

특히 바스키아와 커트 코베인은 서로 다른 분야였지만 단순히 요절의 비극을 넘어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친 거부라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의 절망적인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청춘의 절망과 시대의 불안을 가장 폭발적으로 담아냈던 상징적인 두 인물이었다.

커트 코베인의 밴드 너바나(Nirvana)의 음악은 이전 록 음악이 추구하던 정교한 연주 테크닉이나 세련된 작곡의 완결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단순하고 묵직하며, 때로는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거친 소리가 직설적인 가사와 결합된다. 이는 1990년대 젊은 세대의 무기력함, 분노, 그리고 기성 질서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며 곧바로 시대의 주류로 등극한다.

바스키아의 예술적 궤적 역시 이와 같다. 그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의 상업성과, 추상표현주의의 백인 중심적 엘리트주의가 지배하던 미술계에 거리의 ‘낙서(Graffiti)’와 원시적 드로잉을 들고 나타난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회화 관점에서 볼 때 ‘미완성’, ‘조악함’, ‘거친 질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바로 이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1980년대 후반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생생한 에너지를 포착해내며, 미술계의 권위적인 관습을 전복하는 가장 혁신적인 언어로 인정받는다.

바스키아와 코베인은 장르는 달랐으나, ‘기술적 완성도’보다 ‘감각적 진실성’이 시대를 움직임을 증명한 젊은 세대의 선구자들이다. 코베인의 그런지(Grunge) 음악이 주류의 허위 의식에 대한 분노를 소음과 멜로디의 충돌로 표현했다면, 바스키아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회화는 백인 엘리트 미술에 대한 반발을 낙서와 상징의 충돌로 캔버스에 쏟아냈다. 그들의 예술은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숙명을 공유한, 20세기 후반의 가장 예리한 감각의 발현이었다.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장 전경. / 사진. © 숨 엑스

거리에서 신전으로: 기호와 언어의 폭발

음악가들이 기타 리프나 목소리의 절규로 시대를 표현했다면, 바스키아는 기호(Sign)와 언어(Language)를 폭발시키며 그가 살던 시대를 아로새겼다. 그는 뉴욕 거리에서 ‘SAMO’라는 서명과 함께 철학적이고 도발적인 그래피티를 남겼고, 캔버스 위에 해부학적 단어, 인종적 상징, 그리고 자본주의 비판을 뒤섞었다.

이번 DDP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창작 노트(Notebook) 섹션은 이러한 천재적 감성의 원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끄적인 듯한 단어와 이미지의 조합은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던 ‘부(富)와 빈곤’, ‘통합과 분리’, ‘내면과 외면’ 같은 이분법적인 주제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확장되었는지 보여주는 설계도와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스키아가 생전에 작성한 노트들을 볼 수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그의 낙서 같은 필체와 드로잉이 내포하는 의미는 깊다. 그는 ‘대뇌(CEREBRUM)’, ‘대퇴골(FEMUR)’ 같은 의학 용어를 작품에 차용하며, 단순히 몸을 해부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정신을 해부하려는 예술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는 미국의 꿈(American Dream)에 가려진 흑인들의 고통과 사회적 병폐를 드러내려는 냉철한 시선이었다.

반복되는 왕관(Crown) 기호는 백인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던 흑인들의 영웅, 즉 권력과 존중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상징이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을 부각시키는 시도가 아닌, 시대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또한 그의 거칠고 즉흥적인 붓질은 치밀한 계획의 결과가 아닌, 세상에 대한 격렬한 반응을 가장 빠르고 솔직하게 기록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앤디 워홀의 통제된 팝아트와는 대조되는, 예측 불가능하고 뜨거운 인간적 감정의 분출이었다.

비밥의 회화적 즉흥성: 음악적 코드와 흑인 정체성

이번 전시에서 바스키아의 작품을 만나는 흥미로운 실마리 중 하나는 음악이다.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열쇠 중 하나인 그의 ‘흑인 정체성’과 ‘음악적 코드’가 드러난 작품들 때문이다. 그가 그린 수많은 작품에는 재즈와 블루스 거장들의 이름이나 곡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동시에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식이었다.

바스키아는 재즈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인물 중 하나인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동명 곡 제목을 딴 작품 ‘Now’s the Time’을 남겼다. 이 곡은 비밥(Bebop)이라는 새로운 재즈 장르의 시작을 알린 선언적인 작품이다. 바스키아가 이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흑인 예술이 주류 미술계를 혁신할 때’라는 시대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스키아는 또한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같은 비밥의 대표 연주자를 비롯하여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같은 전설적인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를 그림에 등장시키거나 상징화했다. 예를 들어, 엘라 피츠제럴드를 상징화한 것으로 알려진 ‘노파(The Old Woman)’라는 작품은 그의 작품이 단순히 낙서가 아니라 ‘음악사적, 인종적 존경심’이 투영된 깊이 있는 초상화임을 보여준다.

재즈, 특히 비밥은 자유로운 즉흥 연주(Improvisation)와 폭발적인 리듬감(Rhythm)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바스키아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고, 문자를 지우고, 재배치하는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작업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그림은 마치 자유로운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예측 불가능한 선과 색채로 채워진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러한 음악적 레퍼런스들은 그의 예술이 1980년대 뉴욕의 거리 미술이라는 껍질을 넘어, 뿌리 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적 자부심과 역사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장 전경. / 사진. © 숨 엑스

인류 보편의 언어: 한국 문화유산과의 대화

DDP 전시는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파격적인 기획을 시도했다. 바로 그의 작품을 한국의 중요 문화유산인 울주 반구대 암각화 탁본, 훈민정음해례본, 추사 김정희의 서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병치하여 전시한 것이다. 이는 바스키아가 작품에 녹여낸 ‘상징적 기호들’이 단순한 개인의 낙서가 아니라, 인류의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소통의 언어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반구대 암각화의 거친 표현과 원초적인 이미지들은 바스키아가 아프리카 미술과 원시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해골, 가면 등과 깊은 유사성을 보이다. 이는 수만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예술이 시작된 지점에서 만나는 감성의 교류이다.

바스키아 작품의 핵심 요소인 ‘단어와 텍스트’는 훈민정음해례본,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나란히 놓임으로써, 문자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예술적 형식과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 시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바스키아가 ‘왕관’을 서명처럼 사용했듯, 한글 역시 조선 시대 권위와 철학을 담은 최고의 상징적 기호였음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병치는 바스키아가 거리 예술을 파인 아트의 영역으로 진입시킨 혁명을, 동서양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예술 언어의 확장으로 치환한다. 이 전시에서 만나는 그의 예술은 더 이상 1980년대 뉴욕이라는 특정 시대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장 전경. / 사진. © 숨 엑스

장 미셀 바스키아, 자동차 충돌, 1980. / 사진. © 연합뉴스

꺼지지 않는 불꽃: 요절한 천재 신화와 천문학적 시장 가치

27세에 요절한 천재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격렬하게 소진했다. 그들의 예술은 ‘짧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비극적인 역설을 담고 있다. 마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스스로를 멈춰 세워, 그들의 젊음과 예리한 감각을 영원히 박제해 둔 것 같다.

그래피티를 파인 아트의 영역으로 진입시킨 바스키아의 혁신은 20세기 후반 미술사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거리의 언어를 미술관으로 가져왔고, 미술계 최초의 흑인 스타 작가로서 인종적 다양성의 문을 열었다.

바스키아가 요절한 후, 그의 작품은 상업적으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이는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비극적인 27세 요절 클럽의 신화, 그리고 그래피티를 파인 아트로 편입시킨 혁신성이 결합된 결과이다. 그의 짧은 생애는 오히려 그의 작품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젊음의 에너지를 부여했고, 새로운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그의 걸작들에 대한 희소성을 극대화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상업적 가치(201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제’가 1억 1,05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미국 작가 최고가 기록 수립)를 지니며, 예술적 천재성과 시장 가치가 결합된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그의 짧은 생애가 오히려 ‘바스키아 신화’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1984). / 사진. © Brad Branson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장 전경. / 사진. © 숨 엑스

그리하여 DDP의 바스키아 전시는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짧게 살다 간 천재들의 ‘낙서’ 같은 작품 속에 담긴 격렬한 에너지와 사회적 메시지는 과연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바스키아는 낙서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해체했지만, 그가 남긴 기호와 상징들은 오늘날까지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인 기호들’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DDP의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바스키아를 단순한 ‘낙서가’나 ‘미술 시장의 스타’로 보는 것을 넘어, 시대적 불안을 온몸으로 체화한 20세기 후반의 가장 예리한 예술적 대변자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캔버스가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소리나 커트 코베인의 절규와 공명하는 순간, 우리는 바스키아가 남긴 거친 기호들이 바로 영원한 젊음과 저항의 상징임을 깨닫는다. 그의 예술은 덧없이 스러진 한 천재의 초상을 넘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저항과 혁신의 불꽃으로 현대 예술사에 새겨져 있다. 이번 전시는 그 불꽃의 뜨거움을 우리의 현재와 연결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용호성 문화예술평론가·前 문체부 차관

출처: 한국경제 arte 2025.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