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한국의 현대미술을 잇는 숨 프로젝트의 이지윤 대표

지난 12월 14일. 한겨울 날씨를 뚫고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한복판에 핀 ‘민들레’ 꽃은 사방으로 생명력을 분출하며 대중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최정화가 버려진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로 탄생시킨 ‘민들레’는 대중의 호기심은 물론, 자원 선순환 메시지를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아트센터엔 커피 캡슐을 연결해 만들어진 ‘인피니티’, 캡슐을 녹여 만든 알루미늄 괴, 그리고 형형색색의 캡슐을 쌓아 완성한 ‘기둥은 기둥이다’ 등 최정화 작가의 신작들이 대거 전시되고, ‘새생’, ‘싱싱’, ‘생생’이라는 세 전시 공간에 걸쳐 공생과 공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며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서울 한복판에 핀 최정화 작가의 ‘민들레’

네스프레소와 최정화 작가의 이색적인 만남을 성사시킨 <새 생: VITA NOVA> 전시의 배경에는 숨 프로젝트와 숨 프로젝트의 대표 이지윤이 있었다. 이지윤 대표는 지난 25년간 유럽과 한국 현대미술을 잇는 발판 역할을 해온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 문화예술 전문 경영가이다. 흔히 생각하는 ‘한국적’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문화적인 맥락에서 더 잘 알고 이해하는 한국 작가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럽과 세계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03년 런던에서 숨 프로젝트를 설립하여 국제 현대미술 전시 및 프로젝트를 50회 이상 기획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2000년 대영박물관 한국관 설립과 2006년 부산비엔날레에 기여하고, 2012년 런던 올림픽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를 위한 미디어아트 커미셔너로 선정되어 활동한 바 있다. 또한, 교육자로서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10여 년 넘게 후배양성에 힘써왔다.다음은 WWD KOREA와 숨 프로젝트 대표 이지윤의 일문일답이다.

WWD KOREA(이하 WWD) 이번 <새 생: VITA NOVA> 전시와 최정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세상에 있는 생산된 것으로 생성을 시키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공존하게 하고 공생하게 한다”는 맥락을 언급했는데, 큐레이팅이라는 행위 또한 이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를 구성함에 있어 어떤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지윤(이하 LJY) 이미 이 세상에 창조되어 존재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큐레이팅이라는 행위도 가속화되는 이 세계에서 범람하는 수많은 정보 속 선택과 집중을 요한다. 큐레이터(curator)의 어원인 Cura는 라틴어로 ‘연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품을 보고, 분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임무 중 하나라는 것인데, 이처럼 우리가 처한 사회적, 시대적, 그리고 문화적 맥락과 같이 동시대가 처한 이슈들을 담은 예술가의 언어를 대중들에 전달될 수 있도록 재해석하여 전달하고, 우리의 삶 속 과연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함께 고민하고 논하고자 한다.

네스프레소와 작가 최정화의 만남이 이루어진 ‘새 생: VITA NOVA’ 전시
WWD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영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떤 계기로 큐레이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LJY 연세대 시절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불어 연수를 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루브르 박물관으로 달려가 거의 살다시피 했다. 문화의 힘에 매료됐고, 건축과 미술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었다. 1990년엔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뉴욕의 뮤지컬과 미술관을 열심히 훑었다. 거창하다 못해 좀 뜬금없는 꿈이었지만, 동양과 서양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기, 이 뉴욕에 꼭 한국 것을 소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일을 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 미국에서 예술 행정 MBA 과정을 밟으려 했는데, 런던으로 가게 되어 결국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 디플로마와 석사학위를 받으며 영국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공부를 거듭해야 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직업이기에 당시 학위를 마치고 큐레이팅 일을 시작하면서 런던 시티대의 예술 MBA 과정과 코톨드대의 미술사 박사과정으로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큐레이터 공부는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WWD 영국에서 활동한 시절부터 최정화 작가의 작품을 담은 다양한 전시회를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최정화 작가와 함께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알고 싶다.

LJY 환경과 미술계의 연관 관계와 상호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미 소비되고 버려진 것들을 리사이클하고 업사이클하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네스프레소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최정화” 이 한 작가가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이번 <새 생: VITA NOVA> 전시는 ‘함께 태어나기’, ‘함께 살아가기’, ‘함께 살아남기’와 같은 공존과 공생의 미학을 전해온 작가 최정화와 자연의 순환이라는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려는 네스프레소의 시너지를 볼 수 있는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커피 캡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민들레’
WWD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대중이 예술을 접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온라인 전시, 디지털 아트, NFT 등 전 세계 및 한국 미술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시장 속에서 어떤 변화를 목격하고 이끌었는지?

LJY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계속되온 방향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그러하고, 최근 다양한 시도의 미디어 아트도 그러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미디어 아트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아트페어는 모두 온라인으로 디지털 페어를 열었고, 전시도 모두 디지털화되어 진행되었으며, 이 디지털화의 중심에서 NFT 아트까지 인기를 끌었다. 아트페어의 디지털화는 작품 가격을 비밀스럽게 공유하던 형태에서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 공유하는 형태로의 전환으로 이어졌고, 그와 함께 온라인 쇼핑을 하듯이 작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형태가 발달되었다. MZ 세대들의 쇼핑 패턴과 부합하는 이러한 형태는 미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전시를 즐기기 위해 메타버스, 3D 공간 디자인 등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고, 전 세계의 미술 전시를 손바닥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크립토 시장과 NFT의 발전으로 디지털 아트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다. 미디어 아트가 예전엔 미술관에서만 소장 혹은 전시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어느 누구나 손바닥안의 기기 안에 소장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반면,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디지털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 간의 관계성과 실제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이 여전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WWD 숨 프로젝트는 이번 전시를 네스프레소와 함께했고, 이외에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기업에 문화 자문 컨설팅도 하고 있다. 기업이 대중과 소통함에 있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LJY 미술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아티스트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재정적인 부분이 그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데, 이 부분에 기업들이 예술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이번 네스프레소 프로젝트에서 환경을 이야기하기 위해 예술을 사용한 것처럼 기업과 예술이 손을 잡으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기획한 미디어 아트 LUX 전시의 경우, LG의 기술과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관점을 전시의 형태로 대중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WWD 글로벌 시대의 미술 경영인을 육성하는 것을 비전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각각 18년, 8년 동안 숨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래의 미술 경영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LJY 미술은 단지 사람들이 쉬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그림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 철학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그 시대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독창적인 생각들이 근간을 이루는 작품들이 탄생한다.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그러한 지점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이야말로 미술 경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안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더블유더블유디코리아(http://www.wwdkorea.com)